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레르기란 무엇인가?
‘알레르기’는 영어로 allergy라고 하며, 일상에서는 ‘알러지’라는 표현도 사용되지만, 국립국어원이 정한 표준어는 ‘알레르기’이다. 이 단어가 일본식 발음에서 유래한 것 아니냐는
오해가 있으나, 실제 어원은 고대 그리스어 allos(다르다)와 ergon(작용)에서 유래하며, ‘일반적이지 않은 반응’을 뜻한다.
1906년 오스트리아의 소아청소년과 의사 클레멘스 폰 피르케(Clemens von Pirquet)가 백신 접종 후 비정상적 과민반응을 보이는 환자를 관찰하면서 ‘Allergie’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하였고, 이는 이후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의학 용어가 되었다. 한국어 ‘알레르기’는 독일어 ‘Allergie’의 발음을 그대로 반영한 용어이며, 단순한 외래어가 아닌 학문적
기원을 담고 있는 표현이다.
알레르기내과와 이비인후과의 접점
알레르기내과는 알레르기 면역반응이나 관련 면역세포 활성화로 유발되는 질환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전문 진료과이며, 대표적인 질환으로는 알레르기 비염, 천식, 아토피 피부염, 만성 두드러기, 아나필락시스, 약물 알레르기, 면역결핍질환, 비만세포 및 호산구 관련 질환 등이 있다. 이러한 질환들은 단일 장기나 단일 진료과의 문제에 국한되지 않으며, 피부과, 안과, 소아청소년과, 혈액내과, 이비인후과 등 여러 과와의 유기적인 협진이 요구된다.
알레르기 비염
이비인후과 외래에서 가장 흔히 접하게 되는 알레르기 질환은 단연 알레르기 비염이다. 주요 증상은 코막힘, 재채기, 콧물, 코 가려움증 등이 있으며, 이러한 증상으로 인해 환자는
대개 이비인후과를 가장 먼저 찾게 된다. 대부분은 적절한 약물치료와 생활 습관 조정만으로도 증상의 호전을 기대할 수 있다.
알레르기 비염은 꽃가루, 집먼지진드기, 동물의 털 등 특정 항원에 대한 IgE 매개 면역반응으로 인해 비점막에 염증이 발생하는 질환이다. 이러한 염증 반응은 단순한 코 증상에
국한되지 않고, 부비동염(축농증), 중이염, 인후두염, 수면무호흡증 등 다양한 이비인후과적 질환을 유발하거나 악화시킬 수 있다. 또한 꽃가루로 인한 알레르기 비염 환자는 때에
따라서 꽃가루와 식품의 교차 감작으로 인해 사과, 복숭아, 자두와 같은 과일 섭취 시 구강의 소양감이나 따끔거림이 동반되는 구강알레르기증후군(Oral allergy syndrome,
Pollen food syndrome)을 함께 지닌 경우가 많아 환자 진료 시 이 부분에 대한 확인도 필요하다.
꽃가루-식품 교차반응 | 자작나무 | 티모시, Orchard grass | 돼지풀 (Ragweed) | 쑥 (Mugwor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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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일류![]() |
사과, 체리, 키위, 복숭아, 배, 자두, 살구 | 오렌지, 복숭아, 토마토, 수박 | 수박, 체리, 바나나,메론 | - |
야채류![]() |
당근, 샐러리, 파슬리, 코리앤더 | 감자 | 오이, 감자, 호박 | 샐러리, 당근, 피망, 브로콜리, 양배추, 컬리플라워, 마늘, 양파, 파슬리 |
견과류![]() |
땅콩, 아몬드, 헤이즐넛, 콩 | - | - | - |
그림1. 꽃가루 감작에 따른 대표적인 식품 감작
이비인후과에서는 비내시경 검사를 통해 비점막의 부종, 분비물의 양상 등을 직접 확인함으로써 1차 진단이 가능하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치료 접근을 위해서는 원인 알레르겐의 확인이 필수적이며, 이를 위해 피부단자검사(Skin Prick Test) 또는 혈액을 통한 특이 IgE 항체 측정(ImmunoCAP) 검사를 활용할 수 있다.
