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은 일상을 떠나 어디론가 여행을 가는 상상을 하곤 한다. 여행을 가기 위해 일을 하고, 돈을 모으고, 계획을 세우고, 숙소와 교통편 예약을 하고, 출발을 하는 그 순간까지 설레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버틴다. 하지만 어느날 갑자기 훅 찾아온 전염병 COVID-19로 인해 우리는 하루종일 마스크를 쓰고 지내고, 몇 달째 퇴근 후엔 집콕 생활을 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때때로 무력감이 찾아오기도 하고 유독 주말이 길게 느껴지는 요즈음, 마스크를 쓰지 않고서도 가능한 “영화로 떠나는 세계여행”을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자세로 떠나보자.
시나리오 작가인 ‘길 펜더(오웬 윌슨)’는 예비 장인어른의 사업 확장을 위한 파리 출장에 따라가 약혼자 ‘이네즈(레이첼 맥아담스)’와 함께 파리를 즐긴다. 파리의 예술적 풍취에 빠진 길과 달리 쇼핑에 열을 올리던 이네즈는 우연히 식당에서 지인인 ‘폴(마이클 쉰)’과 그의 아내를 만나게 되고, 그 뒤로 이네즈는 모든 일정을 폴 부부와 함께 하려고 한다. 와인 시음회에 참석한 뒤 폴 부부와 함께 춤을 추러 클럽으로 간 이네즈와 헤어져 홀로 파리의 밤거리를 배회하던 길은 종소리와 함께 홀연히 나타난 올드카에 올라타게 되고, 거기서 젤다와 스콧 피츠제럴드 부부를 만난다. 그들을 따라간 파티에서 콜 포터가 노래를 부르고, 선술집에서는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술을 마시고 있다. 그 날 이후 길은 낮에는 이네즈와 폴 커플과 함께 파리의 여러 명소를 탐방하는 한편, 매일 밤 비현실적인 밤 나들이를 계속하게 된다. 1920년대의 파리로 시간여행을 떠나 헤밍웨이, 피카소 등 당대 최고의 예술가들을 만나고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살아가는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주인공을 따라가다 보면 판테온, 노트르담 대성당, 오랑주리 미술관, 생 투앙 벼룩시장, 센 강 등 파리의 명소가 등장하면서 과거와 현재의 파리를 모두 볼 수 있다.
‘8월의 크리스마스’, ‘봄날은 간다’로 유명한 허진호 감독의 작품인 호우시절 또한 예전 작품들처럼 잔잔하고 조용하게 흘러가지만 심금을 깊게 울리는 작품이다. 동하(정우성)는 문학을 전공했고 시인을 꿈꾸었지만 지금은 건설기계 회사의 팀장으로 일하고 있다. 중국 출장 첫날, 우연히 두보초당에서 과거 미국 유학시절 사랑했던 메이(고원원)과 우연히 재회하게 되고, 시간의 흐름을 거슬러 예전의 기억들을 퍼즐 맞추듯이 떠올린다. 그들은 서로에게 품었던 감정들을 부인하기도 하고 서로의 기억들을 불신하기도 하지만, 사실은 애써 감춰두었던 마음을 솔직히 꺼내놓을 용기가 없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애틋한 감정들이 하나 둘 되살아나기 시작하고, 자신들의 사랑이 결코 조작된 기억이 아닌 과거에 분명 존재했던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과거에 떠나보낼 수 밖에 없던 추억이 지금의 사랑이 될 수 있길 염원한다. 이 영화의 제목인 ‘호우시절’은 두보의 시 ‘춘야희우(春夜喜雨)’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호우시절이라는 말은 좋은 때에 비가 내린다는 걸까, 비가 와서 좋은 때라는 걸까. 극 중에서 메이가 동하에게 묻는다. “봄이 오기 때문에 꽃이 피는 걸까, 꽃이 피어서 봄이 오는 걸까.” 삼국시대에는 촉나라의 수도였으며 문화 교역의 중심지로 2,300년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도시이며,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문화재들 뿐만 아니라 귀여운 팬더도 만날 수 있는 도시인 청두를 영화에서 만나보자.
