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는 강동경희대학교병원에서 두경부를 맡고 있는 이영찬입니다.
병원의 업무에 지쳐가고 연구 역량의 부족함을 느끼면서 어서 빨리 해외 연수를 다녀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코로나로 인해 2년 정도 늦어진 지난 2022년 가을에 연수를 떠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연수지를 정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그냥 선배 교수님이 다녀온 곳을 가면 좋았겠지만 사정상 갈 수 없게 되자 매일 퇴근 후 밤마다 인터넷으로 수소문을 해야 했습니다. 저는 연수지를 찾으면서 우선, 제가 평소 bioinformatics에 관심이 많아 이비인후과 랩이 아닌 빅데이터를 분석하고 머신러닝, 딥러닝을 접할 수 있는 연구실을 찾았고, 두번째로 되도록이면 한국인이 PI인 곳을 가고 싶었습니다. 아무래도 PI와 communication이 잘 되어야 많이 배우고 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던 중 찾게 된 연구실이 University of Pennsylvania 내 Department of Biostatistics, Epidemiology and Informatics의 Institute for Biomedical Informatics 이었습니다.
사실 그전까지는 펜실베니아가 도시이름인 줄로만 알았고 필라델피아가 펜실베니아 주에 속해 있다는 것도 몰랐습니다. 연수지가 정해지면서 필라델피아에 대해 알아보다 보니 마약 중독자가 늘어간다는 뉴스, 도심의 강력 범죄 뉴스 등이 주로 검색되었습니다. 걱정스런 마음이 들긴 하였으나 어디든 연수를 우선 가야겠다는 생각에 최종 결정을 하게 되었습니다.
펜실베니아 대학교는 흔히 펜(PENN) 또는 유펜(UPENN)으로 불리며 1740년 벤자민 프랭클린이 설립하였고 미국에서 네 번째로 오래된 고등 교육기관이라고 합니다. 아무래도 미국 내에서도 역사 깊은 대학이다 보니 캠퍼스를 돌아다니다 보면 “First in United States”라는 표지를 여기저기서 많이 볼 수 있습니다.
특히 펜실베니아 대학의 MBA 과정인 와튼 스쿨은 미국 최초의 경영대학원으로 트럼프, 일론 머스크 등 유명인사들이 졸업한 미국 내 최고 수준의 MBA입니다. 의학전문대학원인 Perelman School of Medicine 또한 북미 최초의 의대로 임상, 연구 분야에서 꾸준히 미국내 10위 권 내에 랭크되고 있습니다. 80-90 년대에만 해도 의대 교수들이 연수를 꽤 오는 대학이었지만 최근 들어 주로 서부나 보스턴, 뉴욕 등으로 많이 가면서 visiting scholar 로 오는 분들이 많이 줄었다고 합니다.
사진1 : 랩이 위치하고 있는 의과대학 내 Richard medical research laboratories 건물
제가 있던 랩의 이름은 Kim lab 이며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PI 분이 한국인인 김도균 교수님이십니다. 이 랩에서는 유전체 데이터 뿐만 아니라 electronic health records (EHR)에서 추출한 환자의 phenotype 정보, 이미지 데이터 등 여러 종류의 바이오 빅데이터를 머신러닝/딥러닝을 이용해 결합하고 분석하여 임상 현장의 의문점을 해결하고자 하는 여러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김도균 교수님은 임상의들의 실제적인 임상 현장에서의 아이디어가 연구 주제 선정에 큰 도움이 된다는 생각으로 임상의들의 연수를 잘 받아주시는 분이었습니다. PI 가 한국인이다 보니 한국인 세 명의 포닥이 근무하고, 한국인 대학원생도 한 명 있었습니다. 덕분에 처음에 적응 하는 데에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 랩은 의과대학에 속해 있지만 대부분의 대학원생들은 학부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학생들이었습니다. 매주 brainstorming meeting과 Journal club이 있었습니다. 저는 한국의 의국 컨퍼런스에서 상당히 엄숙한 분위기 하에 발표자가 발표한 후 담당 교수님으로부터 일방적으로 comment를 받는 분위기에 익숙했기 때문에 여기서의 미팅은 저에게 상당히 신선한 충격을 주었습니다. 자신의 연구 진행을 공유하고 교수님 뿐만 아니라 여러 다른 구성원들의 의견을 얻어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어가는 자리였습니다. 