면역치료: 알레르기 비염의 근본 치료
알레르기 비염의 치료는 약물이나 수술적 치료 외에도, 원인 알레르겐에 대한 면역치료가 중요한 축을 담당한다. 면역치료는 알레르겐에 대해 비정상적인 과민 면역반응을
면역 관용(immune tolerance) 상태로 바꾸는 유일한 근본 치료법이다.
환자의 알레르겐 감작 패턴을 바탕으로 맞춤형 치료가 가능하며, 약물 의존도를 줄이고 장기적인 관해를 유도할 수 있다. 소아에서는 천식으로의 진행을 예방하고 추가 감작을
막는 효과도 보고되고 있다. 치료 종료 후에도 수년 이상 효과가 유지되는 사례가 많다.
면역치료는 다음과 같이 구분된다:
1. 피하 면역치료 (SCIT, Subcutaneous Immunotherapy): 알레르겐 추출물을 주 1~2회 피하에 주사하며, 유지기에는 월 1회 정도로 줄어든다. 100년 이상의 임상 사용 이력이 있으며,
꽃가루, 진드기, 동물털 등 대부분의 항원에 적용이 가능하다.
2. 설하 면역치료 (SLIT, Sublingual Immunotherapy): 알레르겐 추출물을 액상이나 정제 형태로 혀 밑에 투여하는 방식이다. 자가 투여가 가능하고 부작용이 적으며,
국내에서는 집먼지진드기 항원을 이용한 제제가 시판되고 있다.
이러한 치료는 평균 3~5년간 지속되며, 치료 종료 후에도 증상 완화 효과가 장기간 유지된다. 따라서 이비인후과에서 알레르기 비염 환자를 진료할 때 면역치료의 적응증에 대해 고려하고, 알레르기내과와의 협진을 통해 보다 적극적으로 치료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만성기침: UACS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경우
이비인후과 외래에서는 목 뒤 이물감이나 후비루 증상을 동반한 만성기침 환자를 자주 접한다. 상기도기침증후군(Upper Airway Cough Syndrome, UACS)은 흔한 원인이지만,
기침의 원인은 천식, 위식도 역류질환(GERD), 호산구성 기관지염, ACE 억제제, 간질성 폐질환 등 매우 다양하다.
이러한 경우 비내시경, 후두내시경 외에도 흉부 영상검사, 폐기능검사, 알레르기 검사 등 타과적 접근이 필요하다. 특히 야간기침, 천명, 운동 유발 증상이 있는 경우 천식을
감별해야 하며, 알레르기 비염 환자에서 천식의 동반율이 높다는 점에서 환자 교육과 추가적인 천식 검사 권유가 중요하다. 천식의 경우 한 번의 진단적 검사로 정확한 진단이
이루어지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한번 시행한 검사에서 이상이 없었다 할지라도 알레르기 비염이 동반된 환자는 천식의 발생 위험을 항상 가지고 있는 것이기에 1~2년 뒤 유사
증상이 발생했을 때 검사를 재시행하면 천식이 진단되기도 한다. 또한 성인에서 폐암 등과 같은 호흡기의 기질적 문제가 잠재 되어있는 경우도 드물게 있어 적절한 치료에도
기침이 지속될 시 단순 상기도 질환으로만 보지 않고 알레르기내과에 의뢰하여 추가 진단을 권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면역결핍 질환: 드물지만 접할 수 있는 질환
반복적인 상기도 감염, 부비동염, 중이염 등을 호소하며 이비인후과를 자주 방문하는 환자 중 일부는 면역글로불린 결핍증과 같은 일차 면역결핍 질환을 가지고 있다.
진단되지 않은 채 수년간 증상을 반복하는 경우가 많으며, 진료 초기 단계에서 의심이 이루어진다면 환자의 삶의 질을 획기적으로 향상할 수 있다.
