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경 100km를 넘어서 여행을 다녀본지 상당히 오래된 것 같다. 요즘은 가지기 힘든, 여러 사람이 모이는 자리에서 서로 나눌 수 있는 이야깃거리 중 하나가 여행의 경험이다. 어딘가 다녀왔다고 기억을 남기거나 타인과 공유할 만한 이야기를 하려면 적어도 그곳이 자랑하는 명소를 가보는 것이 제일 좋을 것이다. 필자는 여행을 위해 시간을 잘 내지 않았기 때문에 학회를 빙자하여 다른 도시를 방문할 때, 특히 유럽과 같은 곳을 갈 때면 그곳에서만큼은 학회 말고도 의미있는 기억을 남기고자 투어를 다니곤 했다. 자칫 아쉬울 수 있었던 여행에 활력소가 된 부분을 미술관이나 박물관에서 유명한 그림이나 조각, 건축물을 보면서 찾을 수 있었다. 이러한 작품을 접하고 감탄을 자아내기도 하지만 어떻게 감상해야 하는 것이 좋을지 난감한 적이 적지않았다. 그래서, 현지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도슨트 투어에 참여해서 자세한 설명을 들어보려고 하였다. 상점에 들러서 물건을 구입하게 강권하는 것도 아니고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내용을 재밌게 풀어주는 매력이 있어서 이러한 투어에 참여하려고 학회 가기 전에 부지런히 알아보는 편이다. 매번 가이드 투어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심심하지 않고 스스로 최소한 미술을 감상할 만한 능력을 길러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 미술관련 서적을 몇 해 전부터 읽어오고 있다. 최근까지 인문학 열풍이 불고 있는 세태에 편승하고 싶어하는 마음도 적잖이 작용하였다. 미술관에서 파는 미술전집은 그림이 그려진 시대적 배경에 대해서 잘 서술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 여러가지 책을 찾고 있었다. 최근에 읽은 책 중에 “난생 처음 한번 공부하는 미술이야기”라는 양정무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님의 책이 쉽고 재미있어서 소개하려 한다. 2016년에 처음 발간되었고 경향신문과 조선일보에서 양정무 교수님을 “올해의 저자”로 선정하는 등 나름 유명세를 떨쳤던 책이다.
이 책은 총 6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4년 전쯤 1, 2권을 처음 접하고 후속편이 나오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독자들의 성원에 힘입어 3, 4, 5, 6권이 차례대로 출간되었음을 이번 COVID-19 사태 덕분에 잠시나마 누렸던 여유 있는 시간에 알게 되었다. 서양 미술사를 공부하려면 누구나 한번쯤 접해보았을 “곰브리치 서양미술사”에서는 느껴보지 못한 원시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그리스, 로마 문명과 미술에 대해서 역사적 배경과 더불어 설명하고 있다. 서술 형식이 질문과 답변의 형식이어서 필자와 같은 눈높이에서 접근을 할 수 있어서 친근감이 느껴진다. 그리고 각각의 단원(?) 뒤에는 짧은 요약이 있어서 흡사 오래 전에 보던 학습지를 보는 듯한 느낌이 있어서 친근감이 더 가고 기억도 오래 남는 것 같다. 1권에서는 고등학교 때 시험을 대비하기위해 무작정 외웠던 빗살무늬 토기, 주먹도끼가 굳이 아름답게 만들려는 인류의 예술적 본능을 확인할 수 있게 했다는 점, 서양 예술의 기원이라고 할 수 있는 그리스, 로마의 문명과 미술이 결국 이집트의 미술품의 아류작에서 시작되었으며 예술적 섬세함 또한 감히 따를 수 없다는 점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또한 우리나라의 반구대 암각화를 왜 직접 가보지 못했을까 하는 아쉬움이 다가왔다. 