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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NTian January 2021 W-ENTian January 2021

추운 겨울 밤을 북유럽 미스터리와 함께 서울특별시 보라매병원 마취통증의학과 은재상

서울특별시 보라매병원 마취통증의학과 / 은재상

북유럽 미스터리의 매력

어디선지 냉기가 흘러온다. 어딘지 모르게 비정하다. 사람들은 코트의 옷깃을 여미고 추위에 대해 불평을 한다. 한국의 겨울 이야기가 아닙니다. 약 10여년 전부터 전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북유럽 미스터리, 이른바 ‘노르딕 느와르‘의 이야기입니다. 미스터리를 좋아하지 않으시는 분들도 이름만은 들어봤을 스티그 라르손의 <밀레니엄> 시리즈와 요 네스뵈의 <해리 홀레 시리즈>의 성공 이후, 북유럽 미스터리는 한국 시장에서도 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추운 북유럽의 날씨와 유독 추운 한국의 겨울이 비슷하기 때문일까요, 인기가 살짝 사그라든 현재도 북유럽 미스터리는 미스터리 시장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습니다.
과연 무엇이 우리로 하여금 북유럽 미스터리에 매력을 느끼게 하는 걸까요? 바야흐로 본격적인 겨울이 시작되었습니다. COVID-19에 추위가 겹쳐 외출하기 쉽지 않은 이 겨울 밤에, 따뜻한 핫 초콜릿 한 잔을 들고 이불을 뒤집어쓴 채 북유럽 미스터리에 빠져 보시는 것은 어떨지요.

스티그 라르손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스티그 라르손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스웨덴 작가 스티그 라르손의 ‘밀레니엄 시리즈’의 첫 작품인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은 그 자체로 베스트셀러일 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북유럽 미스터리의 열풍을 불어오게 한 기념비적인 작품입니다. 오랜 기간 언론인으로서 글을 써 온 스티그 라르손의 필력이 돋보이는 작품이죠. 기자인 주인공 미카엘이 천재 해커 리스베트와 함께 재벌 그룹 회장의 조카 손녀의 실종 사건을 조사하다가 점점 더욱 심각한 범죄와 맞닥뜨리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밀레니엄 시리즈는 원래 10부작으로 완성될 예정이었습니다만, 안타깝게도 4권 집필 도중 작가인 스티그 라르손이 심근경색으로 사망하게 됩니다. 그것도 1부의 원고를 출판사에 넘기고 12일 후에 사망하는 바람에 본인의 책의 성공을 보지도 못하게 되었죠. 스티그 라르손은 가족들과 사이가 좋지 않아 절연 후 사실상 아내인 에바 가브리엘손과 함께 지내고 있었습니다만, 성향 때문에 늘 극우파들의 살해 협박에 시달려 연인에게 피해가 갈까 봐 혼인신고도 하지 못한 상태였던 탓에 소설 시리즈의 판권은 절연한 가족들에게 넘어가게 됩니다.

이 때문에 4권 이후의 밀레니엄 시리즈는 그 가족들이 고용한 대필 작가가 쓴 작품들이죠. 현재 6권까지 발매되어 있고 대필 작가가 쓴 4~6권은 원작보다 못하다는 평과 나름의 재미가 있다는 평이 갈리고 있으므로 감안하셔야 합니다만, 그럼에도 추천할 만한 시리즈라는 점은 결코 달라지지 않습니다.

이 작품은 데이빗 핀처 감독이 대니얼 크레이그와 루니 마라 주연으로 영화로 만들기도 했으니, 책이 부담스러우신 분은 이 쪽을 먼저 감상하셔도 됩니다. 다만 영화의 평가 자체는 좋으나 책이 워낙 방대한 분량이라 덜어낸 부분이 많으니, 역시 제대로 감상하시려면 책을 읽으시는 편이 나으실 겁니다.

