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취미에 대해 글을 써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좋아하는 것이 많은 필자이지만, 망설임 없이 떠오른 것은 역시 사진이었다. 엄밀히 말하면 사진보다 카메라 그 자체가 좋다. 디지털이든 아날로그 필름이든 가리지 않는다. 저마다의 장점과 단점, 저마다의 특징이 있기 때문이다. 보관함과 책상 위에 놓인 카메라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다.
글을 시작하기 전에 문득 궁금해졌다. 나는 취미를 제대로 즐기고 있는 걸까? 취미(趣味)라는 말은 '뜻 취'에 '맛 미'를 더한 단어다. 내 마음이 향하는 곳에서 맛을 느끼는 일. 즉 기분을 좋게 하는 대상을 스스로 골라, 여가의 시간을 행복으로 채우는 활동이다. 결국 취미란 자신의 취향을 이해하고, 그 취향 위에서 '나 다운 삶'을 살아가게 해 주는 중요한 요소인 셈이다.
언젠가 읽었던 책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내가 지금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가의 기준은, 내가 하루에 도대체 몇 번 감탄하는가 다.”
하루 종일 어떠한 감탄도 나오지 않는다면 그것은 내 인생이 아니라고까지 저자는 말했다. 충분히 공감이 되고, 이해가 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어느 정도 다행인 사람이다. 좋아하는 카메라를 바라볼 때, 그리고 그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마주할 때,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감탄하기 때문이다. 이 글은 그 감탄에 관한 이야기다.
지금은 AI 시대다. '디지털 시대'라는 말조차 낡게 느껴질 만큼 AI의 붐이 거세다. 클릭 한 번이면 아주 멋진 이미지가 생성되고, 몇 초 만에 보정까지 끝나는 시대. 그런 시대의 한복판에서, 나는 굳이 아날로그 필름 카메라 이야기를 꺼내 보려 한다.
미디어에서 접해 본 분들도 많겠지만, 이런 시대에도 아날로그는 죽지 않았다. 오히려 요즘 MZ세대는 필름 카메라에, 심지어 출시된 지 20년이 넘은 오래된 디지털카메라에까지 관심을 가진다. 종이책, 필름 카메라, LP, 손 편지. 더 쉽고 빠르고 편리한 것이 넘쳐 나는 세상에서, 우리는 왜 다시 이 느리고 불편한 것들을 찾고 있을까?
나는 그 답이 '불편함 속에 있는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불편함 속에는 오롯이 자기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숨어 있다. 느림은 몰입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든다. 편리함이 넘치는 시대일수록 사람들은 역설적으로 불편함을 통해 쉼을 찾는다. 손끝으로 필름을 감고, 빛을 가늠하고, 숨을 고르며 셔터를 누르는 그 몇 초의 시간. 그 시간 동안 세상은 잠시 느려지고, 나는 비로소 지금, 이 순간에 머무르게 된다.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경험은 선물과 닮아 있다. 스쳐 지나갔을 짧은 순간이, 셔터를 누르는 순간 의미 있는 경험으로 바뀐다. 그리고 그 선물은 바로 열어 볼 수 없다는 점에서 더욱 선물답다.
나 역시 촬영을 마치고 현상소에 필름을 맡긴 뒤, 결과물을 기다리는 그 시간을 즐긴다. 며칠 뒤 도착한 스캔본을 처음 펼쳐 볼 때면, 마치 선물 상자를 여는 기분이 든다. 설렌다. 잘 나온 사진이 몇 장이라도 끼어 있으면 나도 모르게 감탄이 터진다. 디지털이라면 찍자마자 확인하고 지웠을 순간들이, 기다림을 거치며 하나하나 소중한 장면이 되어 돌아온다.
결과를 바로 볼 수 없다는 것. 실패한 컷을 지울 수 없다는 것. 필름 한 롤에 담을 수 있는 장수가 정해져 있다는 것. 디지털의 눈으로 보면 전부 단점이지만, 바로 그 제약들이 한 장 한 장에 마음을 싣게 만든다. 기다림은 불편이 아니라, 사진이 내게 건네는 선물의 포장지 같은 것이다.
나는 어릴 적부터 사진을 좋아하시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자연스럽게 필름 카메라에 익숙해져 있었다. 학창 시절에는 사진 동아리 활동을 하며 늘 소형 35mm 필름으로 틈틈이 일상을 찍었고, 필름이든 디지털이든 마음에 드는 카메라를 종종 수집하기도 했다. 그렇게 하나둘 모인 카메라가 지금은 집에 사십여 대. 각자의 삶의 방식에 따라 이런 내가 이상해 보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조금만 기다려 주시길. 이 수집벽에도 나름의 이야기가 있다.