호주에서 발견되는 원시 미술벽화나 조각에서 보이는 알록달록한 모습을 아이들 장난처럼 유치하게 느꼈었지만 이러한 미술이 고갱과 피카소까지 이어지는 원시주의 회화라는 점이 회화나 조각에 국한되었던 미술에 대한 시야를 더 넓혀주었다. 지금까지도 분쟁지역이라서 가보기도 어렵고 쉽게 접하기 어려웠던 페르시아, 메소포타미아 문명에 대해서도 설명하고 있다. 2권에서는 서양회화, 조각이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결국 오리엔트 문명에서 시작되어 전쟁과 교류를 통해서 에게 미술과 그리스 미술로 전달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이야기 해주었다. 여러가지 근거를 들어서 서양미술의 기원이라고 할 수 있는 그리스 또한 동방의 예술에서 시작되었음을 뒷받침하는 여러 증거를 보면서 문명의 발전을 누가 시키는가에 따라서 주도권이 바뀔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하였다. 아마도 현재 우리가 신봉하는 의학, 과학도 시작은 미국을 포함한 서구권에서 시작하여 발전시켰지만 꽃을 피우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미술사에서는 수세기를 거쳐서 변화 발전해왔다고 설명하였지만 현재 우리의 삶에서는 훨씬 더 빠르게 이룰 수 있을 것이다.
3권, 4권, 5권에서는 초기 기독교 문명과 미술, 중세 문명과 미술, 이탈리아 르네상스 문명과 미술에 대해서 각각 설명하고 있다. 유럽 학회 중에 스페인이나 이탈리아를 가서 보게 되는 작품들에 대해서 설명을 하고 있어서 더 친근하게 다가왔다. 그 당시 이러한 그림을 왜 그리게 되었고 그림에 대한 야사를 설명하고 있어서 더 몰입해서 읽었던 것 같다. 현재의 COVID-19이 해결되어 유럽을 갈 기회가 다시 생긴다면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 다시 한 번 읽고 싶은 부분이기도 하다. 1권과 2권에서 시작된 문명이 어떻게 르네상스 문명까지 이어지게 되었는지 이집트의 미술 양식과 중세의 유사성, 그리스, 로마 양식과 르네상스의 유사성을 통해 그 시대의 가치관이 미술과 예술에 어떻게 투영될 수 있는지 알 수 있다. 가장 최근에 나온 6권에서는 초기자본주의와 르네상스의 확산이라는 제목으로 피렌체까지 꽃을 피웠던 자본 계급을 바탕으로 한 르네상스 미술의 발전과 이러한 미술을 바탕으로 어떻게 더 발전해 왔는지에 대해서 기술하고 있다. 선진국과 그렇지 못한 나라와의 차이 중의 하나를 여기서 알 수 있을 것 같다. 예술인들이 창작, 공연 및 전시회를 통해 경제생활을 영위할 수 있을 정도의 풍부한 사회적 뒷받침을 받을 수 있었던 이탈리아의 초기 자본주의 사회를 생각해보면 예술이 꽃을 피우기 위해서 결국 선진국의 경제적 여유가 뒷받침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굳이 예술이 그림, 조각, 음악에 국한 시킬 필요가 없이 “YouTube”와 같은 소통 방식도 일종의 창작 활동이라고 생각한다면 현재 우리는 여유 있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본다. 물론 클래식 음악을 전공하거나 순수 회화를 하는 예술인들이 경제적으로 자립해 나가기 어려운 환경인 것은 부정할 수는 없다.
미술사 책을 보면서 재미있게 알아낸 사실은 한 순간이지만 미술 작품을 감상하면서 느끼는 잔잔한 감동의 여운은 가슴깊이 기억 저편 너머에 남아 있을 것 같다. 무더운 여름 휴가 때 큰 맘먹고 내년 학회를 생각하면서, 가고 싶은 미술관을 검색하면서 이 책을 읽어 간다면 슬기로운 소일거리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에서
길어서 시간 날 때 다시 보게 되는 삼국지 같은 느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