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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NTian January 2021 W-ENTian January 2021

숨을 참고 나를 만나는 시간. 인제대학교 일산백병원 응급의학과 김현종

인제대학교 일산백병원 응급의학과 / 김현종

수심 20미터.

오늘의 두 번째 다이빙. 본격적인 다이빙에 들어가기 전, 물에 적응하기 위한 몸 풀기 다이빙 시간. 이 정도 깊이에서 30초 정도 줄을 잡고 숨을 참다가 호흡 충동이 느껴질 때 즈음 다시 상승을 하는 것이 평소 나의 페이스. 그런데 오늘은 뭔가 평소와 조금 다르다.

다이빙 컴퓨터로 수심을 확인한 후 하강줄을 잡고 몸에 긴장을 풀어본다. 지난 몇 번의 다이빙마다 어김없이 느껴지던 답답함과 두려움이 오늘은 찾아오질 않는다. 수영장 물을 들였다 내는 펌프 소음과 약간의 물방울 소리만 들릴 뿐 갑자기 고요하고 평화롭다는 생각이 든다.
맞다. 이래서 이걸 시작했다. 이 평화가 맛보고 싶어서.

2020년 초여름. 과에서 보직을 맡자 말자 본격화된 COVID19 대유행은 사그라들 기미가 보이지를 않았다. 우리 응급실에서도 이틀이면 멀다 하고 확진자가 발생했고, 그 때마다 역학 조사를 받고 소독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평소에 체육관에 가끔 나가 운동을 하는 걸로 스트레스 조절을 했지만,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가 높아지면서 그마저 쉽지 않았다. 혼란 속에서 질서를 만들어 보겠노라 호기롭게 시작한 응급의학과 의사의 생활이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혼란’이 나를 잠식하기 시작했다. COVID19 덕분(?)에 회식이나 모임은 줄었지만 혼자서 술을 마시는 날이 잦아졌고 피로감과 우울함도 늘어났다.

미칠 것 같았다. 잠깐이라도 병원일을 잊고 머리를 비울 시간이 필요했다. 그때 무슨 이유였는지는 모르지만 지인의 SNS에서 장비 없이 숨을 참고 다이빙을 하는 사람들에 대한 포스팅을 읽은 게 생각이 났다. 전문의가 되고 나서 스쿠버 다이빙에 재미를 붙여 꽤 열심히 다녔지만 결혼 후에는 좀처럼 시간을 낼 수 없어서 가끔 바다 앓이를 하고는 했다. 하지만 이거라면 굳이 먼 바다를 나가지 않고 다이빙 풀장에서도 배울 수 있고, 장비도 가벼워 떠나기에 뭔가 홀가분할 것 같았다. 생각이 거기까지 이르자, 내 머리는 온갖 ‘배워야할 핑계’를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찾아본 유투브에는 바닷속을 유영하는 사람들의 영상이 한 가득이었다. 그래. 프리다이빙. 이거다.

결심이 어렵지 그 다음은 쉬웠다. 이미 경험이 있는 지인에게 강사님을 소개받고 바로 첫 교육 날을 잡았다. 교육 과정과 내용은 단체 혹은 달성하고자 하는 level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초보자 과정은 대체로 이틀 정도의 이론 및 수영장 교육 그리고 한 차례의 개방수역 과정으로 이루어진다. 수도권에는 파주, 일산, 성남, 수원, 잠실 체육관, 올림픽 체육관과 가평 등에 다이빙 풀이 있어 다양한 장소에서 프리다이빙을 접하고 배울 수 있다.

첫 과정인 이론 교육은 그리 어렵진 않았다. 대부분 수압과 그에 따른 생리 변화 그리고 건강상의 문제등에 대한 것으로 직업 덕분에 수월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이 글을 읽고 계실 이비인후과 선생님들이시라면 훨씬 더 쉽게 배우실 수 있으리라.) 이틀간 한나절 공부를 하고 나름 우수한 성적으로 시험도 통과했다. 하지만 수영장 교육부터는 조금 달랐다.

