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이후 주식투자, 가상화폐 등 전국민적인 투자붐이 일고 있다. 미술품 투자도 이에 못지 않게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아왔고 그에 따라 최근 몇 년간 미술품 가격이 급등하고 있다. 미술품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다양하지만, 감상하는 행위를 넘어 소유의 기쁨이 있고 추가적으로 발생되는 경제적인 이윤까지 있을 수 있어 작품이 주는 감동이 배가 되기에 그럴 것이다. 대부분의 도시인들이 그렇지만 솔직히 필자도 앞만 보고 살아오며, 바쁘게 하루하루를 겨우 살아 왔기에 미술이라는 예술적 가치를 모름은 너무나도 당연하였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자연의 아름다움이 눈에 들어오고 나와 내 가족만이 아닌 주변이 점점 눈에 밟히면서, 그것들을 담아 내는 미술품이 주는 잔잔한 울림이 조금씩 느껴지기에 최근 미술품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고 이를 선후배 선생님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이 글이 미술 관련 업계 종사자들이나 컬렉터(미술품 수집가) 들에게는 너무나도 당연하고 쉬운 이야기겠지만, 일반인에게 미술품은 TV에서나 보는 슈퍼리치들의 전유물로 느껴지거나 나와는 다른 세상의 일 정도로 받아들여져 온 게 그간의 현실일 것이다. 하지만 알고 보면 미술품 구매도 그리 먼나라 얘기가 아니기에 이 글을 빌어 소개하고자 한다.
미술품은 외형적으로는 인간의 의식세계를 표현한 예술작품이지만, 시장경제의 입장에서 보면 예술적 가치를 지닌 상품으로 이해된다. 미술상품을 거래하는 시장의 구성 요소는 작품의 생산자인 작가와 구매자인 고객이 있고, 이들의 만남을 중개하는 화랑, 갤러리, 경매회사, 아트페어, 미술관, 박물관, 정보와 기업 등이 있다. 미술품의 유통시장은 보통 3단계로 구성된다. 작가와 소비자가 직접 거래를 진행하는 1차 시장, 사설 화랑이나 중개인들에 의해 거래가 이루어지는 2차 시장, 그리고 국제적 경매가 이루어지는 3차 시장으로 나뉜다. 그리고, 크라우드펀딩이라고 불리는 4차 시장이 있다.
생산자인 화가에 의해 제작된 미술품이라는 상품은 1차 시장인 갤러리의 아트 딜러 혹은 개인 딜러를 통해 고객과 만날 수 있게 된다. 어느정도 수준을 갖춘 컬렉터나 전문가가 아닌 대부분의 일반인들은 작품의 가치를 평가할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갤러리의 도움을 받아 구매하게 되는 형식이다. 미술품 구매에 있어 자기 만족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작가와 작품에 대한 가치평가 없이 내가 맘에 든다고 아무 작품이나 사는 것은 미술품 투자라고 보기 어려울 것이다. 유명한 화가 뒤에는 늘 ‘제3의 예술가’로 불리는 아트 딜러가 존재해왔다. 2004년 5월, 가고시안 갤러리(Gagosian Gallery)는 영국 런던에서 개최한 첫 번째 전시 작가로 사이 트윔블리(Cy Twombly, 1928~2011)를 선택했다. 당시 전시된 작품들은 칙칙하고 음산한 느낌의 두꺼운 선이 비 오듯 흘러내리는 해석이 난해한 추상회화 작품들이었다. 가고시안 갤러리의 직원들은 전시 오픈이 임박한 시점에 컬렉터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들은 가고시안 갤러리의 사장인 래리 가고시안(Larry Gagosian, 1945~)이 이 작품을 추천했다는 점을 강조했고, 전화를 받은 고객은 모두 해당 작품을 샀는데, 그중 25%는 어떤 작품인지 물어보지도 않고 작품을 구매했다고 한다.
당시 사이 트윔블리는 유명세가 없는 작가였고, 컬렉터들은 작품들을 직접 보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1억원 가까이 되는 작품을 선뜻 구입했을까? 답은 간단했다. 주식투자자들이 투자 전문가의 결정을 믿듯, 컬렉터들은 미술계의 슈퍼 파워 딜러인 래리 가고시안의 결정을 신뢰한 것이다. 이처럼 아트 딜러는 미술시장에서 상품인 미술품과 시장을 잇는 교두보 역할을 담당할 뿐 아니라 아트마켓을 창조하며 한편으로는 미술계의 사업가이기도 하다.