필름은 판형에 따라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우리가 흔히 아는 35mm 소형 포맷, 120필름을 쓰는 중형 포맷, 그리고 그보다 더 큰 대형 포맷이다. 오랫동안 35mm의 세계에만 머물러 있던 내게, 어느 날 지인을 통해 우연히 중형 필름 카메라의 세상이 열렸다.
첫인상은 그저 '엄청나게 큰 카메라'였다. 크고, 무겁고, 불편했다. 그런데 현상하고 스캔한 이미지를 모니터로 마주한 순간, 나는 완전히 다른 세계에 들어와 있었다. 고운 색감과 중형 특유의 공간감. 35mm에 익숙했던 내게 그것은 너무나 멋진 신세계였다.
중형은 한 컷의 크기에 따라 6x9, 6x7, 6x6, 6x4.5(645) 판형으로 나뉘고, 판형에 따라 120필름 한 롤에 찍히는 장수도 달라진다. 가장 큰 6x9 판형은 한 롤에 고작 8장이 전부다. 여덟 번의 셔터. 그래서 한 장을 찍을 때마다 집중하지 않을 수가 없다. 나는 6x6를 제외한 모든 판형을 직접 써 보았다. 각 판형이 가진 장단점을 몸소 느껴 보고 싶어, 아주 오랜 시간에 걸쳐 중형 카메라를 모으고 또 손에 들고 다녔다.
그중 몇 대를 소개하고 싶다. 후지 GW690III는 노출계조차 없는 완전 기계식 카메라다. 6x9 포맷이며, 해외에서는 '텍사스 라이카'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텍사스에서는 뭐든지 크다니까, '커다란 라이카'라는 뜻이다. 슬라이드 필름을 물려 찍으면 한 장 한 장의 필름이 살아 숨 쉬는 것 같아 “우와, 우와”를 연발하게 된다. 최대 단점은 역시 한 롤에 8장이라는 것. 그러나 그 덕분에 셔터 한 번의 무게를 배운다.
6x9 포맷의 기계식 카메라, Fuji GW690III — '텍사스 라이카'
여행용으로는 Mamiya 7II와 PLAUBEL Makina 670을 추천한다. 중형치고는 가볍고, 6x7 포맷으로 한 롤에 10장이 찍힌다. Mamiya 7II에 80mm F4 렌즈를 물린 조합이 선사하는 화질은 볼 때마다 감탄이 나온다. 인스타그램을 검색해 보면 유명한 필름 사진 인플루언서들이 하나씩은 가지고 있는 카메라다. 마키나 670은 장착된 80mm Nikkor 렌즈의 밝기가 F2.8로 중형에서는 꽤 밝은 편이라, 빛이 부족한 실내에서도 유용하다. 접이식이라 가방에 쏙 들어가는데, 화질은 끝내 주게 잘 나온다.
여행의 동반자 — Mamiya 7II와 PLAUBEL Makina 670
PENTAX 67II도 빼놓을 수 없다. 105mm F2.4 렌즈 하나 장착하고 인물 사진을 찍을 때의 존재감은 어마어마하다. ‘철커덕!’하고 우렁차게 울리는 셔터음은 귀까지 즐겁게 한다.
우렁찬 셔터음의 주인공, PENTAX 67II
645 포맷에서는 Mamiya 645 AFDII, PENTAX 645NII, Fuji GA645zi와 645i 등을 추천한다. 자동초점 기능이 있어 찍기 쉽고, 한 롤에 최대 16장까지 기록할 수 있다. 마치 소형 똑딱이 카메라처럼 다루기 쉽지만, 그 결과물은 단언컨대 비교가 안 될 만큼 멋지다. 입문용으로 아주 좋다. 최신 디지털카메라에 비하면 자동초점이 약하지만, 움직이는 아이도 찍을 수 있을 정도는 된다.
