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은 최근 몇 년간 의료를 포함한 다양한 분야에서 혁신을 이끌고 있다. 그러나 ChatGPT와 같은 생성형 AI가 스크린 안에서 정보를 이해하고 텍스트를 생성하는 단계에 머물렀다면, 이제 세계의 관심은 AI가 실제 물리적 세계에서 몸(Body)을 가지고 스스로 행동하는 'Physical AI(Embodied AI)'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이러한 패러다임 변화의 중심을 직접 확인하고자 지난 6월 오스트리아 빈에서 개최된 IEEE International Conference on Robotics and Automation(ICRA 2026)에 참석하였다.
ICRA는 IEEE Robotics and Automation Society가 주관하는 세계 최고 권위의 로봇공학 학술대회로, 매년 전 세계 연구자와 산업계가 최신 성과와 미래 기술을 공유하는 자리이다. 올해 학회에는 70여 개국에서 수천 명의 관계자가 참석하였으며, 이들이 제시한 미래 비전은 "AI가 로봇의 몸을 갖는 시대"로 요약될 수 있었다. 이번 학회를 참관하며 느낀 가장 큰 변화는 로봇이 더 이상 의사의 명령을 기계적으로 수행하는 수동적인 자동화 도구가 아니라, 주변 환경을 이해하고 스스로 판단하며 인간과 협력하는 '지능형 파트너'로 진화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번 ICRA의 프로그램은 이러한 변화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었다. 산업계 기조강연(Industry Keynotes)에서는 NVIDIA, Amazon Robotics, Franka Robotics, AgiBot, Technology Innovation Institute(TII) 등 세계적인 테크 기업과 연구 기관이 참여하여 차세대 로봇 기술을 소개하였다. 발표의 공통된 주제는 로봇의 기계적 성능 향상이 아니라 Foundation Model, Vision-Language-Action(VLA), World Model, General-purpose Robot 등 AI 중심의 소프트웨어 기술이었다. 즉, 로봇 하드웨어 자체보다 로봇이 어떻게 세상을 이해하고 판단하며 행동할 것인가가 핵심 경쟁력이 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특히 NVIDIA는 로봇을 위한 파운데이션 모델과 가상 시뮬레이션 기반 학습 환경을 통해 다양한 작업을 수행할 수 있는 범용 휴머노이드 개발 전략을 제시했다. Amazon Robotics는 실제 물류 환경에서 축적한 대규모 데이터와 AI를 활용한 자율 작업 기술을, Franka Robotics는 Physical AI 시대를 위한 정교한 로봇 조작(manipulation) 기술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이들의 발표는 AI가 단순히 사람의 질문에 답하는 존재를 넘어, 물리적 공간에서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지능으로 발전했음을 실감케 했다.
이번 학회의 또 다른 핵심 키워드는 'Learning while Deploying(현장 전개 중 지속 학습)'이었다. 과거에는 연구실에서 모든 학습을 완벽히 마친 후 실제 환경에 적용하는 방식이었다면, 이제는 로봇이 실제 현장에 투입된 상태에서 지속적으로 경험을 축적하며 실시간으로 성능을 향상하는 패러다임이 제시되고 있었다.
이 개념은 의료 및 수술 분야에서 매우 중대한 의미가 있다. 수술 환경은 환자마다 해부학적 구조와 병변이 판이하고 수술 중 변형이 심해 모든 상황을 미리 학습시키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앞으로의 수술보조로봇은 이 기술을 기반으로 실제 임상 현장에서 다양한 환자의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축적하고, 술자인 외과의의 고유한 수술 스타일에 맞추어 지속적으로 성능을 고도화하는 방향으로 발전할 것으로 예상된다.
학회 기간 개최된 휴머노이드 로봇, 의료로봇, 수술로봇(Surgical Robotics) 관련 세션과 워크숍에서는 기존의 마스터-슬레이브(Master-Slave) 원격 조종 방식을 넘어선 자율 수술(Autonomous Surgery)을 위한 핵심 기술들이 활발히 발표되었다. 의료로봇 연구 역시 더 이상 기계공학 중심이 아니라 컴퓨터 비전, 생성형 AI, 강화학습, 대규모 언어모델이 융합되는 방향으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었다.
