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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동물에 대한 단상 이윤영이비인후과 이윤영

혹시 반려동물을 키우고 계시나요?
일하느라 바쁜데 애들 육아와 교육 거기다 반려동물까지? 노노노노!!

처음은 귀엽다고 관심을 가지겠지만 나중 되면 귀찮은 일은 다 제 차지가 될 게 뻔해서 애들이 반려동물 키우자고 졸랐을 때 웬만하면 안 된다고 하고 싶었습니다만 애들의 반복되는 성화와 정서 교육에 도움을 줘야 된다는 엄마로서의 사명감에 그래도 손이 조금이라도 덜 가는 거북이를 키우기로 애들과 절충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키운 지 몇 달 안 돼서 명절에 모인 친척 애들이 들이부은 사료에 질식해서 거북이들이 죽는 사고가 일어났고 생명이라 안타깝기는 했지만 거북이와는 정서적인 교류가 많지 않은 탓에 담담한 마음으로 보낼 수 있었습니다.

시간이 지나 이제는 햄스터를 키우고 싶다는 애들 간청에 단단히 케어에 대한 약속을 받고 번식력 때문에 같은 성별로 키우라는 직원의 충고를 들어 암컷 두 마리를 분양받았습니다. 케이지 안에서 돌아다니는 귀여운 생물들에 애들보다 제가 더 푹 빠져서 퇴근 후 귀요미들 들여다보는 재미가 쏠쏠했었습니다.

하지만 둘은 서로 사이가 안 좋아서 티격태격했고 케이지를 하나 더 사서 서로 분리해야 되나 고민하는 사이에 맘에 드는 잠자리를 차지하고자 격렬하게 싸워서 두 마리 중 제가 더 예뻐하던 갈색 햄스터가 복부에 직격타를 맞고는 다음 날 사망하는 비극이 일어나고야 말았습니다. 한 마리가 죽고 나니 정을 떼려고 했는지 남은 한 마리에 대한 미움이 무럭무럭 일어나 보기도 싫어졌는데 멀쩡한 줄 알았던 남은 한 마리도 1주를 못 버티고 죽고야 말았습니다. 둘 다 죽고 나니 진작 분리하지 못한 죄책감에 한동안은 맘이 안 좋았습니다.

그리고 나니 이제는 반려동물은 그만 키워야겠다고 맘을 먹었지만 사춘기를 혹독하게 보내던 큰아들이 고양이를 키우고 싶다고 여러 번 요청하는 바람에 또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남편과 의논 끝에 고양이를 3마리 키우고 있던 남편 친구한테 일주일 정도 고양이 한 마리만 받아서 체험을 해보기로 했습니다. 그 집은 먼저 자리 잡은 첫째 고양이가 나중에 입양한 두 마리를 너무 괴롭혀서 고민하고 있던 중에 잠시 분리도 할 겸 해서 우리집에 보내기로 흔쾌히 승낙을 했습니다.

고양이 수명이 15년에서 20년이라는데 진짜 키우려면 책임감을 가지고 키워야겠다는 생각에 내린 해결책이었는데 자기 보금자리에서 방출된 4살짜리 ‘라케’라는 이름의 러시안 블루 고양이는 스트레스가 심했는지 며칠 동안은 아들 침대 밑에 들어가서는 나올 생각을 안 했습니다. 이러다가 또 고양이 잡는 건 아닌지 걱정을 하고 있었는데 큰 아들이 라케가 밤이 되면 침대로 올라와서는 앞발로 얼굴을 때려서 잠을 깬다고 해서 한시름 놓았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라케와의 동거는 남편 친구가 두바이로 직장을 옮기는 바람에 1주가 아니라 올해로 10년을 넘기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큰 회색 쥐처럼 보이던 라케가 우리 집 귀염둥이 막내로 등극하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빳빳하게 세워져 유연하게 물결치는 꼬리와 초록색으로 투명하게 빛나는 아름다운 눈동자를 가진 빌로드 같은 회색털의 라케는 환경에 익숙해지자 식구들이 가는 곳마다 따라다니며 몸에 착 달라붙는 개냥이로 변신하였습니다. 친구 말로는 그 집에서는 자주 하악질(고양잇과 동물들이 위협하면서 소리내는 것)도 하고 그랬다는데 우리 집에서는 울음소리 한번 듣기도 힘들었습니다. 간식 캔을 두드리면 언제나 달려와서 눈을 빛내며 몸을 비벼대며 애교를 피우는 이 생물은 지나치게 귀여워서 입가에 미소가 절로 나왔습니다.

회색 큰쥐 같았던 라케

낯설어서 자꾸 숨기만 하는 라케

제일 사이 좋았던 큰 아들

노트북을 너무 좋아했던 라케

개냥이 라케

아름다운 초록 눈동자

아름다운 초록 눈동자

간식에 눈이 초롱한 라케

알츠하이머로 투병 중이시던 엄마의 장례식 날, 라케 케어를 부탁하고 온 친구에게서 라케가 죽은 것 같다는 믿을 수 없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당직 때문에 하루 늦게 온 남편이 전날까지 아무 일 없었다고 했는데... 하루 한 번 주던 간식도 두 번 받아먹고 좋아했다고 했는데...
엄마 장례식을 치르고 올라와서 라케 장례식을 치르러 간 날, 유달리 라케를 좋아했던 큰아들은 화장터로 들어가는 걸 못 보겠다면서 울어서 벌게진 눈으로 내 손을 잡고 나왔습니다.

고양이 14살이면 사람 나이로 70대 초반이라 적어도 2-4년 정도는 더 살 줄 알았는데 식구들도 없는 빈집에서 혼자 간 걸 생각하면 이래저래 마음이 헛헛합니다. 라케가 매일 누워있던 탁자에 올려둔 유골함을 보면서 이제는 정말 더는 반려동물을 못 키우겠다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그런데도 4개월이 지난 이제서야 라케 물건을 정리하기 시작하면서 차마 버리지도 못하고 혹시나 하고 잘 챙겨두는 제 마음은 뭔가 모르겠습니다. 엄마와 라케에 대한 모든 추억은 이제 가슴에 차곡차곡 묻어야겠습니다.

이제는 유골함으로 돌아온 라케

라케야! 덕분에 10년간 행복했어. 편안히 잠들기를~

무안 비행기 사고로 희생되신 분들의 명복을 빕니다. 또한 사랑하는 사람들을 보낸 유가족분들께 진심 어린 위로의 마음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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