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Navigation
Skip to contents

W-ENTian W-ENTian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 성균관대학교 삼성창원병원 유방외과 방윤주

방윤주 교수님은 삼성서울병원에서 외과 전공의 및 유방외과 전임의를 수료하고 2022년부터 삼성창원병원에서 재직 중입니다. 연고도 없던 지역에 와서 고래와 메리와 함께 행복한 삶을 만들고 있는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나는 작년부터 연고가 전혀 없는 지방의 병원으로 이직하여 온전한 독립된 삶을 살아가고 있다. 내가 잘 살 수 있을까 싶었던 걱정이 무색하게, 요즈음 나 스스로에 대해 막연히 알았지만 구체적으로 정리되거나 새롭게 깨닫게 되는 사실들이 많아 행복한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은 매우 많다. 선선한 날씨와 바다, 맛있는 것, 포근한 이불… 그 중에서도 내가 필요한 순간들 속에서 큰 행복을 느낀다. 거대한 세상 속에 하나의 부품으로서가 아니라, 나라는 인간이 필요하구나 라고 느끼는 순간이 있다. 이 순간들 또한 매우 다양한 종류가 있는데, 이번 기회에는 구조견과 함께하는 나의 행복에 대해 공유하고 싶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동물을 좋아했다. 어류, 파충류, 조류 등등 우리집에 거쳐간 동물의 종류만 해도 열 손가락이 부족하다. 그런데 그 동물들 대부분이 돈을 주고 어딘가에서 사왔었다. 어린 시절에 동물은 그렇게 마치 장난감처럼 구매할 수 있는 것인 줄 알았다. 이 동물들이 어디에서 왔을지, 이 동물의 부모와 형제들은 어디에 있을지 궁금해지기 시작한건 애완견과 살기 시작한 이후였다. 첫 애완견을 몇 십만원 주고 사와서는 그 작은 생명에게서 받은 위로와 행복 속 수 개월이 지나면서 현실적인 문제를 마주했다. 개는 강아지 시절의 몇 배로 성장하며 외모도 변하고, 밥과 물을 챙겨주고 위생적으로 관리하며 사람과 살기 위한 기본 규칙들을 가르쳐야 한다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애완견을 키운다는 것이 이렇게 힘들다니? 라는 깨우침 다음으로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다들 개를 키우지? 하는 궁금증이 생겼고 그제서야 무분별하고 비윤리적인 번식과 판매 과정, 손 쉽게 구매했다가 버려지는 수많은 동물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그리고 시골에 놀러갔을 때 할머니 집 마당 구석에 묶여 음식물 쓰레기를 먹으며 평생을 살던 그 강아지의 삶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것, 그렇게 묶여 수 년을 살던 개들이 주인 손에 잡아 먹혀 생을 마감하는 것이 대한민국에서 아직도 흔한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첫 애완견을 만나지 않았다면, 어쩌면 지금까지도 한 번을 들여다 보지 않았을 세상의 한 부분을 알게된 것이다.

새로운 생명을 가족으로 들이는 것이 얼마나 큰 책임인지를 알게 된 이후로는 동물과 함께 살지 못했다. 나를 돌보기도 벅차고 여유없는 삶을 살면서는 더욱 그랬다. 언젠가 여유가 생기면 버려진 동물을 돌보겠다는 다짐은 마음 속 저 깊은 곳에 묻어두고 살았다. 나보다 사회생활을 먼저 시작하고 수입이생긴 동생이 우리의 과거 반려견과 꼭 빼닮은 유기견을 발견하였고 입양하겠다 선언하였을 때, 내 마음속 깊은 곳에 있던 다짐이 내 마음을 가득 채웠다. 어떻게 갑자기 그런 마음이 확고하게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유기견 센터에 입양의사를 밝히고 휴가를 내고는 망설임없이 달려갔다. 서울과 경기도의 유기동물이 거의 다 모인다는 동물보호협회로 들어가는 그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몇 마리인지 가늠도 할 수 없는 수 백마리 동물의 울부짖음에 마음이 찢어졌다. 하루에도 수 십마리가 새로 들어오고, 공간이 포화상태라 유기동물 공고기간인 일주일이 지나면 칼 같이 안락사를 해야 그 다음 동물들이 있을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고 했다. “그래도 이 아이는 운이 좋네요.”라며 직원분이 데리고 나온, 공고번호 ‘서울-강북-2019-00141’이었던 개는 마치 ‘당장 나를 데리고 나가주세요’라는 얼굴로 우리 품에 와락 안긴채 울고 있었다. 처음 발견 당시 목줄도 하고 있었다던 이 개는 운이 좋게도 여러 이유로 안락사 순서에서 밀려나서 한 달여를 보호소에 있었다는데, 이 개를 찾는 사람은 없었다고 한다. 어떤 이유로 이곳까지 왔을까. 너도 번식장이라고 불리는 수 많은 개들을 가둬두고 강제로 교배시키고 태어나자마자 엄마랑 분리해서 가장 작을 때 팔려나갔던 그런 개였을까? 답을 찾을 수 없는 수 많은 질문은 묻어두고, “너는 내가 평생책임진다”던 동생이었다. 벌써 6년 전의 일이다. 지금은 폐암을 진단받고 수술을 했지만 시한부 판정을 받아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행복하게 지내고 있다.

