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보아스 이비인후과 면목원에서 근무하고 있는 한동혁이라고 합니다. 제가 스키를 시작하게 된 것은 의과대학에 입학하여 스키부 동아리 활동을 하게 되면서부터 입니다. 대학시절 겨울 방학이면 짐을 싸서 스키장에 들어가 한달 넘게 합숙훈련을 하기도 했었고, 지금은 없어진 천마산 스키장에서 겨울방학을 이용해 두 시즌 동안 스키 패트롤로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동기 한 명이 겨울 방학동안 캐나다 휘슬러 스키장에 다녀온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우리나라 스키장과는 비교할 수 없는 넓은 곳에서 스키를 탈 수 있다고 하여 해외 스키장에 대한 동경이 시작되었습니다. 대학생활 내내 스키에 빠져 있던 저는 여름방학에도 어떻게 하면 스키를 탈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본과 3학년 여름 방학을 이용하여 뉴질랜드 남섬의 마운트 헛(Mt. Hutt) 스키장과 코로넷 피크(Coronet peak), 리마커블스(Remarkables) 스키장을 한 달 정도 일정으로 다녀올 수 있었습니다. 처음 방문한 마운트헛 (Mt.Hutt) 스키장은 우리나라 스키장처럼 스키 슬로프 앞에 숙소가 있는 리조트 개념이 아니라 가까운 마을에서 매일 40분 가량 비포장도로를 달려서 산에 올라 가야지만 스키를 탈 수 있는 곳으로 시설은 우리 나라 스키장보다 낙후되어 있었지만 넓은 산에서 여름에 스키를 탈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너무 좋았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스키의 신이라 불리우는 오스트리아 스키어 리치 베르게(Richi Berger)와 우연히 T-bar를 함께 타게 되어 나누었던 대화와 함께한 스킹은 진짜 스키 인생에 잊을 수 없는 경험으로 남아있습니다. 전공의 시절 스키는 꿈도 못꾸는 신세였지만 개원을 하고 겨울에 휴가를 갈 수 있게 되면서 해외 스키 원정에 대한 꿈은 다시 커져갔고, 가까운 일본을 시작으로 해외 유명 스키장들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2023-2024 시즌은 오스트리아에 위치 한 상트 안톤 암 아를베르크(St. Anton am Arlberg, 사진1)란 곳으로 원정을 다녀왔습니다.
사진 1. 상크 안톤암아를베르크
출처 : Google.com
상트 안톤 암 아를베르크는 오스트리아 동부 티롤주의 동알프스 산맥에 위치한 마을로 최대 높이는 2,811 미터 표고차는 1,507미터로 2001년에 세계 알파인 스키 선수권 대회를 주최한 곳 입니다. 2024년 1월 포브스(Forbes)지가 선정한 세계 50대 스키장 중 4위에 올랐으며 St. Anton/St. Christoph, Rendl, Stuben, Lech/Oberlech, Zurs, Warth/Schrocken, Sonnenkopf 라는 별도의 스키장 마을들이 2016/17 시즌에 합쳐져서 생긴 거대한 스키장 연합체입니다. 포브스지 선정 세계 10대 스키장은 아래와 같습니다. (표 1)
표1. 세계 10대 스키 리조트
출처 : Forbes.com
고도는 1300-2811M, 총 슬로프 길이(On-piste)는 302Km (블루 130Km, 레드 121Km, 블랙 51Km), 비정설구간(Off-piste) 200Km, 총 슬로프 갯수는 88개, 총 리프트 갯수는 210개입니다. (사진 2) 숫자로만 보면 그 크기가 잘 가늠이 안될 수도 있는데 슬로프 길이로만 현재 국내에서 가장 큰 모나 용평 스키장의 20배 정도 된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사진 2. Ski map of SKI ARLBERG
출처 : https://www.stantonamarlberg.com
몇 해전부터 유럽의 눈가뭄이 심각했는데 올해는 그 정도가 심해서 원정을 간 것이 2월중순인데도 베이스 근처 마을에는 눈을 찾아보기 어려웠고 (사진3, 4) 심지어 슬로프 하단부는 눈이 많이 녹아 흙바닥이 보이거나 질척거리는 곳도 있었습니다. 상크 안톤 암 아를베르크에 도착한 당일에도 마을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는데 지구 온난화가 해가 갈수록 심해지는 것을 직접 피부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사진 3. 봄날 같은 스키장 베이스마을
St. Anton am Arlberg. (해발 1300M) 출처 : 필자
다음날은 해가 쨍하게 떠 시야가 매우 좋았었는데 유럽 알프스의 스키장들은 해발 고도가 높아서 이렇게 맑은 날은 일주일에 몇 일 안되고 대부분은 구름이 많이 끼거나 눈이 오는 날씨가 자주 있습니다. 이번 원정에서도 역시 맑은 날이 2일정도, 나머지는 눈이 오거나 구름이 많이 낀 날씨였습니다. 그래도 날씨 요정이 도와주었는지 3일에 걸쳐 50cm이상, 폭설 수준의 눈이 내려서 비정설 슬로프(off-piste)에서 파우더 스키를 즐길 수 있었습니다. 이번에 방문한 오스트리아의 스키장은 다른 유럽 스키장들과 다르게 스키를 즐기는 사람들이 엄청 많았고, 특히 가족 단위의 스키어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오스트리아 인구는 800 만명 정도 밖에 안되는데 전부 스키를 타러 온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슬로프가 복잡했습니다. (사진 5) 기차등의 대중교통으로 접근성이 좋고 숙박비가 비교적 저렴한 St. Anton am Arlberg 마을이 사람들이 가장 많았고, 숙박비가 상상을 초월하고 차량으로만 접근이 가능한 Lech 나 Zurs 마을은 확실히 사람들이 조금 적고 한산한 분위기였습니다.
사진 4. 눈이 오기전, 해발 2천미터 이하에는 눈이 별로 없다.
@ Flexenbahn 해발 2227M / 출처 :필자
사진 5. Schindler Spitz(해발 2660M)에서
St.Christoph(해발 1800M)로 내려가는 slope에 가득한 스키어들
사진 6. 비교적 한산했던 Zur 마을.
@ Top of Zur trail (해발 2440M) / 출처 : 필자
해외 원정을 계획할 때, 제일 먼저는 스키장을 선정하고 숙소를 구해야 합니다. 유명 스키장 주변 숙소는 보통 6개월 이전에 예약이 끝나게 됩니다. 그리고 early bird sale 마감 또한 대부분 8월 말이라 8월 전에는 숙소를 예약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나면 숙소까지 교통편을 알아보고 리프트 권은 제일 나중에 구매하셔도 됩니다. 참고로 북미의 큰 스키장들은 하루 리프트 비용이 250불이 넘고 그에 비해 유럽은 아직 100유로를 넘지 않는 곳이 대부분입니다. (Zermatt은 예외) 전국 의과대학에 스키부가 여럿 있는데 아마 몸이 근질근질한 선생님들이 계실꺼라 생각합니다. 눈으로 직접 보지 않으면 믿을 수 없는 비현실적인 풍광의 알프스에서 스키 어떠신가요?
마지막으로 휴가차 유럽에 와서 관광이나 쇼핑은 언감생심이고, 알프스 산속에 갇혀 스키만 일주일동안 죽어라 타는 거라 여행보다는 합숙훈련에 가까운데도 불구하고 불평없이 늘 함께 해주는 안사람에게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사진 7)
사진 7. 눈오는 알프스에서 스키타기.
@ 42번 Black slope / 출처 :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