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아르헨티나의 탱고 작곡가 아스토르 피아졸라(Astor Pantaleón Piazzolla)의 탄생 100주년이다. 춤곡이었던 탱고 음악에 재즈, 클래식, 팝 등의 다른 장르의 음악을 반영한 누에보 탱고(Nuevo Tango)를 내세워 감상용 음악, 순수 음악으로 발전시켰다는 평가를 받는 피아졸라 덕분에 오늘날 일반적으로 접할 수 있는 음악으로서의 탱고는 대부분 피아졸라의 작품이거나 그의 영향을 받은 작품들이다.
1921년 3월 11일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이발사 아버지와 재봉사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피아졸라는 1925년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주한 후, 아버지가 사다 준 반도네온을 연주하며 음악과 인연을 맺었다. 열세 살 때 당대 탱고의 거장 카를로스 가르델(Carlos Gardel)을 만난 피아졸라는 그의 앞에서 반도네온을 연주할 기회를 갖게 되었고, 1936년에는 아르헨티나의 고향으로 돌아와 여러 탱고 오케스트라에서 연주자로 활동을 시작하면서 반도네온 연주 외에도 편곡이나 피아노 연주 등으로 재능을 드러내었다. 1941년에는 아르헨티나를 방문한 피아니스트 아르투르 루빈스타인(Artur Rubinstein)을 찾아가 자신이 작곡한 피아노곡을 평해달라는 패기를 보였으며, 피아졸라의 재능을 눈여겨본 루빈스타인은 그에게 작곡가 알베르토 히나스테라(Alberto Ginastera)를 사사할 기회를 주었다. 히나스테라의 밑에서 음악 이론을 배우고 문학, 미술 등의 교양을 쌓으면서 첫 클래식 작품을 발표하기도 한 피아졸라는 클래식 음악과 기성 탱고 음악 사이에서 갈등을 하다가 1951년 작곡한 ‘부에노스 아이레스 교향곡(Sinfonia Buenos Aires)’으로 새로운 기회를 맞았다. 당시로서는 매우 대담하게 정동 관현악 편성에 반도네온 두 대를 추가했는데, 이 곡이 파비안 세비츠키 음악상을 수상하면서 클래식 작곡가로서 자신의 존재를 어필할 수 있게 되었고, 프랑스의 전설적인 음악 교육자인 나디아 불랑제(Nadia Boulanger)로부터 수학을 할 기회를 얻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트라빈스키(Igor Stravinsky)나 바르톡(Bartók Béla Viktor János) 같은 음악가가 되고 싶었던 그에게 돌아온 “너의 작품 속에서 정작 너 자신은 찾아볼 수 없고, 다른 작곡가들만이 존재할 뿐이다.” 라는 불랑제의 평가는 매우 절망적이었다. 어느 날 상심한 피아졸라에게 그동안 어떤 음악을 해왔는지 불랑제는 물었고, 집요한 물음에 결국 탱고를 했음을 밝힌 피아졸라는 불랑제의 앞에서 자신이 작곡한 탱고를 연주한 후 이것이 진정한 피아졸라의 음악이라는 찬사를 듣게 된다. 이를 계기로 완전히 탱고 음악가로 탈바꿈하게 된 피아졸라는 파리 유학을 마치고 아르헨티나로 돌아가 밴드를 결성하고 탱고 작곡과 연주에 힘을 기울였다. 탱고의 요소에 재즈, 클래식 음악을 가미한 그의 새로운 음악은 젊은 청중을 사로잡기 시작하였으나, 전통적인 탱고 리듬을 포기했다는 이유로 보수적인 탱고 팬들로부터의 격렬한 저항을 불러일으켰고, 이는 1958년 그가 뉴욕으로 떠날 때까지 계속되었다. 새로운 돌파구를 찾기 위해 뉴욕으로 떠났지만 일은 없었고, 1959년에는 아버지의 부고 소식까지 접하며 최악의 시기를 맞게 된 피아졸라는 절망 속에서 ‘아디오스 노니노(Adiós Nonino)’ 라는 걸작을 작곡하게 된다. 1960년 다시 아르헨티나로 돌아온 피아졸라는 TV 출연으로 인지도를 쌓기 시작했고, 퀸테토 누에보 탱고(Quinteto Nuevo Tango, 탱고 5중주단)을 결성한다. 