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제목을 설명 드립니다. ‘주짓수’에 대하여 들어본 사람도, 생소한 사람도 있을 겁니다. 현재 흔히 말하는 ‘주짓수’란 ‘브라질리언 주짓수(Brazilian jiu-jitsu, BJJ)’를 말하며, 관절 꺾기나 조르기 등을 이용하여 상대방을 제압하는 무술을 말합니다. 저는 이 주짓수를 2018년부터 2021년까지 4년째 하고 있는 이비인후과 전공의입니다.
사람들은 제가 “주짓수” 라는 운동을 한다고 하면 때리고 맞는 험한 운동을 여자가 하느냐고 말합니다. 일단 오해를 풀자면, 현재의 주짓수는 때리는 등의 타격은 하지 않습니다. 2018년 본과 4학년 시절, 혼자 하는 헬스가 아닌 종목 운동을 하고 싶었고, 남을 때리기도 맞기도 하고 싶지 않아 검도, 태권도, 무에타이, 복싱이라는 카드들은 자연스럽게 배제가 되어 “주짓수” 라는 카드가 한 장 남았습니다. 주짓수의 유명한 타이틀로 ‘여자가 남자를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무술’라는 말이 있습니다. ‘타격도 없이 남자를 이길 수 있다고? 정말 멋진데?’ 라는 가벼운 생각으로 바로 가까운 주짓수 체육관을 방문했습니다. 2018년 7월 매우 더운 여름날이었지만, 도장의 문을 연 순간, 밖보다 더 더운 열기와, 창문을 가득 덮은 습기, 수영장 같은 파란매트, 흰색, 검은색, 파란색 도복을 입고 칡뿌리같이 얽혀있는 많은 사람들에 깜짝 놀랐습니다. 어안이 벙벙한 상태로 입관 상담을 하고 다시 밖으로 나오니, 잠시 다른 세상에 다녀온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주짓수에 입문하여, 많으면 일주일에 7회, 월요일에서 목요일은 수업 2시간, 금요일은 오픈 매트(자율 스파링), 토요일은 노기(No GI, 도복 없는 스파링), 일요일은 존 프랭클 사범님(연세대학교 언론국제학 교수, 한국에 최초로 주짓수를 전파한 선구자)의 수업을 들었습니다. 지금은 현재 소속중인 병원 앞 3분 거리에 체육관이 새로 생겨 수련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사진 1. 4년째 화이트 벨트를 유지하고 있는 본인
땀내 나는 주짓수를 나이와 성별에 상관없이 추천 드리고 싶습니다. 일단 재미있습니다. 상당히 재미가 많습니다. 보통 제가 받는 수업은, 초반 몸풀기, 기술수업, 스파링 3단계가 있습니다. 몸풀기 운동으로 앞구르기, 뒤구르기, 옆구르기, 테크니컬 스탠드업, 브릿지, 새우빼기, 고릴라자세, 악어자세, 트라이앵글 드릴을 하고 나면 기분 좋은 땀이 나있습니다. 기술수업으로는 기본적인 암바, 쵸크, 기무라, 테이크다운 기술부터, 델라히바 가드, 라쏘 가드, 스파이더 가드 기술까지 실력과 무관하게 다 함께 수업을 듣고, 짝을 지어 연습을 합니다. 마지막으로 사범님이 정해준 스파링 파트너와 5분씩 스파링을 반복합니다. 앞서 설명한 자세와 기술은 이름만으로 상상이 되거나 혹은 전혀 생소한 이름들입니다. 궁금하신 분들은 Youtube에 검색해보시고 상상의 주짓수를 눈으로 직접 시청해보시길 권합니다. 주짓수의 동작들은 먼저 나와의 싸움입니다. 내 몸을 제대로 컨트롤 할 수 있을 때, 남에게 내 기술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스파링 중에는 생각보다 파트너와 밀착한 상태로 시선은 천장이나, 매트를 향해있어 내 몸이나 상대방 몸을 보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내 두 팔과 내 두 다리가 어디서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어떻게 움직일 수 있는지,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는 처음 주짓수를 시작할 때 정말 막막했습니다. 내 사지도 어디서 뭐하고 있는지 모르겠는데, ‘내 앞의 상대를 제압할 수 있을까? 제압 상태에서 탈출할 수 있을까?’ 오만 가지 상상을 하며 1년이 지나니 차츰 내 팔이 뭐 하는지, 내 다리가 뭘 해야 하는지 머릿속 그림이 그려졌고, 상대방의 움직임도 밑그림을 그려볼 수 있었습니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내 몸을 알아가는 재미가 큽니다.
