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멋있으면 다 언니」, 「사랑한다고 말할 용기」의 작가이자 「여자 둘이 토크하고 있습니다」를 진행하는 팟캐스터, 패션 매거진 에디터로 알려진 황선우 작가와 「다정소감」, 「아무튼, 술」 등의 에세이를 써낸 김혼비 작가의 서간문인 『최선을 다하면 죽는다』는 다소 자극적인 제목에 이끌려 집어들게 된 책입니다. 두 작가가 서로의 소소한 일상들을 전하는 편지 속에는 누구나 한번쯤은 겪었을 과로와 번아웃, 거기에서 회복하는 길들이 나와있습니다.
일단 두 작가는 모두 글로 사람을 웃기는 솜씨가 아주 탁월합니다. 글이나 일이 영 안 풀릴 때 노트북과 일거리들을 싸들고 대부도로 가서 시원하게 펼쳐진 바다 위로 해가 서서히 지는 것을 보면서 목탁을 조용히 두드릴 때 이루 말할 수 없이 마음이 평온해지는 느낌이 좋다는 김혼비 작가는 황선우 작가에게 보내는 편지를 쓰기 위해 대부도를 찾고, 바다가 잘 보이는 자리에 앉아 목탁을 올려놓고는 호기롭게 노트북을 열었지만, 무력하게 화면을 노려봤다가, 애꿎은 목탁을 조용히 두드렸다가, 화면-목탁-화면-목탁-화면을 무한반복하다가, 결국 한 자도 못 쓴 채로 노트북을 덮었다고 합니다. 이에 못지 않게 황선우 작가는 김혼비 작가에게 보내는 첫 편지를 쓰기 위해 바다가 바로 보이는 다른 작가의 작업실이 있는 부산에 가서 리코더만 불다가 서울로 돌아왔다고 합니다. 잭 런던은 침대에서 바로 일어나 글을 쓰러 가기 위해 ‘저게 떨어져서 나를 박살낼 지 모르니 어여 일어나자!’ 라는 마음으로 침대 위에 역기를 매달아 두고 잤다는 글을 보며 ‘하얀 워드 창 앞에서 논문이든 웹진 원고든 글을 써야할 때 어떤 글을 써야할 지 막막해지는 것은 비단 나뿐 만이 아닌가 보다’ 라는 생각을 하며, 저를 일으켜 키보드 앞에 앉게 만드는 무기는 무엇일까 고민을 해보았는데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부산에서 열린 북토크 행사를 마친 이후 뒤풀이 자리에서 “서울 인구의 50분의 1은 이번 주말 부산에 와 있지 않을까요?” 라고 한 스태프의 말에 ‘서울 인구가 1천만명 정도 되니까 50분의 1이면 20만명인가?’라고 의아해하며 50분의 1이라는 숫자가 미묘하게 정확을 지향해서 자꾸만 20만이라는 숫자를 고찰하게 되었다는 황선우 작가가 여름 성수기의 1일 KTX 배차 편수와 수송 가능 인원, 부산 시내의 숙박 시설 최대 수용 인원, 부산을 방문중인 관광객 중 서울 외 타지역에서 온 사람들의 비율 등에 대해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김혼비 작가는 이 내용을 남편인 박태하 작가에게 전했고, 정확을 지향하는 성향인 박태하 작가의 생각 회로를 보며 MBTI 검사를 해보면 ISTJ가 늘 나오는 저는 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미묘한 신경쓰임을 즐기고 있는 김혼비 작가와 황선우 작가를 생각하며 더 즐거워졌습니다.
제가 이 책을 읽으며 즐거웠던 시간을 나눠드리고 싶어 책 중 몇 문장을 발췌하여 소개해드립니다.
