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2월 TV에서 원인을 알기 힘든 폐렴 환자가 늘어나기 시작한다는 뉴스가 들릴 때만 하더라도 그 뉴스가 나의 연수 생활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을 줄 알았다. 하지만 한달 후 세상은 상상 이상의 속도로 퍼지고 있는 원인 모를 폐렴 바이러스에 COVID-19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자국으로 바이러스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빗장을 걸어 잠그고 있었다. 그렇게 내가 가려는 연수지 역시 당분간은 외국인 연수자를 받지 않는다는 연락을 받았다. 심신이 지칠 때쯤, 새로운 연수지는 어떨지 설레는 마음으로 하루를 보내고 있을 때 들려온 소식은 참 나를 허탈하게 했던 것 같다. 결국 연수는 1년 연기되었다.
하지만 1년은 금방 지나갔고, COVID-19에 대한 막연한 공포가 사그라질 때 즘 드디어 2021년 8월 해외 연수를 갔다. 내가 방문한 곳은 캐나다의 밴쿠버이다. 대부분 의사들이 연수지를 미국으로 선택하는데, 나는 지극히 현실적인 이유로 이곳을 택했다. 내가 그전부터 관심이 있었던 마이크로바이옴 연구를 선배의사가 소개시켜 준 곳이기도 했지만, COVID-19 여파로 서구권 국가에서는 동양인에 대한 배척이 혐오를 넘어 위험수준이라는 판단이 들었기 때문이다.
밴쿠버는 캐나다의 서쪽에 위치한 항구도시임에도 불구하고, 아시아인의 비율이 50%를 넘는 곳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시아인에 대한 혐오를 찾아보기 어렵다. 곳곳에 한중일 식당이 있고, 몇몇 식당은 한국에서 먹어본 식당 보다 훌륭한 곳도 있었다. 대부분 이민자로 이루어진 국가이기 때문에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곳이다. 사회 시스템도 미국과는 완전히 다르다. 영국, 호주와 함께 Common wealth에 속한 나라들은 의료, 사회 시스템이 비슷한 경우가 많다. 캐나다도 무상교육, 무상의료를 제공하고 있다. 캐나다에서 일을 하고 있는 모든 외국인들 역시 이 혜택을 받게 된다. 게다가 일하는 기간이 18개월 이상이고 아이가 있는 경우, 급여에 따라 child benefit을 받게 된다 (한화 약 100만원/달, 1인당)
캐나다 연수를 위해서는 work permit을 받아야 한다. Work permit은 의료인의 경우 비교적 쉽게 발급이 되는데, 연수지의 취업 허가서(Offer letter)와 기본 자료들만 있으면 캐나다 이민청에 인터넷으로 쉽게 접수할 수 있다. 발급기간은 보통 4개월 정도 소요된다고 뜨는데 나의 경우 약 일주일만에 발급이 되었다.
2021년 8월 초의 한국은 매년 경신하는 더위와 함께 야외에서도 마스크를 쓰고 다녀야 했기 때문에 유난히 더웠던 기억이다. 밴쿠버에 도착한 첫날 나는 전혀 다른 느낌의 여름을 맞이했다. 공기는 더없이 상쾌하며, 햇빛은 여름을 말하고 있지만, 건조한 기후 덕에 불쾌감이 전혀 없는 완전히 다른 여름이었다. 그늘에 있으면 시원했고, 한숨 들이 마시면 페포 속까지 정화되는 느낌이었다. 밴쿠버는 우리나라보다도 위도가 높음에도 해안가에 위치해 있어서, 여름은 시원하고 겨울은 따뜻하다. 겨울에도 약 7-10도 정도의 따뜻한 날씨가 계속된다. 보통 10월에서 3월 까지는 일주일에 3-4번은 비가 내리는데, 햇빛을 보는 시간이 적기 때문에 계절성 우울증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나 역시 그전까지는 ‘비’ 때문에 지구별에 태어난 걸 감사한다고 늘 말하고 다녔는데, 밴쿠버에서는 기저에 깔려 있는 가라앉음 때문에 고생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짧은 봄을 지나 6-10월 초까지는 최고 기온 27도 정도의 맑은 날이 지속된다. 그야말로 천국이 따로 없다. 밴쿠버의 별명이 999당인데 그 이유가 하늘에 천당이 있으면 바로 아래 999당이 밴쿠버라고 한다. 그 만큼 사람들은 이 기간에 야외에서 여름을 즐기면서 스트레스를 해소한다. 나도 아이와 함께 근처 공원에 나가서 매일 산책도 하고, 물놀이도 했는데, 모름지기 아이들은 그렇게 지낼 권리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정식 출근은 8월 말부터였다. 내가 연구를 하는 곳은 University of British Columbia (UBC) 의과대학의 부속 병원인 St. Paul’s 병원이다. 약 500병상이 안되는 병원인데, 특히 호흡기 분야는 세계를 선도하는 기관이다. 하지만 첫날 병원 전경이 너무 낙후되어서 연구를 제대로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나중에 듣고 보니 병원 전체가 건축학적으로 가치가 있는 건물이라서 허물거나 리모델링이 극히 제한되어 있다고 한다). 나는 호흡기내과와 이비인후과가 공동으로 연구하는 마이크로바이옴 연구를 하기로 미리 이야기가 되어 있었다. 나는 의욕에 앞서서 계획했던 연구를 벌이려고 했는데, 첫날부터 발목이 잡혔다. 그것은 캐나다의 의료/연구 시스템과 관련이 깊다. 캐나다에서 연구를 하려면 모든 사람들이 lab training을 해야 한다. 약 14개정도의 과목을 이수해야 하는데, 온라인 연구도 있지만 UBC 대학에 가서 직접 실습해야 하는 과목도 있었다. 문제는 이 과목들이 COVID-19로 인해 이미 대기 인원이 꽉 차고, 적은 인원만 실습하기 때문에 내 경우에는 약 3개월이 지나야 과목들을 이수할 수 있었다. 그 전에는 어떤 실험도 할 수가 없었다. 나는 군복무 중 연구소에서 실험을 한 경험이 있어서, 사정을 말해 보았지만 항상 대답은 같았다. “여기는 캐나다야.”