생활체육을 취미로 하거나, 다른 동호회를 하시는 분들은 공감하시겠지만, 내가 좋아하는 주제 하나로 이렇게나 다른 사람들과 밤이 새도록 떠들 수 있다니 신기할 따름입니다. 체육관 안에는 정말 다양한 사람이 있습니다. 20대부터 60대, 남자와 여자, 책을 쓰는 작가, 심리상담가, 식물을 사랑하는 사람, 파일럿, 배우, DJ, 그래픽 디자이너, 비디오 감독, 회사원, 자영업자, 의사, 간호사. 많은 사람들이 같은 운동을 좋아하고 있습니다. 주짓수라는 하나의 주제로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서, 그들의 삶의 순간순간을 함께 보낼 수 있습니다.
사진 4. 100kg가 넘는 친구들과 본인
속된말로 운동은 장비빨이란 말이 있습니다. 주짓수에서 도복(Gi)이라는 겉장비와 도복 안에 입는 래쉬가드라는 속장비가 있습니다. 도복은 보통 우리가 가장 친숙하게 아는 하얀 도복과 파란색, 검은색 도복이 기본입니다. 이밖에도 카키색, 네이비색, 핑크색 다양한 색깔이 있습니다. 가격은 저렴하게는 10만원 초반, 해외 직구까지 겸하는 경우 40-50만원까지 다양합니다. 저는 이제까지 5-6벌의 도복을 구매했으며, 체육관에서 각자 취향의 색색의 도복들을 보는 재미도 있습니다. 도복마다 품질의 차이는 크지 않지만, 땀을 많이 흘리는 운동이다 보니 매번 세탁이 필수이며, 잦은 세탁 후 이어지는 도복의 수축률이 각기 다릅니다. 조사를 잘하고 구매하여, 도복을 차츰 내 몸에 맞게 하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도복뿐만 아니라, 운동 중 땀흡수 및 민망한 상황을 방지하기 위하여 착용하는 래쉬가드도 맞춤 제작 등 재미있는 디자인이 많습니다. 주짓수를 처음 시작하는 날, 래쉬가드를 수영장에서 입는 래쉬가드로 오해하여 앞지퍼가 달린 수영용 래쉬가드를 입고 가 낭패를 본 적이 있습니다. 주짓수는 맨손 맨발로 하는 운동으로 상대방과 본인의 부상 발생 가능성으로 지퍼나 목걸이, 귀걸이 같은 악세사리를 금지합니다.
사진 5. 왼쪽에서 2번째 본인. 흰색, 검은색, 파란색 다양한 도복들.
모든 운동에는 위험이 함께합니다. 훌륭한 지도자의 감시아래에도 부상은 발생하기 마련입니다. 특히 주짓수는 손으로 도복의 깃이나 바지 깃을 잡는 동작이 많아, 스파링을 하는 흥분상태에서 손가락 부상이 자주 발생합니다. 주짓수를 하는 생활체육인들은 보통 손가락 테이핑을 생활화 하고 있습니다. 이미 부상 경험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제까지 눈으로 직접 본 부상으로는, 발가락 탈구, 쇄골 골절, 손가락 인대 손상, 발목 인대 손상 등으로 다행히 사망은 없었습니다. 나 혼자 조심한다고 부상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상대방과 빠른 움직임으로 스파링을 하다 보면, 예상치 못한 부상이 발생합니다. 그리고 주짓수는 힘이 아닌 기술로 하는 운동으로, 건장한 초보와의 스파링이 오히려 아주 위험합니다. 노련한 지도자는 그런 초보들을 잘 다룰 수 있는 중수 이상에게 초보의 스파링을 맡깁니다. 저는 스파링 중 뒤구르기를 잘못하여 경부 인대 손상을 입은 적이 있습니다. 경추 골절, 경추 탈골 등 최악의 상상을 하고 찾아간 신경외과 외래에서 X-ray 촬영 후 교수님께서 인대 손상이니 운동을 2주간 쉬라는 권유를 받고 민망하며 안도한 적이 있습니다. 그래도 주짓수로 부상보다는 건강을 더 많이 얻었으니 만족합니다.
사진 6. 건강한 본인의 경추.
코로나 바이러스로 주짓수를 처음 시작할 때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마스크를 쓴 체육관의 풍경에 점점 익숙해지고 있습니다. 국가의 방역지침에 따라 체육관이 아예 문을 닫았던 적도 있습니다. 결핍을 몇 차례 겪으니, 주짓수를 하는 순간순간이 소중하고 더욱 행복합니다. 이 글을 읽고 조금이라도 주짓수에 흥미가 생기셨으면 좋겠습니다. 즐거운 땀이 흐르는 주짓수의 세계로 초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