새로운 생명을 가족으로 들이는 것이 얼마나 큰 책임인지를 알게 된 이후로는 동물과 함께 살지 못했다. 나를 돌보기도 벅차고 여유없는 삶을 살면서는 더욱 그랬다. 언젠가 여유가 생기면 버려진 동물을 돌보겠다는 다짐은 마음 속 저 깊은 곳에 묻어두고 살았다. 나보다 사회생활을 먼저 시작하고 수입이생긴 동생이 우리의 과거 반려견과 꼭 빼닮은 유기견을 발견하였고 입양하겠다 선언하였을 때, 내 마음속 깊은 곳에 있던 다짐이 내 마음을 가득 채웠다. 어떻게 갑자기 그런 마음이 확고하게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유기견 센터에 입양의사를 밝히고 휴가를 내고는 망설임없이 달려갔다. 서울과 경기도의 유기동물이 거의 다 모인다는 동물보호협회로 들어가는 그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몇 마리인지 가늠도 할 수 없는 수 백마리 동물의 울부짖음에 마음이 찢어졌다. 하루에도 수 십마리가 새로 들어오고, 공간이 포화상태라 유기동물 공고기간인 일주일이 지나면 칼 같이 안락사를 해야 그 다음 동물들이 있을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고 했다. “그래도 이 아이는 운이 좋네요.”라며 직원분이 데리고 나온, 공고번호 ‘서울-강북-2019-00141’이었던 개는 마치 ‘당장 나를 데리고 나가주세요’라는 얼굴로 우리 품에 와락 안긴채 울고 있었다.

처음 발견 당시 목줄도 하고 있었다던 이 개는 운이 좋게도 여러 이유로 안락사 순서에서 밀려나서 한 달여를 보호소에 있었다는데, 이 개를 찾는 사람은 없었다고 한다. 어떤 이유로 이곳까지 왔을까. 너도 번식장이라고 불리는 수 많은 개들을 가둬두고 강제로 교배시키고 태어나자마자 엄마랑 분리해서 가장 작을 때 팔려나갔던 그런 개였을까? 답을 찾을 수 없는 수 많은 질문은 묻어두고, “너는 내가 평생책임진다”던 동생이었다. 벌써 6년 전의 일이다. 지금은 폐암을 진단받고 수술을 했지만 시한부 판정을 받아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행복하게 지내고 있다.

직접 유기견 보호소를 방문한 이후로 나의 많은 부분이 달라졌다. 당장 한 마리를 책임지지 못해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우선 첫 수입이 생기면서부터 기부를 시작했다. 다양한 동물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수 많은 단체들이 있는데, 그 중 나의 생각 비슷하여 활동을 응원하는 단체 3 곳에는 지금까지 기부를 지속하고 있다. 우선 <비글구조네트워크> 라는 단체는, 실험 동물을 구조하고 동물실험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는 동물복지단체이다. 전공의 시절에 비글이라는 견종을 대상으로 하는 실험에 동원된 적이 있다. 그 날의 일은 다시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기억이다. 이후 동물실험에 대해 알아보고, 그를 줄이기 위한 단체에 기부를 시작하는 것으로 나의 죄책감을 덜어보고자 했다. 두번째는 <Care>라는 동물권단체에서 개농장폐쇄 활동을 하고 있는 <와치독>이다. 개고기에 대한 찬반논쟁은 뒤로 하더라도, 적어도 인간이 육식을 하기 위해 지켜야할 최소한의 윤리 그리고 법적인 규범을 모두 무시한채 유지되는 개고기사업을 반대하기 때문이다. 마지막 <KARA>는 우리나라에서 매우 큰 동물권단체 중 하나이고 매우 다양한 활동들을 하는데, 특히 실질적인 입법활동을 하고 있어 후원한다. 지금까지 동물에 대해 큰 관심이 없었던분들이라도 언젠가 문득 생각나거나 궁금해지면 위 단체들의 홈페이지를 들어가보시기를 바라는 마음에 소개한다.