아래와 같은 ‘경고 신호(Warning Signs)’가 있으면 면역결핍을 고려해야 한다:
· 연 4회 이상의 중이염, 2회 이상의 부비동염 또는 폐렴
· 표준 치료에 반응하지 않거나 반복되는 감염
· 비정상 병원체(기회감염 등)에 의한 감염
· 성인기까지 반복되는 심각한 감염
· 자가면역 질환 또는 면역결핍 질환의 가족력
진단은 혈중 IgG, IgA, IgM 및 각 아형의 정량적 면역글로불린 수치를 확인함으로써 가능하며, 치료는 면역글로불린 보충 요법(IVIG, 월 1회 정맥주사)을 통해 감염 빈도를
감소시킬 수 있다.
약물알레르기: 모든 임상의가 인지해야 할 위험
알레르기 질환 중에서도 약물알레르기는 임상 진료와 밀접하게 연관될 수 있는 중요한 문제이다. 특히 베타락탐계 항생제나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진통제(NSAIDs) 처방이 흔한 진료
환경에서는 이들 약제에 의한 이상 반응을 경험하는 환자들이 적지 않다. 약물알레르기의 90% 이상은 피부 증상(두드러기, 발진 등)으로 나타나며, 때에 따라 위장관 또는 호흡기
증상이 동반될 수 있고, 이전 투약 시 이상이 없었던 약물이라 하더라도 재투약 시 알레르기 반응이 새롭게 발생할 수 있다.
즉시형 약물알레르기의 대표적 형태는 아나필락시스, 혈관부종, 두드러기 등으로, 대개 약물 투여 후 1~2시간 이내에 발생한다. 이 경우 원인 약제의 즉시 중단과 함께
대증치료(항히스타민제, 스테로이드, 에피네프린 등)**를 통해 대부분 증상이 호전된다. 그러나 수일에서 수주 뒤에 증상이 나타나는 지연형 반응도 있으며, 이에는 중증 약물
피부 반응(Severe Cutaneous Adverse Reactions, SCAR)이 포함된다. 대표적으로는 독성 표피 괴사 융해증(TEN), 스티븐스-존슨 증후군(SJS), 호산구 증가 및 전신증상을
동반한 약물 반응(DRESS) 증후군 등이 있으며, 때에 따라 간, 신장 등의 장기 손상 또는 사망에 이를 수 있어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약물 이상 반응이 의심되는 경우에는 원인 약물을 확인하기 전까지 즉시 의심이 되는 모든 약물 투약을 중단하고, 동일 계열 약물은 교차반응 가능성이 있으므로 재투약을
피하는 것이 원칙이다. 이상 반응을 일으킨 성분은 가급적 회피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항암제, 항결핵제, 면역억제제 등 대체가 어려운 약물의 경우에는 의학적 필요에 따라
탈감작(desensitization) 요법을 통해 제한된 상황에서 재투약을 고려할 수 있다.
그림2. 항암제 탈감작 프로토콜 예시
알레르기내과에서는 약물 유발검사(drug provocation test) 및 피부검사(피내시험, 패치테스트) 등을 통해 원인 약물을 명확히 진단하고,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는 대체약제를 제시함으로써 환자의 치료 옵션을 확보하는 데 기여한다. 따라서 약물 이상반응이 의심될 경우, 가능한 한 조기에 알레르기내과와 협진을 통해 정확한 진단과 계획을 수립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맺으며
이비인후과 전문의는 알레르기 질환의 초기 접점에서 환자를 만나는 경우가 많으며, 알레르기내과와의 협진을 통해 질환의 정확한 감별과 근본 치료에 기여할 수 있다. 면역치료, 만성기침 감별, 면역결핍 선별, 약물알레르기 진단 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협력은 환자의 삶의 질 향상뿐 아니라 의료적 책임의 분담이라는 측면에서도 큰 의미를 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