p.11-12 안아주고 때려주는 혼비씨의 글은 또 한편으로 웃겨줍니다. 혼비씨는 눈이 흐린 사람들이라면 심상하게 지나칠 장면들을 놓치지 않고 포착하는 유머 사냥꾼입니다. 회사를 계속 다니는 이유에 대해 ‘퇴근하는 게 너무 좋아서 출근을 멈출 수가 없다’고 설명하다니 이보다 완벽한 답은 없을 것 같습니다. 소주병에서 첫 잔을 따를 때 나는 소리로부터 “똘똘똘똘과 꼴꼴꼴꼴 사이 어디쯤에 있는, 초미니 서브 우퍼로 약간의 울림을 더한 것 같은” 청아함을 포착해낼 때면 가려운 등을 누가 긁어줄 때 같은 짜릿한 미소를 짓게 됩니다(『아무튼, 술』). – 황선우, 포옹과 펀치 中
p.52 혼비씨가 목탁을 치듯, 저도 요즘 탁탁 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탁구입니다. ‘탕타당타당’과 ‘통토동토동’ 사이 어디쯤 될 것 같은 탁구공 치는 소리에 저 또한 많이 기대고 있기도 해요. 마음의 평화를 준다고도, 근심을 잊게 만든다고도 할 수 있는 소리입니다. – 황선우, “재미있어요? 재미있는 것 맞죠?” 中
p.62-63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보니 삶이 ‘회사일 아니면 원고’로 피폐해져 있었어요. 올해 축구장 한 번을 못 갔고(이보다 일이 훨씬 많은 해에도 이런 적은 없었는데), 진짜 읽고 싶은 책들을 거의 못 읽고(일 때문에 읽는 책이나 원고를 읽을 때가 더 많고), 자전거도 자주 못 탔고(올해 주행거리를 다 합쳐도 500킬로미터가 안 되고), 이제는 좀 하고 싶은 것을 해야지 마음먹다가도 어느새 닥쳐온 마감 앞에서 저도 닥치고 마감하고, 자꾸 쌓이는 써야 할 원고 앞에서 원고를 쓰는 작가라기보다 원고에게 피소 당해 문서창이라는 법정에 불려온 피고 마냥 압박감 속에서 쫓기는 기분으로 원고를 대면하는, 이런 날들이 이어졌습니다. 약속한 마감 시간에 일 분이라도 늦으면 세상이 무너진다고 생각하는 시간 강박도 압박감에 한몫했고요. 사실 저와 아주 가까운 친구, 그중에서도 눈썰미가 좋은 친구들은 작년 겨울부터 저에게 번아웃의 기미를 알아보고 경고했는데도 잘 모른 채 번번이 번-번-번-번- 타들어가다가 올여름에 ‘아웃’이 되어 나가떨어지고서야 받아들였어요. 번아웃이 맞구나. 사흘이면 끝낼 일을 열흘 걸릴 때부터 이미 그랬구나. 이게 뭐라고 받아들이기 힘들었을까요. 한국 사회에서 일하는 사람치고 번아웃 안 된 사람이 어디 있겠어라는 생각에 그런 커다란 말을 저에게 갖다 붙이는게 지나치게 비장하고 조금 유난스럽다고 느꼈던 것 같아요. – 김혼비, 번-번-번 타들어가는 날들 中
p.70 또다른 언젠가는 한동안 씻는 동안 서 있을 힘이 없어서 욕조 안에 가만히 앉은 채로 샤워를 하곤 했어요. 기운이 더 떨어질 때는 물을 맞으면서 아예 누워버리기도 하고요. 그렇게 젖은 미역같이 널브러져 있다가 정신을 좀 차리고 나면 욕조 밖으로 나와 몸을 닦고 말릴 기력이 조금 생겼습니다. 한두 달 뒤인가, 샤워의 시작부터 끝까지 아무렇지 않게 서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 그제야 깨달았죠. 아, 그때 내가 좀 이상했구나. 사람이 아닌 미역이었구나. 고갈된 것이 체력이거나 사회성이거나 집중력이거나 하여간 바닥을 드러낸 채로 꾸역꾸역 계속하고 있었구나. 저 같은 사람들은 멈추는 방법을 몰라서 계속하곤 합니다. – 황선우, 젖은 미역의 시절을 보내는 법 中