다들 머그컵에 든 모닝커피를 마시면서 자유롭게 의견을 주고받으며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모습이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저도 어느 순간 자유롭게 질문하고 의견을 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여기서 두경부암을 주제로 유전체 데이터, EHR, 이미지 빅데이터를 분석하는 공동연구를 진행하였습니다. 유전체 데이터와 임상정보를 통합해서 두경부암의 유전적 요인과 환경적 요인의 상호 작용을 알아보는 프로젝트와 두경부암의 병리 이미지를 딥러닝 모델 등으로 분석하여 예후를 예측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하였습니다. 1년 동안 나름 운이 좋게 어느 정도 성과도 만들 수 있었고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공동연구를 진행할 계획입니다. 근 1년 동안 지내며 코딩, 데이터 핸들링 방법에 익숙해졌을 뿐만 아니라 자유로우면서도 진취적이고 열정적인 랩의 분위기를 듬뿍 느낄 수 있었습니다. 또한 어쩌면 자기중심적인 아이비 리그 학생들과 공감하며 그들의 아이디어와 장점을 최대한 북돋우면서 랩을 이끌어 나가시는 김도균 교수님의 리더십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저 또한 대학원생들과 함께 미팅, 학회도 참석하고 뒤풀이도 가지면서 다시 학생으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사진 2 : 크리스마스 랩 파티
사진 3: American Society of Human Genetics 2022 Annual meeting 참석
필라델피아라는 도시에 대해 누가 물어보면 저는 한국의 경주같은 도시라고 합니다. 미국 역사상 최초의 수도였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중요한 건물들이 많아 미국 다른 지역에서 견학을 많이 오는 것 같습니다. 독립선언서와 미국 헌법이 만들어진 Independence hall과 미국 독립운동의 상징인 “자유의 종” 이 유명합니다. 또한 영화 록키에서 록키가 트레이닝을 마치고 계단으로 뛰어 올라 만세포즈를 취하던 필라델피아 뮤지엄도 명소 중에 하나입니다. 그래도 제 생각엔 반나절이면 충분히 돌아볼 정도의 크기입니다. 그보다는 뉴욕과 워싱턴이 차로 2-3 시간 거리라서 이 두 도시를 자주 다녔던 거 같습니다.
미국의 다른 대도시들과 마찬가지로 필라델피아도 스포츠에 대한 애정이 상당히 뜨겁습니다. 특히 ‘필리건’이라고 불릴 정도로 극성팬들이 많은데 제가 있던 해에 필라델피아가 야구의 월드시리즈, 미식축구의 슈퍼볼에 올라갔습니다. 덕분에 미국에서 가장 큰 스포츠 이벤트인 월드시리즈와 슈퍼볼의 열기를 온몸으로 느끼고 왔습니다.
사진 4: 필라델피아의 상징인 자유의 종, 월드시리즈가 열린 시티즌뱅크 파크앞에 있는 자유의 종
제가 살던 동네는 필라델피아에서 차로 30분 정도 떨어진 외곽으로 전형적인 한적한 미국 동부 마을입니다. 다운타운하고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조용하고 깨끗한 동네로 밤에 동네 trail을 걸어도 안전할 정도였습니다. 아파트 베란다에 나가면 한국에서 보이던 삭막한 아파트 대신에 자그만한 호수와 우거진 숲, 파란 하늘이 펼쳐졌습니다. 베란다 의자에 커피 한 잔을 들고 앉아서 바람에 나무 가지가 흔들리는 소리를 듣는 것이 너무나도 좋았습니다.
사진 5 : 집 근처 트레일
그래도, 제가 연수 기간 1년 동안 얻은 가장 소중한 것은 가족과의 시간이었습니다. 한국에서와 달리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내고 여행을 다니면서 서로에 대해 더 알아가고 많은 경험을 같이 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이제 질풍노도의 사춘기를 향해 가는 아들과 같이 매일 농구하고 힘든 국립공원 트레일을 걸으면서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추억을 얻었다고 생각합니다.
사진 6: 그랜드 써클 여행중에 아들 함께
저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환자를 보고 수술을 하고 있습니다. 돌아온 지 3개월이 채 안되었는데 벌써 필라델피아에서 시간이 아련한 기억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앞서 연수 다녀오신 선배님들의 말 그대로 일상에서 지칠 때쯤이면 필라델피아에서의 1년을 떠올리며 위안을 받을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