시간을 그냥 보낼 수 없어서 나는 두경부암의 free flap에 대한 수술실 참관을 PI에게 요청했다. 나의 PI는 rhinologist였는데, 두경부암은 Vancouver General Hospital (VGH)에서 수술한다고 하면서, 해당 교수에게 연결시켜 주었다. 하지만 여기서도 캐나다의 시스템은 미국의 그것과 매우 달랐다. 내가 있던 British Columbia주의 경우 1달 이상 수술 참관을 하려면, Educational license가 필요한데, 이를 받으려면 ILETS 시험 (TOFEL과 비슷한 영어 인증 시험으로 영국/캐나다에서 사용한다) 기준 7점이상을 맞아야 한다. 이 점수는 캐나다 고등학교 3학년 정도의 실력이라고 보면 되는데 도저히 그 짧은 기간에 점수를 딸 자신이 없었다. 나는 PI한테 이런 어려움을 이야기했더니, 자신의 Post-Doc으로 수술에는 들어올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 놓을테니 관심있으면 보라고 했다. 덕분에 나는 한 10년만에 부비동 수술을 매주 들어가서 참관하였다. 수술 참관을 하면서 전공의 시절 생각이 났다. 내가 이 수술을 다시 배울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상당한 도움이 되었다. 내가 속한 병원은 두경부외과만 있는데, 가끔 부비동염을 수술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 경우 외부 병원으로 의뢰를 했었는데, 이제는 간단한 부비동염 수술을 직접 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11월 중순이 되서야 내가 원하는 연구를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상기도와 하기도의 마이크로바이옴의 차이를 규명하는 연구를 맡았다. 상기도는 비강에서, 하기도는 기관지에서 샘플을 추출하였는데, 모든 샘플들은 수술장에서 채취하였다. 순조롭게 진행되어가나 했지만 2021년 겨울 독감과 COIVD-19의 3차 대유행으로, 연구소는 또다시 1달간 lock down에 들어갔다. 남은 연구기간이 약 7개월 정도 남았는데, 그 기간 안에 도저히 연구를 마무리할 수 없을 것 같았다. 하는 수 없이 기관에 연수 연장 신청을 하였고, 병원에서도 흔쾌히 허락해 주셔서 연수기간을 6개월 연장하였다. 이후에는 별 무리 없이 연구를 진행하였고, 연구도 잘 마무리하여 현재 결과 보고를 준비하고 있다.
캐나다 밴쿠버를 연수지로 고려하는 분들을 위해서 밴쿠버라는 도시에 대해서 부연 설명을 하고자 한다. 밴쿠버는 아주 작은 도시로 밴쿠버 웨스트, 벤쿠버 이스트, 다운타운 이렇게 3개의 블록이 있다. 대부분 병원들은 벤쿠버 웨스트와 다운타운에 위치해 있다. UBC는 밴쿠버 웨스트의 서쪽 끝에 위치해 있다. 좋은 학교들이 대부분 밴쿠버 웨스트에 위치해 있고 거주 비용도 제일 비싸다. 공립학교의 경우 학비는 무료이지만, 렌트 비용이 방 1개에 작은 거실이 한화로 약 350만원 정도 한다. 연수를 오는 대부분의 의사들은 UBC에 거주지를 결정하는데, 그 근방에서는 University Hill elementary school이 좋은 학군지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 근처 학교들의 부모들이 다 우리와 같은 연수지로 온 경우여서 1-2년 있다가 전학을 가기 때문에 안정감이 떨어지는 단점이 있다. 사립학교는 매우 경쟁이 치열하고, 또한 영어가 모국어야 하기 때문에 자녀의 교육학교로는 적합하지 않다. 밴쿠버 외곽에는 웨스트 벤쿠버, 노스 벤쿠버, 리치몬드, 버나비, 코퀴틀람 등의 외곽 도시가 있는데, 다운타운다운부터 약 30-40분 정도의 거리이다. 우리로 빗대자면 명동이 다운타운, 종로가 벤쿠버 정도이고, 강남구, 송파구, 용산구가 외곽도시쯤 된다. 이 중 웨스트 벤쿠버, 노스 벤쿠버의 공립학교 수준이 높다. 물론 학교 수준이 높으면 렌트비도 비싸다. 만약 당신이 밴쿠버를 고려하고 있으면, 웨스트 벤쿠버나 노스 벤쿠버도 좋은 선택지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