p.103-104 프로이트가 그랬다죠. 정상적인 애도란 상실한 대상을 잊고 그 대상에 투사한 리비도를 거두어들여 다른 대상에 전이함으로써 애도를 끝내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이며, 일정시간이 지나도 소멸되지 않고 감정적 애착이 단절되지 않는 애도는 실패한 애도(우울증)라고요. 하지만 제게는 이런 프로이트에 대한 데리다의 비판이 언제나 더 와닿습니다. 애도에 완성이나 종결은 없고 그것은 평생 지속되는 것이며, 애도는 실패함으로써 완성되는 것이라는, 애도는 실패해야(그것도 잘 실패해야) 성공하는 것이라고 한 말을요. 프로이트의 애도가 고인의 타자성을 지워버리는 ‘망각의 애도’라면, 데리다의 애도는 고인의 타자성을 내 안에 기억으로 보존하는 ‘기억의 애도’일 텐데요. 몇 번의 죽음들을 겪으면서, 저는 데리다의 저 말은 ‘이해한다’의 영역이 아니라 ‘(모르고 싶어도) 알아진다’의 영역에 들어가는 말이라고 생각했어요. 슬픔은, 그리고 기억은, 아무리 없애고 싶어도 박혀 있는 것이니까요, 가시처럼. – 김혼비, “누군가 세상을 떠났다는 것을 나무들까지도 알고 있네” 中
p.154 『논어』를 쓰고 내일이 되면 잊어버립니다. 어제 썼던 부분이 놀랍게 희미해진 기억 위로 오늘의 부분을 새로 씁니다. 두뇌가 말랑말랑해서 새로운 지식을 잘 흡수하고 쉽게 잊어버리지 않던 어린 시절에 더 즐겁게 이런 공부를 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적어도 노안이 오기 전에 시작했더라면 휴대폰으로 검색한 한자가 잘 안보여서 한껏 확대해보는 일은 없었을 텐데…… 나이 먹어서 기억력과 시력의 비협조 가운데 지혜로운 사람이 되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실감합니다. 똑똑해지는 기분은 들지 않지만 계속 『논어』를 씁니다. 다만 글씨를 쓰는 사이, 만년필의 펜촉을 따라 번져나가는 잉크의 선을 따라 화나는 일도 슬픈 일도 흘려보내고 잊어버릴 수 있어 좋아요. 바쁘게 움직이던 몸과 마음이 글씨 쓰는 동안만은 잠시 한자리에 머무릅니다. 혹시 이러다보면 너그러운 사람이 될 수도 있는 걸까요? – 황선우, 선우는 인하냐? 그러면 혼비는 인하다고 할 수 있느냐? 中
p.186-187 이렇게 어떤 마음과 마음을 장난스레 이어붙여 세상이 가끔 툭툭 던지는 유쾌한 농담들이 사람답게 살고싶다는, 이왕이면 선하고 어진 사람으로 살고 싶다는 꿈을 계속 꾸게 만들어요. 그래서 누가 오해받기 쉬운 위험을 무릅쓰면서도 왜 술을 사랑하느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답하고 싶습니다. 술은 언제나 저를 조금 허술하게 만드는데, 허술한 사람에게 세상이 좀더 농담을 잘 던져서 그렇다고요. – 김혼비, 세상이 우리에게 툭툭 던지는 농담들 中
p.199-200 평소에도 24절기 챙기는 일을 좋아합니다. 절기는 태양이 걷는 스물네 보의 발걸음이고, 그에 맞춰 정처 없이 흐르는 시간에 스물네 개의 매듭을 묶는 것이어서, 함께 걷는 것을 좋아하고 매듭짓는 것을 좋아하는 저에게는 무척 매력적인 개념이에요. 물론 절기의 의미를 되새기기에 좋은 최적의 장소를 찾아 최상의 음식으로 누가 봐도 그럴듯하게 챙기지는 못합니다. 태양이 직장인들을 위해 주말이나 휴가철에만 결정적인 한 걸음을 내딛지는 않으니까요. 최적의 장소들은 대개 자연을 찾아가야 하고 최상의 음식들은 대개 제철 식재료를 구해 만들거나 만들어 파는 곳을 찾아가야 하는데, 그럴 여유와 여력이 없을 때가 많아서 자주 편법을 씁니다. 『다정소감』에도 썼던 것처럼 ‘하지에는 맥주와 감자칩!’을 챙기거나 야근하느라 밤늦게 회사에서 풀려난 어느 동지에는 ‘비비빅에 흑맥주!’를 챙기는 식으로요. 각 절기마다 일삼아온 편법들을 모아서 책으로 낸다면 누군가는 “매 절기가 갖는 깊은 의미는 휘발된 채 요식으로 행위만 소비하는 어느 현대인의 얄팍함에 대한 사례집”이라고 한탄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책을 쓸 리도 없지만 만약 한탄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렇게라도 절기를 되새기고픈 절박한 심정을 아시느냐고 항의하겠어요.) – 김혼비, 여름이야, 나가서 놀자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