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을 들고 병사들을 치료하는 헌신적인 성녀.
나이팅게일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다. 나도 그랬다. 얼마 전까지는.
나이팅게일(그림 1)은 1855년 Crimean war에서 야전병원에 투입되어 간호활동을 시작했다. 일을 시작하며 나이팅게일은 병원에서 죽어나가는 환자들이 많은 것에 놀랐다. 여기서 생각이 그친 게 아니라, 환자들이 얼마나, 왜 죽는지에 대한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했다. 나이팅게일은 본인이 분석한 데이터를 “Diagram of the Causes of Mortality in the Army in the East” 라는 도표로 보고했고, (그림 2) 이 보고로 사망률의 가장 큰 원인은 비위생적인 환경으로 인한 병원감염이라는 것을 사람들에게 알렸다. 그리고 그 문제를 해결해서, 결국 사망율을 43%에서 2%로 대폭(!!!) 낮췄다. 만약 나이팅게일이 죽어나가는 환자들이 많은 것에 놀라 밤새워 환자 간호만을 열심히 했다면 이런 성과는 없었을 것이다.
그림1. 헌신적으로 병사를 치료한 간호사로 알려져 있는 나이팅게일
그림2. Diagram of the Causes of Mortality in the Army in the East
이 사실을 알게 된 후, 내가 생각하던 나이팅게일의 성녀간호사 이미지가 바뀌었다. (빅데이터가 중요한 2020년 현재에는 나이팅게일은 간호학이 아니라 Data Visualization의 선구자로 여겨지고 있다고 한다. The Journals of Data Visualization Society의 이름이 Nightingale일 정도이다.) 뿐만 아니라 나이팅게일의 이 스토리를 알게 된 후 나는 ‘나이팅게일이 어떻게 저런 성과를 낼 수 있었을까?’를 생각해보며 일을 제대로 하는 방법, 더 나아가 인생을 사는 방법에 대해 고민해보게 되었다.
얼마 전 TED에서 애덤 그랜트 교수(Wharton school of the university of Pennsylvania)의 강연을 흥미롭게 보았다. 그는 인터넷 브라우저로 크롬이나 파이어팍스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익스플로러를 사용하는 사람들에 비해 업무성과가 더 높다는 것을 발견했다. 실험대상자들은 타자속도도 비슷하고, 컴퓨터 실력도 비슷했기 때문에 기술적인 이유는 아니었다. 어떻게 그 브라우저를 쓰게 되었는지가 핵심이었다. 익스플로러는 이미 컴퓨터에 설치되어있는 디폴트(초기설정)이니, 익스플로러를 쓰는 사람들은 손에 쥐어진 초기설정을 받아들이기만 했다. 하지만 파이어폭스나 크롬을 쓰는 사람들은, 여기에 의문을 가지고 새로운 브라우저를 다운로드 받은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인터넷 브라우저를 크롬으로 바꾸면 갑자기 일을 더 잘 하게 되는 것은 물론~ 아니다. ) 결론은 주어진 환경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의심을 갖고 더 나은 방법을 찾는 사람이 결국 업무성과가 더 높다는 의미이다.
일을 하면서나 일상생활에서나 초기환경에 문제가 있을 때 우리는 그냥 “원래 그래왔던 거니까.” 하고 아무 생각 없이 받아들이기 쉽다. 그리고 잘 적응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러기보다 왜 불편한지 문제의 원인을 능동적으로 알아볼 생각을 해야 한다. 그냥 편하게 머무르려는 항상성에 빠져있지 말고, 바꾸는 수고나 어려움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면 그 원인이 무엇인지 분석해야 하고, 문제의 원인을 실제로 액션을 취해 열심히 고쳐내야지만 상황이 바뀔 수 있다. 이 프로세스는 하루 아침에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두고 쭉 이어져야 하는 것이니 그 열정을 오랫동안 쭉 유지시키는 능력인 GRIT이 필요하겠다. 이런 것들이 모여야 나이팅게일의 경우처럼 사망률을 48%에서 2%로 줄이는 획기적인 발전이 가능한 것이다.
그럼 나는 과연 그 능력들이 다 있는 사람일까? “항상성에 빠져있지 않는, 능동적 관심", “날카로운 분석력", “실제로 액션을 취하는 실행력”, 그리고 “열정을 쭉 지속시키는 능력인 GRIT”….. 특히 무엇보다 이 프로세스가 시작될 수 있는 시초인 “바꾸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 능동적인 관심”을 나는 갖고 있을까? 일에서나 내 삶 전체에서 나는 그런 태도를 갖고 있을까?
몇 년 전 읽고 나의 인생 책이 되었던 책, “죽음의 수용소에서 Man’s Search for meanig” 라는 책이 떠오른다. (그림3) 저자인 정신과 의사 빅터 프랭클(그림 4)은 자신이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겪은 극한의 경험과 그 상황에서 사색했던 것들을 책에 적었다. 그리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창시한 로고테라피 Logotherapy 라는 정신치료법을 책에서 소개하였다. 로고테라피는 인간을 “어떤 의미를 성취하는데 주된 관심사가 있는 존재”로 보고, 환자가 삶의 의미를 스스로 깨우치도록 만드는 데에 초점을 맞춘 정신치료법이다.
그림3. “죽음의 수용소에서”
그림 4. 로고테라피의 창시자인 빅터 프랭클
Dr. 빅터 프랭클은 이 의미를 찾는 과정이 어려울 수도 있다고 (아니, 어려울 수밖에 없다고) 설명하였다.
사람들이 내 마음의 안위를 행복이라고 생각하고 거기서 머무르려고 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것은 인생의 목표나 의미가 될 수 없고, 삶의 진정한 의미를 찾는 과정은 오히려 정신적 안위와는 거리가 멀다고 강조하였다. 그래도 우리는 우리의 정신적 성장을 위해서 그런 과정은 반드시 거쳐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정신의학이나 생물학에서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마음의 안정 혹은 항상성(homeostasis)라고들 하는데, Dr. 빅터 프랭클은 이것은 매우 위험한 오해이고,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오히려 정신적인 역동성이라고 이야기한다. 즉, 인간에게 실제로 필요한 것은 긴장이 없이 편안한 상태이거나 긴장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성취해야 할 삶의 의미를 밖으로 불러내고 그 의미를 성취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라는 얘기다. 시련이 오히려 사람을 성장시키니 시련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이다.
불혹이라는 나이를 맞은 나, 이비인후과 의사로서 적당한 커리어를 갖고 있는 나, 안정된 가정을 이루고 큰 어려움 없이 살고 있는 나, 그러다 보니 자꾸만 이 자리에 머무르려고 하는 나에게 (실생활에서나 정신적으로나) 이 책은, 편안함을 행복이란 이름으로 포장하지 말고, 더 큰 의미를 찾는 시도를 하고, 그 의미를 위해 살라는 메시지를 전해 주었다.
결국 나이팅게일의 도전에서나, 빅터 프랭클의 이론에서나 느낀 점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편안하다 생각하며 머무르려 하지 말자. 바꾸는 것을 두려워 말자.
나 자신과 내가 속한 상황에 능동적인 관심을 갖자.
내 삶의 의미를 찾고, 그를 위해 노력하며 살아야 한다.
그래야만 성장할 수 있고, 그 과정에서 느끼는 행복이 진정한 행복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