최신 연구들은 AI가 수술 영상 분석과 기구 인식을 통해 해부학적 구조를 파악하고, 전체 수술 프로세스 중 현재가 어느 단계인지를 실시간으로 인지하는 '수술 워크플로우 인식 기술'에 집중하고 있었다. 나아가 술자의 의도를 확률적으로 예측하여 필요한 동작을 자율적으로 조작(Autonomous Manipulation)하는 연구들이 결합해 미래 수술실의 모습을 명확히 보여주었다.
이러한 지능형 의사결정 시퀀스는 국제 챌린지 프로그램인 'AgiBot World Challenge 2026'에서도 고스란히 증명되었다. 정형화되지 않은 낯선 환경에서 로봇이 스스로 상황을 파악하고 과제를 해결하는 과정은, 외과의가 수술 중 마주하는 '환자 해부학적 구조 이해 - 현재 수술 단계 인식 - 다음 행동 계획 및 시행'이라는 연속적인 의사결정 과정과 완벽히 궤를 같이했다. 이 대회에서 입증된 범용 Physical AI 기술은 향후 수술보조로봇 개발의 핵심적인 기반이 될 것이다.
흥미롭게도 기술 세션 외에 함께 운영된 'Arts in Robotics' 프로그램의 로봇과 예술 융합 전시 역시 깊은 인상을 남겼다. 기술 발전의 궁극적인 목적이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데 있음을 상기시켰는데, 의료 역시 최첨단 기술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환자의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 궁극적인 지향점이라는 점에서 큰 공감대를 형성했다.
이번 학회를 참관하면서 필자는 현재 연구 중인 Physical AI 기반 수술보조로봇 플랫폼 개발의 방향성에 대해 깊은 확신을 갖게 되었다. 현재 임상 현장은 전공의 부족 사태의 장기화와 수술실 조수 인력의 부재로 인해 구조적인 인력 공백을 겪고 있다. 이비인후과 수술은 이러한 Physical AI 기반 보조로봇이 가장 시급하고도 효과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최적의 도메인이다.
후두미세수술, 경구강 로봇수술(TORS), 갑상선수술, 두경부암 수술 등은 매우 좁고 깊은 공간에서 극도로 높은 정밀도를 요구하며, 수술 시야 확보를 위한 보조작업과 반복적인 기구 교환이 필수적이다. 현재 이러한 단순 반복적이지만 고도의 집중력을 요하는 보조 작업은 인간 인력의 육체적 피로를 유발하고 숙련도에 따라 술자의 스트레스 격차를 키우고 있다.
향후 이 자리에 Physical AI 기반 수술보조로봇이 도입된다면 로봇은 흔들림 없이 최적의 보조작업을 통해 술자의 명령 없이도 실시간 영상을 분석해 적절하게 수술 시야 확보를 해주며 기구를 전달하는 '협업형 AI 파트너' 역할을 안전하게 수행해 낼 것이다. 이를 통해 조수의 비숙련도나 인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고, 술자는 보다 핵심적인 박리와 절제 과정 및 고차원적 의사결정에만 에너지를 집중하여 수술의 질과 환자의 안전성을 극대화할 수 있다.
필자가 이끄는 연구팀 역시 이러한 흐름에 발맞추어 멀티모달 인터페이스(음성 및 제스처 인식), 실시간 수술영상 분석, 환자 생체신호 통합, 수술 워크플로우 인식을 기반으로 수술실 내에서 보조자 역할을 능동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Physical AI 수술보조로봇'을 개발하고 있다. 이번 ICRA 2026에서 마주한 글로벌 최신 연구들은 우리의 개발 방향이 세계적인 기술적 흐름과 정확히 일치하고 있음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었다.
ICRA 2026은 생성형 AI 이후 인류가 맞이하게 될 Physical AI 시대를 선제적으로 보여준 국제무대였고 앞으로의 수술실은 의사 개인의 외로운 공간이 아니라 사람과 AI, 그리고 로봇이 긴밀하게 팀을 이루어 협력하는 공간으로 진화할 것이다. 이러한 메가트렌드 속에서 우리나라가 의료 AI와 수술보조로봇 분야를 선도하기 위해서는 임상 현장의 수요를 명확히 아는 의학과 최첨단 알고리즘을 다루는 공학, 그리고 산업계가 긴밀하게 학제 간 협력하는 연구개발(R&D) 생태계 구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번 참관을 통해 얻은 분명한 방향성을 바탕으로, 앞으로도 이비인후과 분야에 특화된 Physical AI 기술 개발을 지속하여 의료 현장의 한계를 극복하고 환자 안전을 높이는 연구에 매진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