프리다이빙은 ‘숨을 참고’하는 다이빙이다. 당연히 ‘오래 숨을 참는 능력’이 잠수의 깊이와 시간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렇게 숨을 오래 참기 위해 배워야하는 첫 단계는 ‘숨을 잘 쉬는 것’이었다. 천천히 숨을 크게 들이쉬고 내쉬는 법. 차분하게 평소 호흡을 유지하다가 입수하기 전에 최대한 들이쉬는 법을 반복해서 연습했다. 평소에는 신경 써본 적 없는 내 숨소리에 집중을 하니 역설적으로 머리속은 비기 시작했다. 답변을 써야하는 이번 주 민원 내용도, 아직 정리 못한 논문 데이터도, 속을 끓게 하는 사람들도 서서히 지워졌다. 그냥 4초간 들이쉬고 8초간 내쉬고 그저 들이쉬고 내쉬는 내 숨소리만 남았다. 그렇게 한참, 숨을 이렇게 쉬면 되는구나 어렴풋이 이해할 무렵 즈음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Static apnea (STA)라고 부르는 이 과정은 쉽게 ‘숨 오래 참기’라고 보면 된다. 호흡을 조절한 후, 크게 숨을 들이쉬고 물에 얼굴을 담근 상태로 긴장을 풀면서 자기 한계까지 숨을 참으면 된다. 아주 간단(?)하지만 엄연히 프리다이빙의 종목 중 하나. 하지만 간단한 것이 항상 가장 어려운 법. 육상 동물인 내가 숨 참는 연습이 되어 있을 리 만무하다. 하지만 뭐 한 번 시험해보자는 마음으로 얼굴을 물에 담그고 눈을 감았다. 강사님은 호흡 충동이 일어나도 그걸 받아들이고 천천히 힘을 빼라는 말을 반복한다. 딴에는 긴장을 풀었다 싶었는데, 나의 목과 어깨를 가볍게 터치하며 긴장을 풀라는 신호를 계속 보낸다. 그런데 이게 영 쉽지가 않다. 의식적으로 머리를 비우려고 노력을 해봤지만 오히려 ‘숨 차네. 힘들다.’ 이런 생각이 가득차기 시작했다. 호흡 충동으로 횡격막이 수축하는 ‘contraction’을 느끼고 얼마 후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 얼굴을 들고 달달한 공기를 실컷 들이켰다. 내 기록은 2분을 조금 넘긴 정도. 초급 프리다이버 과정 통과 기준은 충분히 넘겼지만 왠지 입맛이 썼다. 아마 곁에서 같이 시작했던 지인은 이미 3분을 넘게 얼굴을 담그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숨 참기 과정 다음은 Dynamic Apnea (DYN), 핀(오리발)을 신고 숨을 들이쉰 이후 수평으로 가능한 멀리 잠영을 하는 것이다. 나름 스쿠버다이빙 경험으로 ‘물 밥’은 좀 된다고 생각했기에 이 과정은 쉬울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천만에 말씀. 병원 생활에 찌든 몸으로 새롭게 몸을 움직이는 법을 배우는 것이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오랜만에 물속에서 허우적거리다 보니, 숨은 짧아지고 쓸데없는 움직임만 많아졌다. 한참 다이빙 풀의 한 쪽 벽에서 다른 쪽 벽으로 오가며 연습을 했지만 영 어색하다. 하지만 이것도 시간이 지나면 차츰 나아지겠지.

자, 수평으로 오며 가며 연습을 했으니, 다음은 깊이 들어가는 것을 연습할 차례다. 깊이 5~6미터 정도인 다이빙 풀에서 자세와 기본적인 기술을 연습할 수 있지만, 제대로 된 깊이를 경험해 보려면 실제 바다 혹은 좀 특별한 풀을 찾아야 한다. 다행히 경기도 가평에는 K26이라는 아시아에서 가장 깊은 다이빙 풀이 있어서 바다를 찾지 않고도 수심타는 연습을 할 수 있다. (현재 용인에 40m 다이빙풀 건설 중이다.) ‘깊이 들어가는 다이빙’의 방법은 몇 가지가 있지만 초보자인 내가 연습할 것은 Free Immersion (FIM)과 Constant Weight (CWT)라는 종목이다.

FIM은 수면 부이(Buoy)에서 숨을 크게 들이쉬고 아래로 뻗은 하강라인을 손으로 잡고 오르내리는 방법으로 목표한 수심까지 발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 특징인 반면, CWT는 수면에서 바닥 쪽으로 머리를 박고 잠수해 목표 수심까지 발차기를 이용해 다녀오는 방법이다. 스쿠버다이버로서 경험 덕분에 깊은 물에 대한 두려움은 별로 없었지만, 내 한 호흡으로 깊은 곳을 다녀오는 연습은 해본적이 없다. 깊은 물로 들어가면 수압이 증가하면 고막을 누르는 압력은 늘어나는 대신 중이의 압력은 줄어든다. 이 때문에 고막이 안으로 밀리면서 손상을 입을 수 있는데, 이를 막기위해 이관으로 공기를 불어넣어 중이에 적절한 압력을 채워주는 기술, 즉 압력평형(equalizing)을 배워야 한다. 스쿠버 다이버야 공기를 탱크에서 얼마든지 꺼내 쓸 수 있으니 어떤 방법을 써도 상관없는데, 한 숨이 아까운 프리다이버는 프렌젤(Frenzel)이라는 방법을 써서 최소한의 공기와 힘으로 압력평형을 만드는 연습을 해야 한다.