세계 곳곳에서 열리는 유명 아트페어에는 갤러리 관계자와 작품을 사려는 사람들 뿐 아니라, 미술관 관장, 큐레이터, 경매회사 관계자, 유수의 컬렉터들이 모인다. 이들은 작품을 사고파는 것 외에도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고급 정보를 교환하며 잠재 소비자를 발굴하기 위해 아트페어를 찾아 나선다. 1980년대 초반, 갤러리를 통해 작품을 구입하던 컬렉터들은 가격 면에서 상대적으로 투명하고, 돈만 있다면 웨이팅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지 않고 경합을 통해 원하는 그림을 구매할 수 있는 경매회사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이에 점점 설 자리를 잃은 갤러리들은 백화점처럼 다양하고 유명한 작품들을 한 곳에서 보고 살 수 있는 아트페어를 주목했다.
< 한국국제아트페어 KIAF ART SEOUL 2019 >
아트페어가 정착되면서 컬렉터들은 갤러리나 경매회사를 찾는 것보다 아트페어를 선호하기 시작했다. 한 공간에서 양질의 작품들을 대량으로 감상할 수 있어 편리하고, 부담스러운 경매 수수료가 없다는 점, 비즈니스 측면에서 인맥을 형성하기에 유용한 점 등을 매력적으로 느낀 것이다. 이에 갤러리의 명성과 영향력을 보여주는 것이 결국 미술품이기에 최상의 작품들을 선보이기 위한 보이지 않는 경쟁이 치열해졌다.
오늘날 전세계 미술시장의 중심에 있는 대표적인 아트페어들은 다음과 같다. 테파프(TEFAF), 아트바젤(Art Basel), 아트바젤 마이애미(Art Basel Miami), 프리즈 아트페어(Frieze Art Fair)이다. 이와 함께 아시아 미술시장을 이끄는 아트바젤 홍콩(Art Basel Hongkong)은 2016년 당시 매출액 3조원을 기록한 뒤 꾸준히 상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국내에서는 1979년 미술 장터 ‘화랑미술제’를 시작으로 2015년에는 40개를 돌파했다. 2018년도 한 해 동안 운영된 아트페어만 47개였던 점을 고려하면, 아트페어에 대한 대중의 관심과 인기를 짐작할 수 있다. 초창기 아트페어는 그림 위주로 거래가 이루어졌지만, 최근에는 3차원의 조형물 아트페어를 비롯해 호텔 아트페어, 중저가 아트페어, 작가 주도 군집형 미술 장터, 공예 및 디자인 전문 아트페어 등 다양한 주제로 아트페어가 개최된다.
경매는 불특정 다수의 사람이 참여하여 가격을 도출해내는 것을 목적으로 하며, 서구경매와 더치경매의 두 가지 방식으로 나뉜다. 서구경매는 보통경매라고도 불리며, 최저가를 설정해 놓고 경합을 통해 가격을 상승시키는 구조다. 반대로 더치경매는 값을 차차 내려 부르는 방식이며, 한 종류의 상품을 여러 개 팔고 싶을 때 이용된다. 미술경매회사의 진행방식은 보통 최저가에서 호가로 올라가는 서구경매의 방식이 일반적이다.
3차 시장에 해당하는 미술경매회사를 Top Market이라고 하는데, 수많은 인증절차를 거친 작가들의 작품이 거래되기 때문이다. 경매시장에서의 가격 결정은 최대한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책정하기 위해 경합을 통해 진행하며, 응찰자들에게는 공정한 기회와 자유 경쟁, 중개자의 조정 등이 제공되어 최종 가격을 형성한다. 경매의 진행 과정은 위탁자가 판매를 의뢰한 작품을 중개자인 경매회사가 감정을 거친 후 추정가를 제시하고, 오프라인 경매와 온라인 경매 등을 통해 최종 낙찰자인 구매자에게 소유권을 이전한다. 이러한 미술품 경매는 미술시장의 확대와 미술품 감정의 공신력을 제고하는 기능을 담당한다.
