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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USC 연수기 - 다시 연구자로서의 길 위에 서다 충남대학교병원 김봉직

2023년 9월, 저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위치한 USC Keck School of Medicine의 Caruso Department of Otolaryngology에서 연수를 시작했습니다. 나중에 알았지만, 이 Caruso family는 LA 시내 안의 The Grove, 글렌데일의 Americana를 소유한 엄청난 거부 가문이었고 USC 이비인후과에 많은 지원을 해 주고 있었습니다. 약 8년 전 소아이비인후과 펠로우십으로 미국에 머문 적이 있었기에 다시 익숙한 땅을 밟는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다만, 이번에는 대학에서 6년간의 교수 생활을 마친 후, 소속 기관의 배려로 ‘연수’라는 형태로 오게 되었기에 기대와 책임감이 더 컸습니다.

이번 연수는 약 1년 전 LA에서 열린 학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현장에서 USC 이비인후과 주임교수인 John Oghalai 교수님을 직접 만나 연수에 대한 의사를 밝혔고, 코리아타운의 한식당에서 식사하며 구체적인 계획을 논의했습니다. 과거 오갈라이 교수님이 스탠퍼드 대학에 계셨던 시절, 조선대학교 조성일 교수님이 오갈라이 교수님 랩에서 연수를 마친 경험이 있어, 조 교수님의 조언과 소개도 제가 이 랩에 합류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한 번 살아본 미국이기에 별다른 준비 없이 홀로 LA 공항에 내린 저는 정착 서비스 따위는 필요없고 금방 정착할 거라는 자신감이 있었지만, 현실은 달랐습니다. 운전면허 재발급은 예상보다 수월했지만, 집과 차량을 구하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또한 미국의 높아진 물가와 강달러는 제 정착을 더 어렵게 했습니다. 여러 시행착오 끝에 9월 중순부터 본격적으로 연구실에 출근할 수 있었고, 그전까지는 학교가 신규 연구자에게 요구하는 각종 온라인 교육과 실험실 안전 교육을 이수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미국 시스템상, 실제 도착 전에는 행정 절차를 진행할 수 없는 부분도 많아 다소 답답함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실험실에 다시 들어서면서, 연구자로서의 감각을 되찾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음을 깨달았습니다. 특히 비교적 짧은 기간 동안 머무는 방문 연구자로서 기존 연구원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과제였습니다. 저는 이 시간을 오롯이 연구에 몰입하기 위한 기회로 삼기로 했고, 가족이 합류하기 전까지는 연구원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며 실험실 생활에 집중했습니다. 오랜만에 ‘배우는 자’로 돌아간 느낌이 신선하면서도 도전적이었고 또한 체력적으로 힘들었습니다.

USC의 오갈라이 교수님 연구실은 제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역동적인 분위기였습니다. 연구원들은 자발적으로 늦은 시간까지 남아 실험을 지속했고, 주말에도 랩에 나오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알고 보니 오갈라이 교수님은 연구에 있어 매우 엄격하고 철저하신 분이었습니다. 매주 열리는 랩 미팅에서는 새로운 데이터를 요구하셨고, 실험 설계에 대한 날카로운 피드백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연구원들과 대학원생들, 그리고 이비인후과에 지원하고 싶은 의과대학 학생들, 의과대학에 진학하고 싶은 학부생 및 연구원 등 많은 사람들이 랩을 구성하고 있었고 저마다의 의지와 꿈이 있기에 대체로 다들 열심히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주로 참여한 연구는 Optical Coherence Tomography (OCT)를 활용한 내이 영상 연구로, 마우스 모델에서 형광 단백질을 AAV에 탑재해 주입한 후 cell signaling을 OCT로 관찰하거나, 내이 구조물의 움직임 차이를 시각화하는 Dynamic OCT 실험 등이 있었습니다. 또한 수술장에서 직접 사람에서 내이 OCT 영상을 얻는 연구에도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오갈라이 교수님은 이 분야에서 오랜 시간 한 길을 걸어오셨기에 세계적인 전문가로 자리매김하신 분입니다. 저는 이 과정을 통해 단순한 실험 수행을 넘어, 하나의 연구실이 어떻게 꾸려지고 유지되는지, Principal Investigator로서의 자세 또한 배우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연구에 익숙해질수록 동료들과도 자연스럽게 가까워졌습니다. 점심/저녁 시간에는 미국의 ‘배달의 민족, 쿠팡 이츠’인 ‘Doordash’로 음식을 시켜 함께 먹기도 하고, 주말에는 다저스 경기를 함께 보러 가기도 했습니다. 연구실에서의 생활은 점차 저에게 익숙한 일상이 되어갔습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저를 특히 많이 도와주신 Staff Scientist인 김위한 박사님과 박사과정 학생이었던 Leah Kim이 기억납니다. 그리고 감사하다는 말씀 여기서도 전하고 싶습니다.

