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에 가시 걸려서 빼러 왔는데요...."
뭐라고 묻기도 전에, 그분들은 진단명, 부위, 치료방법을 이렇게 한마디로 콕 찝어 준다.
생선을 튀기거나 구어서 조금씩 뜯어 먹는 외국 사람들에 비해, 뜨겁고 매운 생선찌개나 탕을 후루룩 후루룩 숟가락으로 퍼먹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목에 가시가 더 잘 걸리는 것 같다.
병의원도 한 집 걸러 있고, 가시 뽑은 진료비 본인부담액이 냉면 한 그릇 값도 안되니, 가시가 걸렸는데 그냥 집에서 참고 버티는 사람은 드물다. 외국에서는 목에 가시 걸리면, 이비인후과 의사 찾아서 예약하기는 하늘에 별 따기고, 가정의나 응급센터에 겨우 찾아가서 고생고생하고, 진료비는 엄청 많이 내고 온다고 한다.
의과대학에서 희귀하고 어려운 병에 관해서는 열심히 배우고 교과서에도 여러 페이지 상세히 설명이 나오는데, 생선 가시에 대한 설명은 교과서에 딱 두 줄 나온다. 큰 병원에서 어려운 수술을 잘 하는 명의들도 막상 목에 걸린 가시를 뽑아 달라고 하면 더듬거리다가 안 되어서 짜증을 낼게 틀림 없다.
가시 걸린 사람이 한 달에 서너명 다녀 갔다고 쳐도 내가 이비인후과 개원 한지가 50년이 넘었으니 '목에 가시 걸려서 빼러 왔는데요....' 이 말을 몇 천 번은 들어 온 셈이다. 그런데도 이 말을 들을 때 마다 내 귀에는 '가시밭 길입니다. 조심 하세요.'라는 안내 멘트로 들린다.
'아 -' 입을 벌리고 이비인후과에서 라이트나 내시경을 비추어 보면 편도나 혀 뿌리 쪽에 걸린 가시는 쉽게 찾아서 뽑을 수 있다고 말은 하지만 가시 뽑기는 말처럼 만만치가 않다. 아무리 찾아보아도 가시가 안 보여서 의사, 간호사 환자가 뒤 엉켜서 땀 뻘뻘 홀리며 가시가 있느냐, 없느냐 끝없는 실랑이를 버리는 일은 정말 흔하다. 가시는 이미 빠져 나가고 목에 상처만 남았는데도 환자가 있다고 막무가내로 우기면, 혹시나 해서 자꾸 찾아보다가 실랑이를 하게 된다. 뽑으면 당연하고, 못 뽑으면 의사 망신은 말할 것도 없고 졸지에 죄 없는 돌팔이가 되는 것이 목에 걸린 가시 뽑기다. 그래서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가시는 뽑아야 한다. 없는 가시라도 뽑아야 한다.
그러다 보니 우리나라 이비인후과 개원 의사가 가시 뽑기에는 세계 제일이 될 수밖에 없다. 목에 걸린 가시 뽑는 것이 학문적으로는 별 볼일 없는 일이기에 학술 논문 통계 같은 데에 세계 최고라고 발표 되거나 인정을 받은 일은 없지만 아무래도 내 생각에는 우리나라 개원 의사가 첫째 일 것 같다.
'가시 빼러 왔는데요..'
점심 약속이 있어서 부지런히 병원 밖으로 나가다가, 아니면 하루 일과를 끝내고 집에 가려고 가운을 벗다가 이 말을 듣는 일이 참으로 많다. 가시 걸린 사람은 점심시간이나 퇴근 시간에 나타나는 일이 정말 흔하다. 점심으로 생선 매운탕을 맛있게 먹다가 다 먹지도 못하고 병원에 달려 온 사람은 음식 먹은 지 얼마 안 되서 목 안을 보려고 조금만 건드려도 '왝, 왝' 구역질을 심하게 한다. 나오라는 가시는 안 나오고 먹은 것만 토해 낸다. 이런 사람과 한바탕 실랑이를 하다보면 점심 약속 망치는 일은 고사하고 메슥거려서 나마저 제대로 밥을 먹기 힘들게 된다.