< 2017년 소더비 경매에서 최고 낙찰가(1290억원)를 기록한 장 미셀 바스키아의 ‘무제’ >
세계 경매시장의 양대 산맥은 크리스티(Christie’s)와 소더비(Sotheby’s)이다. 이들은 1700년대 중반에 설립되었으며, 오랜 역사만큼 주요 도시(뉴욕, 런던, 홍콩, LA, 파리, 제네바 등)마다 경매장을 구축하고, 100여 개의 연락사무소를 두어 미술시장 내에서 압도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실제로 고가에 낙찰된 유명 미술작품들은 이 두 회사에서 낙찰된 것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국내의 경우 미술품 경매제도가 처음 도입된 것은 1979년 6월 8일 신세계 미술관에서 36명의 작고한 작가의 작품을 모아서 제1회 근대미술품 경매를 개최한 것이다. 이후 지속적으로 미술품 경매가 이루어졌고, 본격적으로 경매회사가 설립된 것은 1990년대 중반 이후의 일이다. 현재 한국 미술시장은 ‘서울옥션’과 ‘케이옥션’이 주도하고 있으며, 주로 우리나라의 근현대미술품을 다룬다.
2019년 11월 김환기 화백의 작품 ‘우주’가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서 최종 132억원에 낙찰되었다. 비단 김환기 화백 작품만이 아니다. 수억원을 호가하는 고가 미술품 시장은 그간 일반인이 넘보기에는 가격 진입장벽이 너무 높았다. 미술품 투자는 일부 슈퍼리치들만 향유하는 ‘그들만의 리그’로 치부되어 왔다.
< 서울 강남의 한 음식점에 전시된 쿠사마 야요이의 ‘호박’, 최고가 4천만원이 넘는 이 그림은 주인이 195명이다. >
하지만, 최근에는 상황이 달라졌는데 크라우드펀딩 형태를 빌린 미술품 공동 구매가 대중화 되면서다. 만명이 모이면 1억원짜리 작품도 만원에 살 수 있다는 것이 핵심이다. 미술품 공동 구매 플랫폼 업체가 작품을 선정해 펀딩을 모집하면 투자자들은 펀딩한 금액만큼 작품의 소유권은 나눠 갖는 방식이다. 구매가 완료된 작품은 플랫폼 업체가 오프라인 전시공간에 전시를 하고, 다양한 행사를 진행하여 구매자들이 작품의 가치를 이해하고 소유의 기쁨을 누릴 수 있도록 해주는 방식이다. 또한 작품을 원하는 곳으로 렌탈을 해준 후 수익창출을 하기도 한다. 수익을 얻는 방식은 기존 미술품 투자와 크게 다르지 않다. 구매한 미술 작품 가격이 오르면 시세차익을 얻고 미술품의 판매는 소유자들의 과반수 이상이 찬성하면 판매가 이루어 지는 식이다.
최근 2~3년간 미술품 공동 구매 플랫폼이 여럿 생겨났다. 2018년 10월 아트앤가이드에서 국내 최초로 김환기 화백의 ‘산월’을 공동 구매한 이후 현재까지 ‘아트투게더’, ‘아트블록’, ‘피카프로젝트’ 등 약 10개 회사가 공동 구매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다. 값비싼 미술품을 저렴한 가격에, 그것도 온라인으로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인 크라우드펀딩은 코로나19 이후 더 활성화 되고 있다. 오프라인 전시장이 문을 닫게 되면서 온라인 전시 및 경매가 활성화 되었고, 모바일과 공유경제에 익숙한 젊은 세대가 여기에 몰리며 최근 미술품 가격이 껑충 뛰고 있다.
일정한 금액으로 한 개의 작품을 소유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작품을 소유하고 일정 기간이 지난 후에 수익까지 창출하는 크라우드펀딩은 4차 산업혁명이 만들어낸 4차 미술시장이자 미술품 구매와 향유, 수익 실현의 최첨단을 견인하는 새로운 미술품 구매방식이다.
미술은 사실 필자를 포함하여 많은 이비인후과 의사들에게 생소한 분야일 것이다. 하지만, 요즘같은 코로나 시국에 미술품은 진료와 연구에 바쁜 우리 이비인후과 선생님들에게 잠시나마 힐링할 수 있는 여유를 줄 수 있다. 이와 더불어, 이러한 미술품이 어떻게 유통되는지 알고 나만의 미술품에 투자하는 것은 흥미로운 하나의 재태크 방법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본 글을 통해 이비인후과 동료 선생님들께서 미술품 투자에 관심을 가질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