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등학생 때의 소원은 대학생이 되는 것이었고, 의대 실습 과정에서 아직 의사도 아닌데 환자들한테 당당하게(?) 나서기가 어려워서 하루빨리 전공의가 되길 소망했습니다. 전공의가 되고 나니, 내가 결정할 수 있는게 별로 없다는 것에 불만을 품고, 전문의 취득 후 결국 교수직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교수 발령을 받고나선 한동안 인생 목표(?)가 성취된 듯한 착각에 빠져 살다가, 정년까지 신분이 보장되는 정교수가 되기 위해 연구와 논문 작성을 열심히 한 끝에 마침내 2012년에 정교수가 되어 큰 사고(?)를 치지 않는 한, 이 병원에서 정년까지 밥벌이 하며 살 수 있는 단계에 도착했습니다. (여기서 휴~ 한숨 돌리네요.)
그러고 나서 보니 ‘나는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까?’ 란 고민이 또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이대로 환자 열심히 진료하고, 시켜준다면 감사하게 학회 활동이나 병원 보직 일을 하다가 명예롭게 정년퇴임을 하고, 어디 불러주는 병원에 가서 근무하거나 내 개인병원을 차리고 인생의 마지막 소명을 다하고 살아야 하나? 그러기엔 나의 남은 삶이 너무 단조롭고 자칫 무의미해지지 않을까 두려움도 느껴졌습니다.
인생 50이면 지천명이라고 나에게 주어진 소명이 무엇인지 이제 알아야 하는 나이가 되었지만, 아직 철이 덜 들었다는 핑계(?)로 평소 즐겨 봐서 친숙하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이나 생각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1인 미디어의 매력에 빠져서 유튜버로서 투잡(?)을 시작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워낙 장비병이 심한 관계로 녹화를 시작하기도 전에 관련 물품 주문부터 하였는데, 그 목록은 다음과 같습니다. 절대 따라하지 마세요!
다음으로는 내가 방송할 주제를 정하는 것인데, 우선 네 개의 카테고리로 “1. 독서, 북 리뷰, 2. 메디컬 이슈, 3. 건강관련 컬럼, 4. 이비인후과 전문 강의”로 분류하여 컨텐츠를 제작하기로 기획했습니다. 가장 처음 만든 컨텐츠는 작년 학회 등에서 진행된 강의 슬라이드를 다듬어서 유튜브 동영상 컨텐츠로 제작하는 것! 얼굴이 나오지 않고 목소리만 나오기 때문에 제작하는데 아주 큰 어려움은 없었으나, 편집 기술도 별로 좋지 않았고, 슬라이드만 나오는 만큼 별로 재미도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앞으로 학회에서 진행되는 강의를 지속적으로 제작해서 올리면, 후학들이 공부하는데 약간이나마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다음으로는 우리나라를 강타하고 있는 우한발 코로나 19 바이러스 관련 동영상들을 제작하였는데, 워낙 초반에 제작하고 프롬프트도 없을 때 촬영하여 지금이라도 삭제하고 다시 만들고 싶지만, 얼굴이 나온 첫 작품(?)이라 끝까지 가져갈 생각입니다. 다음으로는 외래에서 환자들에게 미처 해드리지 못한 설명을 담은 동영상을 제작하기 시작했는데, 삼출성 중이염, 메니에르 병, 돌발성 난청 등에 대한 컨텐츠를 작성해서 외래 진료나 병실환자들에게 설명서와 동영상의 QR 코드를 나누어 주어 보시도록 안내하고 있으며, 향후 점차 더 많은 설명 용 컨텐츠를 만들려고 합니다. 그리고 국민연금 관리공단의 자문의사로서 평소 장애 판정을 할 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청각장애 진단받기, 청각장애 연금 받기에 관한 동영상을 제작했는데, 동영상을 게시하자 바로 장애인 신문사에서 컨텐츠를 링크해서 독자들에게 보여드려도 되냐고 문의가 왔을 정도니 그동안 제대로 된 정보가 많이 부족했음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유튜버가 되고 싶었던 동기는 그동안 즐겨 읽었던 책들 중 꼭 권하고 소개했으면 하는 책에 대한 북 리뷰를 하고 싶어서 였습니다. 2018년 대한이비인후과학회 회보에 일년 간 ‘이 책 재미있습니다.’ 란 코너를 통해 재미있게 읽은 책들을 소개하다 보니, 그냥 나의 만족만을 위해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미처 책을 읽을 시간이 없거나, 책을 구입해서 읽어야 할지 고민하는 사람들을 위해 리뷰해주는 것이 도움이 되겠다고 생각해서 벼르고 있었는데 마침 좋은 기회를 잡았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1월 25일에 첫 동영상을 올리고, 몇개 정도 더 동영상들을 올린 다음, 2월 15일 주변에 알려서 공식적으로 유튜브 활동을 시작했고, 시작이 반이라고 외부에 유튜버라고 ‘커밍 아웃’ 한 지 3주가 경과한 3월 5일 현재 구독자 수는 95명을 기록하고 있습니다.(여러분이 이 글을 읽으시는 시점에는 꼭 100명이 넘었기를 조심스럽게 기대해 봅니다.)