인지도가 올라가면서 지방 순회 공연과 유럽 순회 공연도 하며, 1965년에는 아르헨티나 문화 홍보 차원에서 미국과 브라질에서 콘서트를 열면서 첫 전성기를 누리게 된 피아졸라는 1968년 시인 오라시오 페레르(Horacio Ferrer)를 만나 오페레타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마리아(Maria de Buenos Aires)’를 쓰기 시작하였으며, 전세계에 그의 이름을 알리게 된 ‘어느 광인을 위한 발라드(Balada para un Loco)’ 등의 히트곡도 작곡한다. 이러한 활동은 1971년까지 이어졌고, 페레로와 함께 ‘전주곡 3부작’을, 단독으로는 순수 기악곡 모음인 모음곡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사계(Cuatro Estaciones Porteñas)’를 작곡한다. 1974년 유럽으로 넘어가 활동을 계속한 피아졸라는 우리에게 익숙한 리베르탱고(Libertango) 등의 방송용 소곡들을 작곡하며 제2의 전성기를 맞게 된다. 1975년에는 전자음악에 도전도 하고, 1980년대 후반에는 영미권 활동에 주력하며 명실상부한 국제 스타의 반열에 오르게 된 피아졸라는 평생 피워온 줄담배로 인해 1988년 관상동맥우회 수술을 받게 되며, 1990년 다음 공연을 준비하던 중 뇌출혈로 쓰러져 2년여간의 투병 생활 끝에 1992년 7월 4일 71세의 나이로 타계했다.
기존의 음악을 벗어나 다양한 장르를 접목하는 시도를 하며 ‘누에보 탱고’라는 장르를 개척하고 수많은 명곡을 남긴 피아졸라의 음악을 감상하며 가을을 닮은 탱고를 느껴보자.
1959년 아버지의 부고를 전해듣고 충격을 받아 탄생하게 된 곡으로, 피아졸라 스스로도 본인 최고의 곡으로 자평하기도 했다. 국내에서는 김연아 선수의 2014 소치 동계올림픽 피겨 스케이팅 프리 프로그램으로 유명하다.
피아졸라가 추구하던 누에보 탱고를 상징하는 곡으로 평가받는 곡으로, 피아졸라의 사후에도 여러 뮤지션들이 편곡하여 연주하였다. 탱고 중에서도 대중성이 매우 높은 곡이며, 국내에서는 TV 광고 음악과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에 삽입되면서 인지도가 높아졌다.
1969년 남미 전역에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곡. 탱고 곡 치고 이례적으로 긴 길이와 주제, 스타일, 라임이나 리듬 등 어떠한 측면에서도 전통적인 탱고와 공통점이 없으며, 초현실적이고 현대적인 노랫말이 붙어있다. 전통적인 형태로부터 너무나도 멀리 벗어나있어, 피아졸라 이전과 피아졸라 이후를 구분하는 경계선이 되어버린 곡이다.
1968년 작곡한 오페레타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마리아(Maria de Buenos Aires)’에 포함되었던 곡으로, 후에 대중적인 TV 쇼의 시그널 음악으로 사용되면서 독립된 음악으로 알려졌다. 전통적인 fast-slow-fast의 탱고 형식 위에 클래식의 대표적인 작곡 기법인 대위법을 바탕으로 작곡된 4성 푸가의 독특한 양식을 취하고 있는 곡이다.
1984년 영화 “엔리코 4세”의 OST로 발표된 곡으로, 영화는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두지 못하였으나 Oblivion은 애절하면서도 유려한 멜로디 진행으로 지금까지도 사랑받고 있다. 워낙 많은 악기로 커버되고 재해석되어오고 있으며, 피아졸라를 대표하는 곡 중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