저녁 퇴근 무렵에 오는 사람은 더 심각하다. 밥 덩어리 삼키기, 식초 마시기 등등 하루 종일 아니면 며칠 동안 온갖 용하다는 민간요법을 다 써보던 끝에 목 속은 여기저기 붓고 상처가 나고, 신경은 날카로워져 있다. 몇 군데 다른 병원을 거쳐서 가시를 찾지 못하고 목에 상처만 더 만든 채 마지막으로 이비인후과를 찾아 온 사람도 많다.
퇴근 하려던 직원들은 벌써 외출복으로 갈아입고 서성거리며 빨리 뽑으라고 말없이 재촉을 한다. 이런 사람일수록 걸린 가시가 남아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이미 목에 상처만 남기고 빠져나가 버린 상태다. 걸려 있는 가시는 없고 남은 상처 때문에 그렇다고 아무리 설명해도 가시를 뽑아서 보여주기 전에는 물러 갈 생각을 안 한다. 가시가 너무 깊은데 박혀서 내 능력이나 시설로는 찾아 낼 수가 없다고 사정을 하면 그제야 한심하다는 눈빛을 남긴 채 환자는 의사를 용서하고 물러간다. 제대로 진찰비를 내거나 수고 했다는 인사를 기대하면 지나친 욕심이다.
목에 가시가 걸렸을 때 효과가 있다고 전해 내려오는 한방치료나 민간요법 들어보면 참으로 가지가지다. 밥 덩어리나 상추쌈을 씹지 않고 넘기는 방법이 제일 애용하는 응급 처치법이다. 작은 가시는 함께 휩쓸려 넘어가겠지만 가시가 크거나 특별한 곳에 박히면 이 방법은 매우 위험하다. 식초를 마시는 일이 가장 무모한 짓이다. 심지어 독한 빙초산을 마셔서 식도를 태워 버리는 사람도 전에는 많이 있었다.
그 밖에 민간이나 한방요법에는 물엿 먹기, 탱자 씨 달여 마시기, 봉숭아 대 삶아 마시기, 말린 귤껍질 태운 재를 물에 타서 마시기, 우엉 잎 즙 마시기, 유자껍질 씹어 먹기 같은 방법이 많다. 가시 뽑기는 포기하고 걸린 자리에 생긴 상처나 염증을 치료하려는 방법들인 것 같다. 가장 웃기는 방법으로는 마늘을 귀구멍에 찌르고 자거나, 사마귀를 태워 갈아서 목에 붙이거나, 심지어는 비슷한 가시를 구해서 머리에 얹어 놓는 비법도 있다. 치료 보다는 심리 효과를 기대하는 주술적 방법인 것 같다. 옛날에는 목에 가시가 걸리면 빼지도 못하고 여러 날 고생을 했을 것 같다.
요즘도 뻔히 보이는 가시를 목 안을 보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다른 과 선생님들은 못 찾고 애를 쓰다가 상처만 잔뜩 남긴 채 이비인후과로 보내는 일도 흔하다. 그래서 '목에 걸린 가시 뽑기' 에는 혼자서 터득한 경험과 그 나름대로의 감각과 허접한 인내심을 고루 갖춘 동네 이비인후과 의사가 그 나름 달인이다.
막상 빼고 보면 별것 아닌 조그만 가시 쪼가리. 토한 음식물로 엉망이 된 가운 세탁비도 안 되는 초라한 건강보험 수가. 환자는 그것도 비싸다고 고개를 갸웃거리면 이비인후과 의사는 달인은커녕 측은하고도 웃기는 코미디언이 된다. 더구나 고생고생하며 내시경 까지 넣어서 아무리 찾아도 가시가 없을 때는 코미디로만 끝나지 않는다. 어떻게 설명을 해도 가시를 빼내서 보여주기 전에는 돌팔이 취급을 당한다. 인사도 없이 쌩 - 찬바람을 남기며 환자가 나가버린 텅 빈 진찰실은 신파 비극 무대의 초라하고 어색한 마지막 장면이 되고 만다.
"가시가 목구멍에 걸렸는데, 안 빠져……. 작년 추석에 걸렸는데……."