입문용으로 좋은 645 포맷 카메라들 — Mamiya 645 AFDII, PENTAX 645NII, Fuji GA645zi, 645i
물론 디지털에도 중형 포맷이 있다. 대표적으로 핫셀블라드와 후지가 있는데, 센서 크기(약 43.8 x 32.8mm)가 필름 시절과 완벽히 같지는 않지만, 일반 풀프레임 디지털카메라보다 계조 표현과 심도 표현, 화소 수에서 유리한 면이 있다. 어두운 부분에서 밝은 부분으로 넘어가는 빛의 결이 한층 부드럽고, 인물의 피부와 배경이 분리되는 그 특유의 입체감도 살아 있다. 필름 가격이 부담스럽다면 중형 디지털카메라로 시작하는 것도 충분히 괜찮은 방법이다.
여기 소개한 것 말고도 세상에는 더 많은 중형 필름 카메라가 있다. 다만 나의 취미도 아직 진행 중이라 다 써 보지는 못했다. 어쩌면 그래서 이 취미가 더 좋은지도 모른다. 아직 만나 보지 못한 카메라가 남아 있다는 것, 아직 겪어 보지 못한 감탄이 남아 있다는 것. 지금도 차근차근, 다음 카메라를 모으는 중이다.
유튜브에는 디지털카메라와 필름 카메라를 비교하는 영상이 넘쳐 난다. 결론은 대부분 같다. 내 손안의 핸드폰이 제일 좋다는 것. 맞는 말이다. 이미 핸드폰 카메라는 기술적으로 매우 우수하고 화질도 훌륭하다. 요즘의 중형 필름 카메라는 분명 부족한 점이 많고, 실제 촬영에서 제약도 많으며, 필름 값도 만만치 않다.
그럼에도 내가 생각하는 감정적 가치, 경험적 가치만큼은 필름 카메라가 더 뛰어나다고 결론 내린다. 이유는 단순하다. 한 장 한 장 찍을 때 내 시간을 더 많이 쓰기 때문이다. 필름을 감아 넣고, 빛을 재고, 초점을 맞추고, 상대의 표정이 가장 좋아지는 순간을 기다린다. 셔터를 누르기까지의 그 모든 과정이 곧 그 사람을, 그 순간을 들여다보는 시간이다. 여러분도 그렇지 않은가. 우리는 좋아하는 것에 기꺼이 시간과 돈을 더 쓴다. 그리고 시간을 들인 만큼, 그 순간은 더 깊이 내 것이 된다.
골동품 같은 옛 카메라로 멋진 사진이 뽑혀 나오는 것을 보고 있으면 도무지 손에서 놓을 수가 없다. 수십 년 전에 만들어진 기계가 오늘의 빛을 받아 오늘의 얼굴을 담아낸다. 글로 표현하기 힘든 미묘한 아름다움이 묻어 있다. 나의 평범한 일상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바뀌는 작은 마법이 걸려 있는 것 같다.
내 사진의 대부분은 인물 사진이다. 가족과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을 찍어 주며, 다시 오지 않을 순간들을 필름 위에 남긴다. 사진이 쌓이는 만큼, 시간의 흐름에 따라 카메라도 늘어 간다. 카메라를 마흔 대 넘게 모으는 내가 누군가에게는 이상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자신만의 고유한 삶의 방식을 매개해 주는 물건이나 취미가 하나쯤 있다면, 시간이 지나 그 물건에 관한 이야기가 곧 나의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이 카메라는 어느 여행에서 함께했고, 저 카메라로는 누구의 얼굴을 담았는지. 그런 이야기가 모이고 또 모이면, 마침내 하루에도 몇 번씩 감탄하는 삶이 되지 않을까.
우리는 왜 다시 아날로그를 찾고 있을까. 이제 나의 답은 분명하다. 느리고 불편한 것들 속에서만 만날 수 있는 시간이 있기 때문이다. 기다림이 있고, 집중이 있고, 그 끝에 감탄이 있기 때문이다. 혹시 디지털카메라가 더 이상 당신에게 즐거움을 주지 않는다면, 중형 필름 카메라를 한번 써 보시길.
여덟 장짜리 필름 한 롤이, 당신의 평범한 하루에 작은 마법을 걸어 줄지도 모른다.
이 글을 쓰는 지금은 뜨거운 여름이다. 오늘도 나는 필름을 감아 넣고,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 앞에서 숨을 고르고, 조심스럽게 셔터를 누른다. 철커덕. 그 소리와 함께 또 하나의 순간이 필름 위에 남는다. 먼 훗날 이 사진들을 넘겨볼 소중한 사람들을 생각하면, 오늘의 여덟 장이 조금도 아깝지 않다.
26년 뜨거운 여름, 사랑하는 아들과 함께 (Mamiya645 + Potra1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