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폐는 유로화를 쓰지 않고 스웨덴크로네(SEK)를 사용하며 가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적인 복지국가이다 보니 인건비가 포함된 서비스 및 음식값은 상당히 비싸다. 하지만, 식재료 값은 한국에 비해 그리 비싸지 않아 많은 사람들이 도시락을 준비해서 출근하곤 한다. 필자가 연수한 KI는 왕립의과대학으로 우리에게도 친숙한 노벨 생리의학상(Nobel Biomedical fields)을 선정하는 기관으로 알려져 있다. 노벨 생리의학상 선정에 대하여 좀더 소개하자면 KI의 교수 50인으로 구성된 Nobel assembly of KI에서 선정하며 선정을 위한 회의장소인 Nobel Forum 역시 KI 캠퍼스내에 위치하고 있어 수많은 관광객들이 매일같이 들러서 기념사진을 찍는 관광명소이기도 하다. 여담이지만 1년동안 연구소에 출퇴근하며 필자 역시 관광객들의 배경에 수없이 등장했을 것으로 예상된다. 필자가 속한 연구팀인 Signal Transduction 팀의 Per-Olof Berggren 교수 역시 Nobel assembly의 멤버이고 평소에는 청바지에 티셔츠 차림으로 출퇴근하지만 노벨상 관련 행사 때만큼은 근사한 정장을 입고 출근하곤 했었다.
그림1. 카롤린스카 대학병원 전경
그림2. 노벨 포럼
필자는 이 연구팀에서 생체 모사체(organoid)제작 및 기능향상을 위한 유전자발현 조절(gene regulation) 및 안구전방(anterior chamber of eye)에 이식하여 생체 내에서 평가(in vivo assessment)하는 실험에 참여하였다. 사실, 생체 모사체 제작은 국내에서도 다양하게 시도되고 있지만 KI에서는 막강한 자본력과 고용된 유럽의 우수한 연구진들을 통해 비용의 제한없이 자유롭게 원하는 연구를 시행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필자의 연구팀에서도 개당 수십 만원씩 하는 생체모사체 제작판을 제한없이 사용할 수 있도록 공급해주고 있었기에 필자 또한 단기간 동안 수천개의 생체모사체를 직접 만들어보고 원하는 실험을 부담없이 시도해볼 수 있었다. 또한, 고가의 Laser confocal scanning microscope 역시 다양하게 보유하고 있어 28명의 연구원들이 각자 계획된 시간에 맞추어 장비를 사용함에 있어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 단, 재미있는 사실은 막상 스웨덴 연구시설이지만 필자를 포함한 28명의 연구팀원 중 단 4명만 스웨덴인이고 나머지 연구원들은 스위스, 독일, 중국, 루마니아, 스페인, 이탈리아 등 유럽 전역에서 모인 사람들이었다. 운동선수부터 의사까지 다양한 경력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연구에 대하여 보스부터 대학원생까지 서로 동등한 자격으로 의견을 주고받는다.
물론, 그들의 자세부터 복장까지 너무 자유로워서 과연 이들이 진지한 자세로 토론을 하는게 맞는지 의심스러웠으나 대화의 내용은 너무나도 전문적이고 진지해서 2시간동안 이어지는 주간 랩미팅 시간에는 온전히 집중해야 해서 들어야 하므로 미팅이 끝나면 녹초가 되곤 했다. 필자는 운 좋게도 사람 좋은 스위스 팀장 밑에서 연구원으로 실험을 수행하였다. 실험은 췌장에서 분리한 islet을 single cell들로 분리한 후 원하는 gene의 발현 또는 평가하고자 하는 기능을 시각화 해줄 수 있는 marker들을 바이러스를 이용해 tagging하는 실험을 진행했고 이후 쥐의 안구전방에 이식하여 실시간으로 이식한 조직의 생체 내 변화를 관찰하였다. 향후 필자의 관심분야인 타액선과 부갑상선 유사조직제작에 응용할 수 있는 기법들을 배울 수 있어 매우 만족스러운 시간이었다고 자부하고 있다.
그림3. 스웨덴 팀원들과 함께
실험은 주 4-5일만 진행되므로 남는 여가시간 동안 많은 여행도 할 수 있었다. 북유럽 복지국가답게 아이들 학교도 일부 사립학교를 제외하고는 모든 공립학교 및 공립국제학교는 학비가 들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필자와 같은 일정 급여가 없이 1년이상 체류하는 가정을 대상으로 아이들 양육비를 국가에서 보조해주는 제도가 있어 주머니 사정이 여유롭지 않은 방문연구원들에게도 실질적인 도움이 되었다. 삶의 질에 대한 국가차원에서의 혜택도 많아서 여름, 겨울 방학 외에 봄, 가을 일정기간 휴교기간이 있어 이를 이용해서 많은 사람들이 인접한 노르웨이, 핀란드, 아이슬란드 외에도 다양한 유럽국가로 여행을 즐기곤 한다. 물론, 미리미리 예약해야 저렴하게 다녀올 수 있어 거의 대부분의 연구원들이 연초에 각자 가고 싶은 여행지와 기간을 먼저 정한 후 실험 계획을 거기에 맞추는 것을 보고, 일보다 개인의 행복이 먼저라는 생각들이 확실한 사람들이란 걸 알 수 있었다. 필자 또한 스웨덴에서 많은 걸 보고 배웠지만 제일 값진 선물은 그곳에서 가족들과 함께한 시간들과 마음의 여유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림4. 얼어붙은 스톡홀름 바다와 스웨덴 도로
북유럽의 수많은 곳을 여행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추억은 오로라를 보겠다고 스톡홀름에서 북쪽으로 2박3일을 차로 올라간 끝에 도착한 아비스코(Abisko)에서 오로라는 못 보고 가족들과 눈 쌓인 자작나무 숲에서 보낸 며칠이 잊혀지질 않는다. 결국 돌아오면서 우메오(Umeå)에서 우연히 오로라를 보았지만 막상 밤하늘에 펼쳐진 그 광경보다 가족들과 오손도손 묵었던 자작나무숲 통나무집이 더 그립다. 끝으로, 연수를 다녀올 수 있게 기회를 준 모교 및 병원과 진료공백을 메우기 위해 주야로 고생하신 교실원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글을 마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