작은 체구에 얌전하게 생긴 할머니가 지난 추석에 걸린 가시를 빼 달라고 왔다. 목에 걸린 가시가 몇 달씩 그 자리에 있을 리는 없지만 목이 뜨끔거리고 거북해서 찾아 온 것만은 틀림없다. 가시는 없는 것이 뻔 하지만 그럴수록 꼼꼼하게 살펴보고 만져보고 후두경으로 구석구석을 다 훑어본다. 종양이나 인후두 역류증이 있는가도 살펴본다. 그러고 나서 쉽게, 자세하게, 친절하게, 그리고 아주 열심히 가시가 없다고 설명을 한다. 몇 달 씩 목에 걸린 채로 있을 수도 없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할머니는 내 말은 들은 채도 않고 가시만 빼 달란다. 뽑아서 보여주기 전에는 아무 말도 소용이 없다. 목에 점막 마취제를 바르고 기다렸다가 다시 들여다보기를 몇 차례 되풀이한다. 점막 마취제 자꾸 뿌리는 일도 사실 위험하다. 이렇게 몇 번 반복하면 대개는 떨떠름해 하면서도 포기를 하는데, 이 할머니는 막무가내다. 진료기록부를 보니 할머니는 본인 부담금 없는 의료급여 환자다. 무료 환자라서 제대로 안 봐 주는가 의심할 수도 있겠다.
"할머니, 무료라서 안 봐 드리는 거 아니거든요. 돈 받는 사람 같았으면 벌써 갔을 텐데……." 할머니는 나를 한참 쳐다보더니 슬그머니 진찰실을 나간다. 돈 이야기를 하니 이해를 한 것 같아서 안심하고 다른 환자들을 치료하고 그 일은 곧 잊어버렸다.
'따르르르릉...'
두 세 시간 뒤 시청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무료 환자라고 괄시하고, 목에 걸린 가시도 뽑아 주지 않았다는데, 그러면 되겠느냐'고 시청 사회과 담당 직원이 전화통에서 목소리를 높인다. 할머니가 시청에 가서 엉엉 울면서 무료 환자라고 구박하고 가시도 안 뽑고 쫓아 낸 악덕 의사라고 고발 했다고 한다. 시청 직원도 할머니 말을 그대로 믿는 말투다.
화가 끓어오르는 걸 억지로 참고 전화통에 대고 또 한바탕 쉽게, 자세하게, 친절하게, 그리고 아주 열심히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시청 직원도 조금은 이해를 했는지 목소리가 조금씩 부드러워 졌다.
"가시가 없더라도 빼는 척이라도 해 드리세요. 할머니 다시 보낼 테니 또 와서 울고불고 하지 않게 제발 좀 친절하게 가시 빼는 척이라도 해 주세요."
"관공서 일은 하는 척 하면 될지 모르지만, 의료는 거짓말이 안 통해요. 목에 가시 걸린 느낌은 뽑는 척 한다고 좋아지지를 않아요."
분통을 꾹 참고 시청직원에게 할머니를 잘 이해시켜 집에 보내드려 달라고 부탁 또 부탁했다. 그 직원이 뭐라고 했는지, 할머니가 이해를 했는지. 아닌지. 그 뒤 소식은 알 수가 없다. 그 할머니는 아직 살아 계실까. 그때 받은 할머니 마음의 상처는 지워 졌을까. 지금도 궁금하다.
이미 20여년이 지나서 다 잊었을 법 한 일인데도, 가시 걸렸다는 사람이 오면, 더구나 의료급여 카드를 내밀면, 고집이 셀 것 같은 나이 든 분이 들어오면, 지금도 조금 긴장이 된다. 걸리지도 않은 가시가 20여년이나 내 마음에 걸려있었나 보다. 그래서 그럴수록 실없는 농담도 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껄끄러운 마음의 벽을 지우려고 노력을 한다. 그러다 보니 가시 걸렸다고 왔다가 엉뚱한 이야기만 하다가 친해져 버린 사람도 생긴다. 친해진 죄로 돈 만원을 꾸어 갔다가 몇 달 만에 와서 갚는 의료급여 환자 친구도 생겼다.
'상대편 눈높이로 바라보세요.'
누구를 대하던 그 사람 입장에서 생각하라는 작은 안내판 하나가 가시 뽑다가 생긴 내 마음의 가시밭 길 상처 자리에 꽂혀 있다.
요즈음처럼 가시밭길같이 험하고 어수선 할 때 일수록 이런 작은 안내판을 여러 개 만들어서 이사람 저 사람에게 꽂아 주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