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전공의들은 말이야..."
전공의 1년차였다. 이 말을 직접 들은 건.
우리의 선배, 후배 모두가 그렇듯.
회진을 마친 뒤, 교수님을 비롯해 윗 년차 선배들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 자연스레 내 귀에 들어온 말이다. 내용은 모두가 예상하는 다소 뻔한 그 내용이다.
예전만큼 고생하지 않는다거나, 책임감이 부족하다거나, 병원에 있는 시간이 줄었는데도 만족하지 못한다고 하거나 등등 말이다.
지금 들어도 피식거릴 얘기면서도 또 한편으론 그냥 귓가에 항상 맴도는 잔소리다.
당시 나는 속으로 말했다. '우리도 나름대로 열심히 하고 있는데…'라고.
그리고 수년의 시간이 흘렀다.
어느 날 문득 회의에서 내가 비슷한 표현을 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요즘 전공의들은..." 순간 피식하며 웃음이 새어 나왔다. 결국 나도 그때 그 선배들의 모습으로 어른이 되어가나?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비판하던 어른이 되어가는 모양이다. 모든 어른이 요즘 애들은… 하며 푸념을 늘어놓듯 말이다.
최근 수련 환경은 내가 전공의였던 시절과 많이 달라졌다. 제도적으로 근무 환경에 대한 보완이 많이 이뤄졌다. 업무 강도를 줄이기 위한 근무시간 제한이 생겼고, 휴식도 제도적으로 보장된다. 병원에서 밤을 새우는 일도 줄었고, 심지어 출근하지 않는 날도 있다. 처음에는 솔직히 적응하기 어려웠다. 나 같은 젊은 꼰대에게는 특히.
어느 월요일 아침이었다. 입원환자 경과 확인차 전공의를 찾는데 보이지 않았다.
"○○ 선생 어디 갔어요?" 하는 내 질문에 간호사가 답했다.
"오늘 오프(off)에요."라고.
머리로는 알고 있다. 당연히 쉬는 날이 있고, 법으로 보장된 권리다. 그럼에도 어색했다. 전공의에게 월요일에 쉬는 날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이 익숙지 않았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전공의가 쉬는 것이 이상한 것이 아니라, 내가 쉬지 못했던 것이 이상한 일이었을지 모른다.
한 번은 외래 환자가 물었다.
"교수님, 지난번에 뵀던 선생님은 오늘 안 보이시네요."
병동 어딘가에 있을 수도 있는 전공의지만, 요즘은 휴무 가능성이 더 높은 게 현실이다. 환자에게 잘 설명했지만, 속으로는 시대가 참 많이 달라졌다고 생각했다.
그럼과 동시에 나 역시 조금씩 생각이 바뀌었다.
병원에 오래 있는 것이 좋은 의사를 만드는 필요조건일 수는 있어도 충분조건은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게 됐다.
우리는 많은 것을 경험했다. 수없이 당직을 섰고, 병동에서 밤을 지새웠고, 새벽까지 수술방 불이 꺼지지 않는 날도 있었다. 그 경험이 지금의 우리를 만들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동시에 우리는 경험과 피로를 혼동한 것은 아닐까, 생각도 한다.
잠을 못 자는 것이 교육은 아니다.
병원에 오래 머무는 것이 곧 배움은 아니다.
좋은 의사는 단순히 오래 일 한 의사가 아니라, 제대로 배우고 성장한 의사임이 분명하다.
다만 지금 환경에서 만나는 새로운 세대의 전공의가 낯설게 느껴지는 것은 사실이다.
회진이 끝나면 의국보다 카카오톡이 먼저 움직이고, 궁금한 것이 있으면 교과서보다 먼저 인공지능 검색창으로 손가락을 움직인다. 인공지능에 논문 요약을 부탁하는 모습도 이제는 특별하지 않다. 내가 배우던 방식과 너무 달라서 놀란다.
그렇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우리도 마찬가지였겠지 싶다.
처음 PACS를 사용하자 선배들은 필름을 직접 보던 시절에 대해 자신들만의 무용담을 배경으로 한바탕 떠들곤 했다. 전자 의무기록 도입 때도
"진짜 의사는 차트를 손으로 써야한다"라며 폼을 재며 잔소리를 한바탕 했었다.
어느 시대나 새로운 방식은 낯설고, 낯선 것은 불편함을 동반하기도 한다.
다만 생각해 보면 결국 중요한 것은 방식이 아니라 본질이다.
환자를 책임지는 마음, 배우려는 자세, 동료를 존중하는 태도, 그리고 더 나은 의사가 되기 위한 노력은 세대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다. 좋은 전공의는 특정 세대의 산물이 아니다. 좋은 교육환경과 좋은 스승, 그리고 스스로 성장하려는 의지가 함께 만들어 내는 결과다.
우리 선배가 그랬고, 나도 그러했듯, 지금의 우리 전공의들이 훗날 전문의가 되어서도 "요즘 전공의들은..." 으로 이야기를 시작하겠거니 생각하니 또 웃음이 샌다. 그 말을 듣는 전공의들도 마찬가지로 "교수님도 옛날 분이네."라고 하겠지 싶다.
Image made by 생성형 AI
어쩌면 이건 대한민국의 의학 교육이 이어지는 가장 확실하고 자연스러운 방식이 아닐는지도 모르겠다. 다만 수련 환경이 좋아졌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우리가 과거보다 더 나은 환경에서 교육받아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이유는 단순히 편해지기 위해서가 아니다. 충분히 배우고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다. 실제로 최근 전국 전공의노동조합의 전공의 근로실태조사(2025.10. 하기 표)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53.1%가 주 72시간 이상 근무하고 있었으며, 27.8%는 주 80시간을 초과해 근무하고 있었다. 전공의법이 시행된 지 여러 해가 지났음에도 여전히 과도한 업무 부담이 남아 있음을 보여주는 결과다.
| 근무시간 | 비율 |
|---|---|
| 40~56시간 | 8% |
| 56~64시간 | 11% |
| 64~72시간 | 25% |
| 72~80시간 | 28% |
| 80시간 초과 | 28% |
결국 중요한 것은 과거와 현재를 비교하며 누가 더 힘들었는지를 겨루는 것이 아니다. 어떤 시대의 전공의라도 더 좋은 교육을 받고 더 좋은 의사가 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가치를 이어가는 것이야말로 세대가 바뀌어도 계속되어야 할 우리의 역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