요 네스뵈 <스노우맨>

요 네스뵈 <스노우맨>
노르웨이 작가 요 네스뵈의 ‘해리 홀레 시리즈‘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북유럽 미스터리의 전형을 만들어낸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어딘지 모르게 어둡고 거친 주인공, 증거나 과학적 수사보다는 범인의 심리에 집중하는 추리, 단순히 범죄소설이 아니라 사회 고발적 내용을 담고 있는 내용까지. 그리고 무엇보다 재미있습니다.
시리즈의 첫 작품은 <박쥐>입니다만 초창기 작품들은 미국식 하드보일드에 가깝고 북유럽 미스터리의 성격이 잘 드러나지 않는데다 작가의 필력이 아직 부족하던 시절의 작품이라, 역시 입문용으로 추천하는 작품은 <스노우맨>입니다. 독자들과 평론가들이 공통적으로 꼽는 시리즈 최고 작품이죠. 희생자들의 잘린 머리로 눈사람을 만드는 연쇄살인범을 쫓는 형사 해리 홀레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입니다.

여담이지만, 하드보일드에서 시작해 ‘느와르‘라고 불리는 시리즈이니만큼 분위기는 결코 밝지 않습니다. 시리즈가 거듭될수록 점점 지치고 배신당하고 어딘가가 깎여 나가는 (심지어 나중엔 손가락까지) 해리 홀리를 보시게 될 겁니다. 이에 독자들이 작가에게 주인공을 너무 혹사시키는 것 아니냐고 묻자, 요 네스뵈는 “그렇게 하나씩 잃어가고 마모되어 가는 것이 인생“ 이라고 답하였습니다. 아무래도 해리 홀레의 고생은 계속될 모양입니다.

마이 셰발, 페르 발뢰 <로재나>

마이 셰발, 페르 발뢰 <로재나>
밀레니엄 시리즈나 요 네스뵈는 북유럽 미스터리를 접해보지 않으신 분들도 이름 정도는 들어보셨겠지만, 마이 셰발과 페르 발뢰 부부의 ‘마르틴 베크‘ 시리즈는 앞서 언급한 두 작가의 작품에 비하면 우리나라에서 인지도가 높은 편은 아닙니다. 그러나 스티그 라르손과 요 네스뵈가 북유럽 미스터리의 위상을 현재까지 끌어 올린 주자들이라면, 마이 셰발과 페르 발뢰는 현재 북유럽 미스터리의 탄탄한 토대를 쌓았다고 평가받는 작가입니다. 요 네스뵈의 첫 작품인 <박쥐>가 1997년, 스티그 라르손의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이 2005년 작품인데, 마르틴 베크 시리즈의 첫 작품인 <로재나>는 무려 1965년 작품입니다. 같은 출판사에서 일하던 두 작가는 이전에 없던 사회고발적 미스터리에 대한 아이디어를 나누던 중 마르틴 베크 시리즈를 구상하게 되었고 총 10권의 시리즈가 전세계적으로 1000만부 이상 팔리는 대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안타까운 점은, 집필을 시작하며 10권 전부를 헐값에 계약해 버리는 바람에 금전적인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고 하네요.
지금으로부터 50여년 전 작품이니만큼 현재의 스릴러의 속도감과는 조금 거리가 있습니다. 고전 소설들이 그렇듯 도입부부터 치닫는 구성은 이 시절 소설에서는 찾아보기 힘들어서 초반엔 살짝 고전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짜임새 있는 구성과 매력적인 캐릭터에 점차 빠져들다보면 어느새 책에 몰입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실지도 모릅니다.

무엇보다 당시 미스터리의 대부분이 천재 주인공의 원맨 추리쇼 형식이었다면, 이 작품은 현실적인 주인공, 동료들과의 연계, 살기 좋은 복지국가로만 알려졌던 스웨덴의 어두운 면에 대한 사회고발적 성격이라는 현재의 북유럽 미스터리의 특징을 모두 갖추고 있어 과연 북유럽 미스터리의 선구자라는 생각이 드실 겁니다. 요 네스뵈는 한 인터뷰에서 “1970년대 이래 마이 셰발과 페르 발뢰는 스칸디나비아 범죄소설의 대부모(Godparents)였습니다. 그들은 간이매점에서 팔던 스칸디나비아의 범죄소설을 번듯한 서점에서 팔게 만들었습니다“ 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북유럽 미스터리에 흥미가 있으시다면, 꼭 읽어 보셔야 할 시리즈입니다.