이후로 했던 활동은 이동봉사이다. 한 생명을 온전히 책임질 수 없더라도, 보호소에서 입양처로 혹은 임시보호처로, 혹은 병원으로의 이동이 필요한 상황 언제라도 도움을 줄 수 있다. 나는 다행히 자가용이 있었고, 또 가끔 몇 시간씩 시간을 낼 수 있었기에 시간이 나면 가까운 거리를 태워다 주기도 하고, 서울에서 지금있는 지역으로 이사를 오고 난 이후로는 임시보호처를 옮겨가는 구조견을 태워오기도 했다.

그 다음단계는 임시보호였다. 물론 실패했고, 결국 입양했지만. 임시보호는 온전하게 입양하지는 못하더라도, 보호소에서의 허락된 시간이 너무 짧은 동물들을 내가 시간이 되는 한 돌보고 교육하여 입양을 갈 수 있도록 시간을 벌어주는 개념이다. 짧게는 몇 주, 혹은 몇 달 시간을 보살피다가 내가 더 이상 임시보호를 하지 못하게 될 때에는 다시 시간이 되는 다른 임시보호자에게 보낸다. 이 시간 동안, 병을 치료하기도 하고 사람과 살 때에 필요한 규범을 가르치고, 예쁘게 씻기고 살도 찌우면서 입양을 홍보하여 입양보낸다. 얼마전에 가수 이효리씨가 출연한 tvN의 <캐나다 체크인> 이라는 방송으로 국내에 더 잘 알려지게 되었는데, 혹시 관심이 있으신 분은 위 프로를 한 번 보신다면 좋겠다. 이 곳에 이사를 온 이후 내가 임시보호를 해야겠다 고민하며 <포인핸드>라는 어플을 하루에도 여러 번씩 들어갔다. 이 어플에는 전국에 퍼져있는 보호소들에 들어오는 유기동물들의 공고가 공유되며, 임시보호처를 옮겨야 하거나 이동봉사가 필요한 아이들, 혹은 유실된 아이들에 대한 글들이 모두 공유된다. 이 곳에 들어가보시면 우리나라에서 하루에 얼마나 많은 유기견이 구조되며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안락사로 죽어가는지 알 수 있다. 이 곳에서 많은 동물들에 대해 고민하는 동안 몇 마리는 입양되어 나가기도 했지만, 일부는 안락사되기도, 몇 마리는 자연사했다. 망설이지 말고 행동해야겠다는 결심이 섰던 것은 2022년 4월이었는데, 우연히도 입양이 안되서 곧 안락사가 된다는 글을 통해 지금은 내 반려견, ‘고래’를 만났다.

우리 나라는 소형견을 주로 선호하기에 이런 대형견은 입양될 확률이 매우 낮다. 이렇게 예쁘고 사람을 잘 따른다고 소개된 개라도 마찬가지이다. 특히 공고번호 ‘경북-영덕-2022-00026’ 이었던 이 개는 지방에 있었기에 선뜻 보러오는 사람도 없었다. 우선 개를 만나러 가야겠다!는 결심이 서자마자 바로 움직였다. 그런데 사진에 깔끔하고 잘생겼던 모습은 없고, 배설물이 뒤엉켜 뭉친 털과 형용할 수 없는 악취, 겁에 질려 날카로워진 개를 마주하게 되었다. 내 예상보다 개는 매우 컸고, 내가 감당할 수 있을지 겁이났다. 그렇게 고민해보겠다는 말을 남기로 돌아오던 길에 운명처럼 전화를 한 통 받았는데, 누군가 캐나다로 입양보내고 싶다며 이 개를 보고간 나를 찾고 있다는 것이다. “캐나다라니! 너무 다행이다. 더 넓은 나라에 가서 행복하게 살아라!” 라며 나는 입양을 포기하겠다고 하였다. 그런데 이야기를 계속 듣다보니, 나에게 이 개에게 관심이 있다면 우선 영덕에서 다른 지역으로 이동시켜줄 수 있겠느냐는 요청이었다. 이동봉사라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며 호언장담을 했는데,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점은, 유기견을 보호소에서 데리고 나오려면 방문한 사람이 입양신청서를 써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대신 이동만 할거고 입양은 다른사람이 합니다~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내 이름으로 일단 입양하기로 했다. 휴가를 신청하고 개의 이동을 준비했다. 큰 개가 들어갈 이동장, 목줄을 구매하고 이동경로를 계산했다. 준비가 끝나고 휴가를 몇 일 앞두었던 날 다시 걸려온 전화. 결국은 캐나다로 데리고 갈 수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나중에 알고보니 이렇게 입양이 무산되는 일은 매우 흔한 일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 개는 이미 안락사 예정일을 지나 나에게 입양 대기중이었다는 것. 다른 입양처 문의를 거절했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입양이 취소되면 바로 안락사가 시행된다. 세상에, 내가 나서서 입양을 주선했던 것이 이 아이의 안락사를 당긴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길었던 고민 끝에 “이렇게 안락사 시킬 수는 없다, 이게 운명일지도 몰라, 일단 나는 이 한 생명부터 살려봐야겠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다. ”라는 결론을 내리고 2022.05.05 냄새나고 더러웠던 한 개를 데리고 집으로 왔고, 내 세상은 완전히 달라졌다.

