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는 대부분의 사람에게 꽤 익숙한 물건이다. 어린 시절에는 특별한 운동이라기보다 동네를 돌아다니는 이동 수단이었고, 친구들과 놀러 다니기 위한 장난감에 가까웠다. 나 역시 어릴 때는 자전거를 꽤 탔지만, 학업과 수련, 직장 생활을 거치면서 자전거와는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다시 자전거를 타기 시작한 것은 2020년 8월이었다. COVID-19가 한창이던 때였다. 실내 활동이 자유롭지 않았고, 사람을 만나는 일조차 조심스러웠던 시절, 문득 바깥에서 혼자 할 수 있는 운동을 찾게 되었다. 마침 동기 친구가 타던 CELLO Elliot S7이라는 오래된 로드 자전거를 물려받았다. 지금 생각하면 이것이 모든 일의 시작이었다.
처음부터 거창한 목표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건강을 위해 가끔 자전거나 타보자는 정도였다. 그런데 막상 자전거를 타고 집을 나서니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차를 타고 다닐 때는 그냥 지나쳤던 길이 다르게 보였다. 남한강 자전거길을 따라 달리고, 원주 주변의 작은 도로를 찾아가면서 조금씩 거리가 늘어났다.
[사진 1. 2020년 처음 다시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을 무렵의 첫 로드자전거, 30km 주행]
처음에는 30km만 달려도 꽤 멀리 다녀온 것 같았다. 어느 순간 50km를 달리고 있었고, 조금 더 지나자 100 km에 도전해보고 싶어졌다.
2021년 2월 14일, 처음으로 100km를 달렸다. 지금이야 장거리 라이딩을 여러 번 경험했지만, 당시의 100km는 상당히 큰 사건이었다. 출발할 때는 언제 이 거리를 다 달리나 싶었고, 후반에는 다리도 아프고 엉덩이도 아팠다. 그래도 속도계의 숫자가 100을 넘어가는 순간의 만족감은 상당했다.
자전거의 재미 가운데 하나는 이렇게 자신의 영역이 조금씩 넓어진다는 데 있다. 어제까지 멀다고 생각했던 곳이 어느 날에는 자전거로 갈 수 있는 곳이 된다.
로드 자전거를 타면 보통 시속 20~30km 정도로 움직인다. 개인적으로는 이 속도가 참 절묘하다고 생각한다. 걸어가기에는 너무 먼 곳까지 갈 수 있지만, 자동차를 탈 때처럼 주변의 풍경이 순식간에 지나가 버리지 않는다. 논의 색깔이 변하는 모습, 계절마다 달라지는 나무, 강 옆의 바람, 처음 보는 작은 마을과 식당을 모두 느끼면서도 꽤 먼 곳까지 갈 수 있다.
풍경을 즐길 만큼 느리고, 새로운 곳에 도착할 만큼 빠르다.
내가 생각하는 자전거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다.
[사진 2. 첫 100 km 라이딩 기록과 당시 사진]
자전거는 혼자 할 수 있는 운동이다. 그래서 처음 시작했다. 그런데 몇 년을 타고 보니 자전거는 의외로 사람을 많이 만나게 해주는 운동이었다.
2020년 가을부터 함께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하나둘 생겼다. 누군가 먼저 앞에서 바람을 막아주기도 하고, 언덕에서 뒤처진 사람을 기다려주기도 한다. 힘든 업힐을 올라가면서 다시는 이곳에 오지 않겠다고 이야기하다가도 정상에 도착하면 또 다음 코스를 의논한다.
그리고 자전거를 함께 타는 데에는 생각보다 많은 대화가 필요하지 않다. 몇 시간 동안 같은 길을 달린 뒤 편의점 앞에 앉아 음료를 마시거나, 라이딩을 마치고 함께 밥을 먹는 것만으로도 꽤 가까워진다.
병원에서 만나는 동료들과도 자전거 위에서는 조금 다른 관계가 된다. 직급이나 진료과, 업무 이야기를 잠시 내려놓고 오늘 어느 길로 갈지, 어느 언덕이 더 힘들었는지, 점심은 무엇을 먹을지를 이야기한다.
돌이켜보면 자전거를 타면서 기억에 남은 날에는 대부분 사람이 함께 있었다. 기록에는 거리와 시간만 남지만 기억에는 그날 같이 달린 사람들이 남는다.
[사진 3. 자전거를 통해 원내 교수님들과 함께하는 순간들]
자전거를 오래 타다 보니 단순히 운동을 하는 것을 넘어 자전거를 타기 위해 여행을 가기 시작했다.
여주와 충주, 서울과 강원도의 여러 길을 찾아갔고, 자전거를 차에 싣기도 하고 기차에 싣기도 했다. 접이식 자전거를 가지고 여행한 적도 있다. 출장이나 학회에 갔을 때 시간이 나면 그 도시에서 자전거를 타보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기억에 가장 많이 남는 곳은 제주도다.
제주도를 자전거로 한 바퀴 돌아보면 자동차로 여행할 때와는 완전히 다른 섬을 만난다. 같은 해안도로라도 자전거에서는 바람의 방향과 경사의 변화가 느껴진다. 아름다운 바다를 보며 감탄하다가 몇 시간 뒤 맞바람을 만나면 그 바다가 조금 원망스럽기도 하다.