이렇게 연구실 생활에 적응해 가는 가운데 얼마 되지 않아, 안타깝게도 은사이신 서울대병원 오승하 교수님의 별세 소식을 들었습니다. 학창 시절부터 이비인후과의 길로 이끌어주셨고, 석·박사 과정, 그리고 임상 수련 시절 내내 저를 지도해주신 스승님이셨기에, 미국에서 그 마지막을 전해 들은 마음은 무척 무거웠습니다. 얼마 전에 귀국 후 처음으로 교수님이 계신 곳을 찾아 인사를 드릴 수 있었습니다.

가족이 미국에 합류한 이후에는 생활의 리듬도 달라졌습니다. 이전처럼 밤늦게까지 실험실에 남기보다는, 저녁이 있는 삶을 즐기고자 했습니다. 주말이나 연휴에는 LA 인근을 여행하며 가족과 소중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Solvang, San Diego, Big Bear Lake, Palm Springs 등 다양한 도시를 찾았고, 긴 연휴에는 Utah의 Zion 국립공원, Idaho의 Grand Teton까지 다녀오며 자연의 아름다움에 감탄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지금까지 우리 아이가 이랬나 싶을 정도로 아이들의 새로운 면을 많이 알게 된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미국 생활 중에는 외식비가 너무 비싸기도 하고 자연스럽게 주로 제가 식사 준비를 많이 하게 되었고, 이를 통해 아이들과 더 친밀해지게 되고, 아이들이 학교에서 아빠는 맛있는 식사를 만들어줘서 좋다는 글을 써 왔을 때 너무 기뻤던 기억이 납니다.

연수 마지막 6개월에는 USC 이비인후과 외래 및 수술 참관 기회를 얻었고, 같은 캠퍼스 안의 신경과 김호성 교수님의 AI 연구실의 랩 미팅에도 꾸준히 참여하며 학제 간 연구와 네트워킹에도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다양한 분야와 접점에서 교류할 수 있었던 점도 큰 수확이었습니다.

이제 연수를 마무리한 시점에서 돌아보면, 이번 미국 생활은 그리 편안하지만은 않았습니다. 예기치 못한 응급실 방문과 의료비 부담, 아이의 응급수술 같은 어려움도 있었지만, 그 모든 경험은 저와 제 가족에게 의미 있는 흔적으로 남았습니다. 무엇보다 연구자이자 부모, 그리고 배우자로서의 삶을 다시 돌아보게 된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이러한 기회를 주신 소속 기관과 교실에 깊이 감사드리며, 낯선 환경에서도 묵묵히 함께해 준 가족에게도 진심으로 고마움을 전합니다. 연구자의 길 위에서 다시 한번 초심을 다질 수 있었던 이 시간을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습니다.

[오갈라이 교수님과 수술장에서]

[실험실 주요 멤버였던 포스닥 유키, 펠로우 도로시, 주메이, 잭 그리고 나]

[기술지원을 아끼지 않은 착한 마이클과 Zihan(즈-한), 그리고 뒤에 보이는 장난스러운 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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