지금부터 유튜버를 시작하면서 느낀 점들을 나열하려고 합니다. 혹시나 유튜버를 꿈꾸는 후학들은 꼭 참조하기 바랍니다.
첫째, 시간을 너무 빼앗깁니다. 우선 주제를 정하고 스크립트를 작성하고, 관련 자료를 수집하고 사진이나 영상들을 인터넷에서 뒤지는데 시간이 엄청 소요됩니다. 프롬프트를 구입한 이유도 원활한 편집을 위해 녹화만이라도 버벅대지 않고 그냥 한 큐에 진행하려는 이유에서 였습니다. 편집 기술도 공부하면서 하는 중이라 시간이 엄청 소요되어 요즘처럼 주말에 학회가 없는 시기가 매우 고마울 따름인데, 앞으로 바빠질 때 어찌 대처할지 고민이 들기도 합니다. 그래도 좋은 점은 쓸데없이 시간낭비하는 일이 많이 줄어들고 주말도 빈둥대지 않고 참 알차게 보낸다는 것 입니다.
둘째, 초반 투자비가 다소 듭니다. 저는 너무 과한 투자를 한 편이지만, 어느 정도 맘에 드는 퀄리티의 동영상을 만들어내려면 어느정도 투자는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요즘에는 스마트폰 기능이 좋아져서 거치대만 잘 사용하면 좋은 영상이 나올 것으로 생각합니다.
셋째, 영상 조회 수, 구독자 수에 민감해 지고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습니다. 아무리 돈이 목적이 아니라, 취미로 하는 유튜버라지만 그래도 자존심이 있는데, 구독자 수가 생각만큼 안 늘어나면 고민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특히 ‘대학교수’ 라는 타이틀의 무게로 혹세무민하는, 소위 ‘어그로’를 끄는 동영상을 만들 수는 차마 없기 때문에 주제 선정 및 내용 기술에 있어서 다소 ‘보수적’ 으로 갈 수 밖에 없음이 좀 아쉽지만, 양질의 컨텐츠로 승부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만약에 내 채널을 키우고 소위 ‘수익을 내는’ 채널로 만들고 싶다면 다른 채널과 차별점이 무엇인지 잘 생각하고 결마지막으로 내 채널의 아이덴티티를 확실하게 정해야 합니다. 내가 아무리 동영상을 정성껏 만들었어도 같은 주제로 검색하면 훨씬 프로다운 동영상들이 유튜브에는 넘쳐나지요. 정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저의 경우에도 이 책 저 책 가리지 않고 읽는 편이지만, 이래서는 다른 북튜버와 차별성을 줄 수 없다고 판단하여, 의사가 자신 있게 소개할 수 있는 건강, 심리, 의학 관련 최신 서적을 주로 리뷰하자고 방향을 변경했습니다.
지금까지 두서없이 쓴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이 페이지를 나가기 전에 부디 저자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https://www.youtube.com/channel/UCkjUtRF0YCo6JC9hpNn6XrA?view_as=subscriber , 혹은 검색 창에 ‘안중호’)에 들려주길 바라며, ‘알람설정’까진 아니더라도 가급적 ‘구독’ 과 ‘좋아요’ 는 눌러 주길 부탁드립니다 (유튜버로서 멘트입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그림1. 유튜브 채널 홈페이지. 홈페이지 타이틀은 ‘이어드림(ear-dream)’. 말 그대로 건강한 귀와 청력을 통해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주고자 하는 목표로 만든 타이틀입니다.
그림2. 연구실 공간을 이용한 유튜브용 스튜디오(?). 조명과 프롬프트를 필요 시 설치하여 촬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