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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NTian January 2021 W-ENTian January 2021

봄,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하는 음악! “베토벤의 커피”, “조희창의 에센셜 클래식”, “클래식이 좋다” 저자
클래식 음악 평론가 조희창

울산의대 서울아산병원 / 이윤세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도 너는 온다”

봄은 역시 희망의 계절이다. 그리스 신화의 판도라 이야기에선 불안하고 심란한 모든 것이 다 빠져나간 판도라의 상자 밑바닥에 남아 있던 것이 바로 희망이었다. 희망 때문에 사람은 살 수 있지만, 또한 이 때문에 가슴이 아린다. 희망은 그리움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부분 봄노래는 희망에 차 있는 동시에 그리움을 담고 있다. 한국 가곡만 봐도 그렇다. 홍난파 작곡, 이은상 작시의 <봄 처녀>, 김동진 작곡, 김동환 작사 <봄이 오면>, 김순애 작곡, 박목월 작사 <4월의 노래>, 김규환 작곡, 박문호 작사 <님이 오시는지>, 박태준 작곡, 이은상 작사 <동무 생각> 같은 곡들이 저마다 봄의 서정과 그리움을 담뿍 담고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애절한 봄노래는 김성태가 1945년에 작곡한 <동심초> 아닐까 생각한다.

“꽃잎은 하염없이 바람에 지고, 만날 길은 아득타~”로 시작하는 이 곡의 가사는 당나라 때의 기생인 설도(薛濤, 당나라 768-832)가 쓴 시 <춘망사>(春望詞)의 세 번째 연을 시인 김억이 옮긴 것이다. 설도는 원래 뼈대 있는 집안의 딸이었는데, 강직한 성품의 아버지가 조정에서 직언을 서슴지 않아 유배당해 죽고, 이후 가세가 기울어 관기가 되었다고 한다. 그녀는 워낙 출중한 예술적 재능과 문장력을 가지고 있어 금세 유명해졌다. <춘망사>는 당시 감찰어사였던 원진과 사랑에 빠졌지만, 신분의 차이와 11세 연하라는 나이 차이까지 겹쳐 헤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쓴 시다. 봄날의 슬픔을 이렇게나 곡진하게 표현할 수가 없다. “꽃은 피는데 함께 볼 수 없고 / 꽃은 지는데 함께 울 수 없네요./ 그리운 당신께 묻고 싶어요 / 꽃 피고 꽃 질 때 어떠하신지요.”로 시작하는 <춘망사>는 3연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風花日將老 바람 맞는 꽃은 날마다 시 들어가는데
佳期猶渺渺 만날 날은 아득하기만 해요
不結同心人 마음 나눈 임과는 맺지 못하고
空結同心草 헛되이 풀 매듭만 짓고 있네요.