우리 나라는 소형견을 주로 선호하기에 이런 대형견은 입양될 확률이 매우 낮다. 이렇게 예쁘고 사람을 잘 따른다고 소개된 개라도 마찬가지이다. 특히 공고번호 ‘경북-영덕-2022-00026’ 이었던 이 개는 지방에 있었기에 선뜻 보러오는 사람도 없었다. 우선 개를 만나러 가야겠다!는 결심이 서자마자 바로 움직였다. 그런데 사진에 깔끔하고 잘생겼던 모습은 없고, 배설물이 뒤엉켜 뭉친 털과 형용할 수 없는 악취, 겁에 질려 날카로워진 개를 마주하게 되었다. 내 예상보다 개는 매우 컸고, 내가 감당할 수 있을지 겁이났다. 그렇게 고민해보겠다는 말을 남기로 돌아오던 길에 운명처럼 전화를 한 통 받았는데, 누군가 캐나다로 입양보내고 싶다며 이 개를 보고간 나를 찾고 있다는 것이다. “캐나다라니! 너무 다행이다. 더 넓은 나라에 가서 행복하게 살아라!” 라며 나는 입양을 포기하겠다고 하였다. 그런데 이야기를 계속 듣다보니, 나에게 이 개에게 관심이 있다면 우선 영덕에서 다른 지역으로 이동시켜줄 수 있겠느냐는 요청이었다. 이동봉사라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며 호언장담을 했는데,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점은, 유기견을 보호소에서 데리고 나오려면 방문한 사람이 입양신청서를 써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대신 이동만 할거고 입양은 다른사람이 합니다~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내 이름으로 일단 입양하기로 했다. 휴가를 신청하고 개의 이동을 준비했다. 큰 개가 들어갈 이동장, 목줄을 구매하고 이동경로를 계산했다. 준비가 끝나고 휴가를 몇 일 앞두었던 날 다시 걸려온 전화. 결국은 캐나다로 데리고 갈 수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나중에 알고보니 이렇게 입양이 무산되는 일은 매우 흔한 일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 개는 이미 안락사 예정일을 지나 나에게 입양 대기중이었다는 것. 다른 입양처 문의를 거절했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입양이 취소되면 바로 안락사가 시행된다. 세상에, 내가 나서서 입양을 주선했던 것이 이 아이의 안락사를 당긴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길었던 고민 끝에 “이렇게 안락사 시킬 수는 없다, 이게 운명일지도 몰라, 일단 나는 이 한 생명부터 살려봐야겠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다. ”라는 결론을 내리고 2022.05.05 냄새나고 더러웠던 한 개를 데리고 집으로 왔고, 내 세상은 완전히 달라졌다.

예상하지 못했다고 준비되지 못한 입양이었으나, 지금 나는 이 개와 함께 너무 행복하다. 내가 아니었으면 죽었을 생명을 살렸고, 그 개에게는 내가 세상 전부가 되었다. 함께 운동을 하고, 여행을 가고, 하루 세 번씩 산책을 나가는, 우리는 가족이되었고, 이제는 내 가장 큰 행복이 되었다. 어쩌면 고래가 운명처럼 나에게 오지 않았다면, 새롭게 이사온 이 지역에서 이렇게 잘 살아낼 수 없지 않았을까? 지금은 이 개와 함께하며 내 세상이 매 순간 넓어지고 있다. 더 많은 걸 찾아서 해보고, 찾아 다니고 그러면서 내 행복을 찾아간다.

혹시라도 반려견을 가족을 맞은 준비를 하고 있는 누구라도, 궁금한 점이 있다면 연락해주시면 너무 감사하겠다. 수백만원씩 돈을 주고 구매하지 않더라도, 예쁘고 똑똑하고 당신의 삶을 행복하게 해줄 많은 동물들이 당신을 기다리고있다. 어떻게 가족을 찾아야 할지 알려드리고 싶고, 그 과정에 도움을 드릴 수 있다면 최선을 다해 돕고 싶다. 반려견과 함께하는 행복을 나눠드리고 싶다

댓글쓰기
(04385) 서울특별시 용산구 서빙고로 67, 파크타워 103동 307호 (용산동5가 24)

Copyright © by Korean Society of Otorhinolaryngology-Head and Neck Surgery.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