크리스티나 올손 <파묻힌 거짓말>

크리스티나 올손 <파묻힌 거짓말>
잘 나가는 변호사 마틴 베너의 앞에 어느날 한 남자가 찾아와 자신의 동생의 누명을 벗겨 달라는 의뢰를 합니다. 문제는 그 동생은 이미 자신이 저지른 살인사건의 범행을 자백하고 자살했다는 것이죠. 아무런 의미가 없어 보이는 의뢰에 베너는 거절하지만, 의뢰인의 간곡한 부탁에 베너는 어쩔 수 없이 조사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가 늘 그렇듯, 주인공은 조사하면 할수록 하나씩 드러나는 의문점에 점점 더 사건에 빠져들게 되고, 급기야 본인과 본인이 사랑하는 주변 사람들까지 위험에 노출되게 되죠.
(출판사의 홍보에 의하면) ‘스웨덴 범죄소설의 여왕’이라 불리는 크리스티나 올손은 본래 범죄소설 작가가 아니라 범죄사회학자로, 스웨덴 안보경찰과 외교부, 국방부 등에서 외교정책 전문가로 활동했으며 유럽 안보협력기구에서 반 테러리즘 담당관으로 활약한 경력도 있습니다. <파묻힌 거짓말>은 ‘프레드리카 베르그만‘ 시리즈로 이미 스웨덴을 비롯한 전 세계에서 명성을 얻은 작가가 새로운 주인공으로 시작한 ‘마틴 베너 시리즈’의 첫번째 작품입니다. 엄밀히 말해 북유럽 느와르의 색채보다는 하드보일드 스릴러의 성격이 강한 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크리스티나 올손의 매력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서스펜스에 있습니다. 여러가지 면에서 위에 언급한 마르틴 베크 시리즈와는 다른 성격의 책이므로 이런 쪽을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무척 재미있게 읽으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약간의 스포일러입니다만, 요즘의 트렌드대로 이 책은 결말 부분에서 약간의 ‘떡밥‘을 남겨놓습니다. 진정한 흑막의 정체를 밝히지 않고 다음 권으로 이야기를 넘기는 것이죠. 요즘의 미드 트렌드 같은 이런 결말을 좋아하지 않으시는 분께서는 감안하시면 좋겠습니다.)

유시 아들레르-올센 <미결처리반 Q>시리즈

유시 아들레르-올센 <미결처리반 Q>시리즈
아직 소개 드리고 싶은 작품들이 많습니다만 지면 관계로 마지막으로 이 작품을 소개 드리고 마무리를 지을까 합니다. 덴마크 작가 유시 아들레르-올센의 ‘칼 뫼르크 시리즈‘는 한국에서는 <자비를 구하지 않는 여자>와 <도살자들>의 두 편이 번역, 출간되었으나 현재로는 절판 상태입니다. 그럼에도 이 작품을 소개하는 것은, 이 작품들이 총 4편의 영화로 만들어져 한국에서도 개봉했고 현재 넷플릭스나 왓차, 유튜브 등에서 감상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주인공 칼 뫼르크 강력계 형사는 독선적인 수사 방식으로 인해 동료를 죽게 한 후, 서류를 정리하는 미결처리반으로 좌천됩니다. 여기에서 그는 새로운 동료 앗사드와 함께 사건들을 정리하던 도중 한 정치인의 실종 사건에서 의심 가는 정황을 발견하고 독자적인 수사를 하게 되죠. 경찰 영화이자 버디 무비인 이 영화는 헐리웃 스릴러 같은 액션이나 서스펜스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하지만 영화 내내 보여지는 싸늘하면서 긴장감 넘치는 분위기와 서로 다른 성격의 동료가 티격태격하며 의혹을 풀어가는 과정은 북유럽 미스터리의 분위기를 물씬 풍기고 있죠. 한국 시장에서는 크게 인기를 끌지는 못했지만, 원작 소설의 내용을 잘 살리고 있어 미스터리 마니아들에게는 꽤 호평 받은 작품입니다. 이번 주말의 영화로 시도해 보시는 것을 어떨까요?

추운 겨울 밤을 북유럽 미스터리와 함께

많은 작품을 소개하기보다는 북유럽 미스터리의 매력을 전해드릴 수 있는 작품들을 고르고자 노력했습니다. 이 밖에도 다양한 작품들이 있고 작품마다 각기 다른 매력이 있으니, 소개해 드린 작품들이 마음에 드셨다면 다른 작품들도 시도해 보시면 좋을 거라 생각합니다. 날씨가 점점 추워지고 있네요. 본격적으로 겨울이 온 듯 합니다. 건강 조심하시고 힘든 시기를 무사히 이겨내시길 기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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