봄에 들려오는 국민 클래식들

봄을 표현한 대표적인 클래식 음악을 꼽으라면 역시 비발디 <사계> 중 봄 부분을 꼽아야 할 것 같다. 이른바 ‘국민 클래식 1호’라 불리는 곡이다. 광고 방송에서도 많이 나오고, 전화벨 소리로도 쉽게 들을 수 있고, 지하철역에서도 흘러나오는 유명한 선율이다. 너무나 잘 알려진 곡이어서 오히려 의미가 퇴색된 느낌마저 들지만 사실 이 곡은 음악사에 한 획을 그은 대단한 곡이다.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가 멜로디를 주고받는 협주곡의 묘미와 함께, 마치 풍경이 보이고 새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 표제음악의 선구적 역할도 하고 있다.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5번 ‘봄’도 만만찮은 단골 곡이다. 베토벤은 교향곡 3번 ‘영웅’, 5번 ‘운명’, 9번 ‘합창’ 같이 장엄한 이미지가 강한 곡을 많이 작곡했다. 그러나 한편 그는 평생 뜨거운 사랑을 동경한 사람이었다. 바이올린 소나타 5번 ‘봄’에서는 젊은 시절의 베토벤이 느낀 사랑의 행복감과 고독감을 같이 맛볼 수 있다.
이 외에도 봄을 노래한 명곡은 셀 수없이 많다. 요한 슈트라우스 2세가 남긴 많은 왈츠 곡 중에서도 <봄의 소리> 왈츠는 우리에게 익숙한 곡이다. 꽃샘추위로 봄이 너무 우중충하게 느껴질 때 들으면 기분이 전환된다. 비발디의 <사계> 중 ‘봄’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현대 탱고 음악의 선두주자인 아스토르 피아졸라가 만든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봄>도 추천한다. 그 외에 멘델스존의 <무언가, songs without words> 중에 나오는 <봄의 노래>와 미국 작곡가 아론 코플랜드의 모음곡 <애팔래치아의 봄>, 그리고 시벨리우스의 <봄 노래>도 아주 멋진 곡이다.
이렇게 아름답고 따스한 봄 음악도 있지만, 전혀 다른 정서의 봄을 표현한 곡도 있다.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은 어쩐 일인지 서정적인 느낌이 전혀 없다. 설렘도 없고 그리움도 없다. 오히려 다른 계절보다 역동적이며, 힘이 세다 못해 폭력적이기까지 하다. 이 곡은 봄의 부활을 환영하기 위해 처녀를 제물로 바치는 야만적인 이교도의 제의를 표현했다. 내용도 내용 이려니와 음악 자체가 당시로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충격적인 리듬과 불협화음으로 가득했다. 안무가인 니진스키가 맡은 무용 역시 몽환적이고 도발적이었다. 초연 당시엔 청중 사이에서 격렬한 야유와 함성이 터져 나왔고 경찰까지 출동하는 일까지 벌어진 문제작이다. 그러나 첫 공연의 소동은 화제를 낳고 화제는 인기로 이어져 다음 해에 스트라빈스키가 다시 이 곡을 연주할 때는 야유가 박수로 바뀌어 있었다. 그 이후 지금까지 <봄의 제전>은 클래식 역사의 한 획을 그은 음악으로 사랑받고 있다.
이렇게나 많은 봄노래가 있다. 꽃 피고 새가 우는 고전적인 봄을 노래하든, 원시적인 봄에서 뛰어놀든, 어떤 식으로든 봄을 느끼고, 봄의 힘을 믿어보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경험을 통해, 아무리 추운 겨울이라도 결국 지나가고 마침내 봄이 온다는 것을 알고 있다. 지금은 비록 코로나19로 인해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지만, 이 또한 머잖아 회복되는 봄을 맞으리라 믿는다. 슈베르트가 남긴 가곡 <봄의 신앙>은 이렇게 끝난다.
자, 고단한 마음이여, 고통을 접어두게나. 모든 것은 변하나니, 달라지고 말 것이니...”(Nun, armes Herz, vergiß der Qual. Nun muß sich alles, alles wenden)

조희창이 추천하는 봄 음악 명곡 5선

  • 비발디 <사계> 편곡
    비발디의 <사계> 를 막스 리히터라는 독일 작곡가가 자기 방식으로 채색해놓은 연주가 있다. 그는 아예 ‘재작곡’(recomposed)이란 용어를 사용했는데, 비발디의 사계의 영화음악 버전 같은 느낌이 든다. 바이올리니스트 다니엘 호프가 연주해서 유럽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5번 <봄>
    베토벤의 봄은 정경화의 리사이틀 실황이 유튜브에 올라와 있다. 특히 2악장은 그야말로 봄날의 햇살 아래서 느끼는 애상이라 할 수 있다. 일찍이 청마 유치환 시인이 봄의 느낌을 두고 “몸살처럼 오스라드는구나!”라는 표현을 썼는데 이 곡이 바로 그런 느낌이다.
  • 스트라빈스키 <봄의 제전>
    <봄의 제전> 은 모든 안무가가 한 번쯤 표현해보고 싶어 하는 작품이다. 1913년 초연 때의 니진스키 안무 버전을 마린스키 발레단과 게르기예프의 지휘로 재현해놓은 영상이 좋다. 그 외에 피나 바우쉬, 모리스 베자르, 안줄랭 프렐조카주 등 수많은 화제작이 있으니 비교하면서 감상하기 바란다.
  • 비발디 <사계> 편곡
    비발디의 <사계>를 막스 리히터라는 독일 작곡가가 자기 방식으로 채색해놓은 연주가 있다. 그는 아예 ‘재작곡’(recomposed)이란 용어를 사용했는데, 비발디의 사계의 영화음악 버전 같은 느낌이 든다. 바이올리니스트 다니엘 호프가 연주해서 유럽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 한국 단가 <사철가>
    단가 중에서 <사철가>는 봄날에 듣는 것이 가장 맛깔스럽다. “이 산 저 산 꽃이 피니 분명코 봄이구나. / 봄은 찾아왔건마는 세상사 쓸쓸하더라. / 나도 이제는 청춘이더니 오늘날 백발 한심하구나. / 내 청춘도 날 버리고 속절없이 가버렸으니 / 왔다 갈 줄 아는 봄을 반겨 한들 쓸 데가 있나...” 특히 지산 김형옥 선생의 소리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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