처음 제주 일주에 도전했을 때는 약 160km를 달렸다. 이후에는 하루에 200km가 넘는 거리를 달려 제주를 한 바퀴 돌기도 했다. 하루 종일 자전거에 앉아 8시간 이상 페달을 밟는 것은 분명 편한 일은 아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시간이 지나면 힘들었던 기억은 흐려지고, 새벽의 도로와 바다, 중간에 먹었던 음식, 함께 달린 사람들의 표정이 더 선명하게 남는다.
처음 30km도 멀다고 느꼈던 사람이 어느 날 제주도를 자전거로 한 바퀴 돌고 있다는 사실이 나 자신에게도 조금 재미있었다.
[사진 4. 제주 일주 Strava 지도, 제주 해안도로에서 자전거와 함께 촬영한 사진]
로드 자전거를 취미로 이야기하면서 장비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는 없다.
처음에는 친구에게 물려받은 자전거 한 대면 충분했다. 하지만 타다 보면 자연스럽게 다른 자전거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조금 더 가벼우면 어떨까, 전자식 변속기는 어떨까, 휠을 바꾸면 정말 빨라질까 하는 궁금증이 생긴다.
결국 나도 Canyon Aeroad CF SLX라는 자전거를 주문하게 되었다.
문제는 COVID-19 시기 전 세계적인 자전거 수요와 공급 문제였다. 큰마음을 먹고 주문했는데 자전거가 오지 않았다. 한 달, 두 달이 지나고 반년이 지나도 오지 않았다. 거의 1년 가까이 기다린 끝에야 자전거를 받을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기다리는 과정까지 포함해 취미였던 것 같다.
자전거에는 흔히 말하는 '장비병'이 존재한다. 속도계, 파워미터, 헬멧, 고글, 신발, 휠….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물론 좋은 장비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하지만 몇 년을 타고 난 뒤 내린 결론은 의외로 단순하다.
가장 좋은 자전거는 내가 자주 타고 싶어지는 자전거다.
비싼 자전거가 있어도 집 밖으로 가지고 나가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반대로 평범한 자전거라도 즐겁게 자주 타면 훌륭한 취미가 된다.
[사진 5. 현재의 로드 자전거, 자전거와 함께 있는 사진]
의사라는 직업은 하루의 많은 시간을 실내에서 보낸다. 외래를 보고, 수술을 하고, 회의를 하고, 논문이나 연구 계획서를 읽다 보면 하루 종일 머릿속에서 여러 가지 생각이 동시에 돌아간다.
자전거를 타는 동안에는 상황이 조금 달라진다.
오르막에서는 다른 생각을 할 여유가 없다. 그저 눈앞의 길과 호흡에 집중한다. 내리막에서는 노면과 주변을 살펴야 한다. 평지에서는 일정한 리듬으로 페달을 밟는다. 그렇게 한두 시간을 달리고 나면 머릿속에서 복잡하게 얽혀 있던 생각들이 조금은 정돈된다.
처음에는 건강을 위해 자전거를 탔다. 지금은 오히려 머리를 쉬게 하려고 자전거를 타는 날도 많다.
그리고 계절을 이전보다 훨씬 잘 느끼게 되었다. 봄이면 어느 길에 벚꽃이 먼저 피는지 알게 되고, 여름 새벽 공기의 온도와 가을 논의 색깔을 기억하게 된다. 겨울이 오면 추위를 핑계로 실내 자전거를 타면서 다시 봄을 기다린다.
같은 길도 계절마다 전혀 다른 길이 된다.
특히 자전거를 타고 벚꽃이 가득한 도로를 지나가는 순간이나, 긴 오르막을 오른 뒤 뒤를 돌아보며 방금 지나온 길을 바라보는 순간은 자동차로 이동할 때는 쉽게 경험하기 어려운 장면이다.
[사진 6. 벚꽃 길, 울산바위와 함께한 라이딩]
물론 자전거가 언제나 낭만적인 취미인 것은 아니다.
언덕을 오르다 보면 왜 돈을 들여 이런 고생을 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 때도 있고, 타이어가 펑크 나기도 하고, 비를 만나기도 한다. 넘어져 다칠 수도 있기 때문에 안전에도 항상 신경을 써야 한다.
특히 로드 자전거는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헬멧 착용과 교통법규 준수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개인적으로는 아무리 좋은 기록을 세우더라도 무사히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면 좋은 라이딩이라고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예전에는 평균속도와 거리 기록에 관심이 많았다면, 요즘에는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얼마나 빨리 달렸는가 보다는 얼마나 즐거웠는가, 누구와 함께했는가가 더 중요해졌다.
2020년 여름, COVID-19를 피해 가벼운 마음으로 다시 잡았던 자전거 핸들은 이제 내 일상의 꽤 중요한 한 부분이 되었다. 자전거를 타면서 운동을 했고, 여행을 했고, 새로운 사람을 만났다. 그리고 무엇보다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혼자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얻었다.
누군가가 나에게 자전거를 어떻게 타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이제는 복잡하게 이야기하지 않는다.
자전거의 종류도, 가격도, 평균속도도 생각보다 중요하지 않다.
그냥 즐겁게 타면 된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오래 타면 더 좋다.
두 바퀴 위에서 천천히 지나온 길들이 어느새 내 삶의 꽤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진 7. 2025년 설악그란폰도 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