내 프리다이빙 첫 위기가 여기서 시작했다. 10m 정도의 수심에서는 압력 평형이 문제가 되질 않았지만 15m를 넘기 시작하면 마치 뭔가 목을 조르는 것처럼 압력 평형이 열리질 않았다. 우스운 것은 초급 프리다이버 과정까지 잘 마쳐서 나는 이퀄이 잘 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다음 연습을 하러 갔더니 꽉 막힌 귀가 도통 열리질 않았다는 거다. 어렴풋이 수심이 깊어지면 나도 모르게 느끼는 두려움에 목과 얼굴의 근육이 긴장해서 그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수압에 내 몸의 빈 공간들이 죄어드는 느낌, 입과 목에 머금고 있던 공기가 급격히 적어지는 감각, 어두워지는 주변 그리고 고립감이 주는 두려움에 적응하기 쉽지 않았다. 다행히 연습을 거듭하면서 압력 평형은 조금씩 나아졌다. 그런데 압력평형에 겨우 익숙해졌다 했더니 생각 못한 다른 위기를 만나기도 했다. 수압을 받은 상태로 몸을 급히 움직이다가 기관 압착을 겪기도 했고, 능력 이상으로 길게 잠수를 시도하다가 출수 직후 잠시 정신을 잃을 뻔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두 경우 모두 내 욕심에 무리하게 몸을 쓰다가 생긴 일이지 싶다.

몇 번 고생을 했으면 이 즈음에서 ‘좋은 경험이었다’하고 그만 둘 만 한데, 오히려 프리다이빙 장비를 하나 둘 사 모으기 시작했다. 잘 늘지는 않았지만 그만두고 싶지는 않았다. 얼마 안 되지만 내 호흡 한 번으로 들어가서 있을 수 있는 그 시간 동안은 다른 세상에 있는 것 같았다. (물론 물 밖 세상에 대한 미련을 버릴 정도는 아니다.) 한 달에 몇 번 연습을 하러 가면, 수영장이 마치 냉각수로 가득 찬 마냥 과열된 마음과 머리가 차분해졌다. 그래서일까. COVID19 확산세는 아직 꺾일 기미가 보이지 않고 덕분에 응급실에서도 4종 보호구 둘러쓰고 진땀을 흘리긴 해도 아직 정신줄 단단하게 붙들고 살고 있다.

2021년으로 넘어와 몇 달. 얼마 전이었다. 그날은 다이빙 시작부터 느낌이 묘했다. 피로감도 거의 없었고 만성적으로 달고 살던 근육통이나 결림도 없었다. 스트레칭을 하는 중에도 안방 소파에 누워있는 듯 편안했다. 아니 오히려 뭔가 가벼운 노곤함마저 느껴졌다. 처음 한 두 번의 다이빙은 뭔가 허겁지겁 준비하기 마련인데, 그날은 내 순서를 기다리는 시간이 느긋했다. 그리고 드디어 내 차례. 준비호흡, 큰 호흡, 수면에서의 압력평형 한 번 그리고 잠수 시작. 천천히 줄을 한 번 당겨 조금 아래로 잠수. 압력 평형. 그리고 크게 당겨 다시 더 깊이 잠수. 수심이 깊어지면서 부력이 줄어들고 한 번 당길 때마다 더욱 부드럽게 깊어졌다. 어느 덧 목표였던 수심 20m. 보통 warm up 다이빙이라도 이 정도 깊이에 오면 답답함이 느껴져 바로 올라가곤 했었다. 그런데 그날은 달랐다. 머리를 비우고 눈을 감고 몸에 힘을 뺐다. 음성 부력에 몸이 잠기지 않을 정도로만 줄을 잡고 기다렸더니 어느 순간 고요함이 찾아왔다. 수영장의 펌프 소리가 귀를 아프게 하더니 어느 새 그것도 잘 들리지 않았다.

나에게 가장 필요했던 시간. 자신의 아픔은 헤아릴 여유가 없었던 사람에게 필요한 시간. 숨을 참고 물에 잠기고 나서야 비로소 그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오직 나를 위한 시간 말이다.

아. 물론 잠수 시간은 평소보다 길었지만 무사히 물 밖으로 헤엄쳐 나왔다. 혼자 있는 시간은 또 너무 길면 좋질 않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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