싱어송라이터인 ‘그레타(키이라 나이틀리)’는 스타가 된 남자친구 ‘데이브(애덤 리바인)’를 따라서 뉴욕으로 오게 된다. 그러나 행복도 잠시, 오랜 연인이자 음악 파트너로서 함께 노래를 만들고 부르는 것이 좋았던 그레타와 달리 스타가 된 데이브의 마음은 변해버린다. 과거 스타 음반 프로듀서였지만 이제는 해고된 ‘댄(마크 러팔로)’은 뮤직바에서 그레타의 자작곡을 듣게 되고 아직 녹슬지 않은 촉으로 음반 제작을 제안한다. 댄은 그레타를 회사로 데려가 음반을 제작하려 하지만 거절당하고, 결국 둘은 뉴욕 곳곳에서 음악을 녹음해 앨범을 만들기로 한다. 당장이라도 이어폰을 끼고 뉴욕의 거리를 걷고 싶게 만드는 영화 ‘비긴 어게인’은 길을 잃은 별들처럼 상처받은 두 영혼이 함께 음악을 하며 다시 삶의 균형을 찾아가고, 앨범의 완성과 함께 다시 한 번 시작할 힘을 얻게 되는 것을 보여준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타임스퀘어, 센트럴파크, 워싱턴스퀘어 등 뉴욕의 곳곳을 감상할 수 있으며, 뉴욕 지하철과 골목길의 생생한 소리도 담아 눈과 귀로 뉴욕을 즐길 수 있다.
피렌체에서 유화 복원사 과정을 수련중인 ‘준세이(타케노우치 유타카)’는 우연히 오래 전 헤어진 연인인 ‘아오이(진혜림)’의 소식을 듣게 된다. 치골리의 작품 복원을 맡은 준세이는 아오이를 찾아 밀라노로 향하지만 그녀에겐 이미 새로운 연인이 있었고, 냉정하게 변해버린 그녀의 마음만을 확인하게 된다. 복원 작업 중이던 치골리의 작품이 누군가에게 의해 훼손되는 사건이 발생해 공방이 문을 닫게 되면서 일본으로 돌아온 준세이는 자신이 몰랐던 아오이에 대한 비밀과 오해를 풀게 되고, 공방이 다시 문을 열게 되자 이탈리아로 건너간다. 준세이는 ‘아오이의 서른 살 생일을 함께 하자’는 과거의 약속을 떠올리며 혹시나 하는 기대로 홀로 피렌체의 두오모 성당으로 향했고, 기적처럼 아오이와 재회를 하게 된다. 소설가 ‘츠지 히토나리’와 ‘에쿠니 가오리’가 함께 집필한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두오모의 지붕으로 이어지는 463개의 계단을 올라 우연히 재회하는 신이 인상깊으며, 영화 속 두 주인공이 마주보고 서 있는 산티시마 안눈치아타 광장, 헤어짐과 만남을 반복했던 피렌체 중앙역, 피렌체의 젖줄인 아르노 강을 가로지르는 베키오 다리 등 피렌체를 대표하는 장소들을 영화 속에서 만날 수 있다.
돈키호테에게 ‘로시난테’가 있다면, 그들에게는 ‘포데로사’가 있다. 비록 기름은 새고, 브레이크는 말을 안듣고, 가끔 진창에 처박히는 걸 좋아하고, 그들을 내팽개치는 고약한 성미의 낡은 중고 오토바이긴 하지만. 스물 셋의 의대생인 ‘에르네스토 게바라(가엘 가르시아 베르날)’와 이제 서른을 앞둔 에르네스토의 절친인 생화학박사 ‘알베르토 그라나도(로드리고 드 라 세르나)’는 어느 날 의기투합하여 낡은 오토바이를 타고 4개월간 중남미를 종단하는 계획을 세운다. 아르헨티나에서 칠레를 거쳐 페루, 콜롬비아, 베네수엘라 등 10,000km에 이르는 여정은 결국 계획된 4개월을 넘겨 8개월 동안의 여행이 되었다. 쿠바의 혁명가 체 게바라의 젊었던 시절 여행을 담은 이 영화는 그가 혁명가가 되기 이전의 시절을 보여준다. 낡은 오토바이는 끊임없이 말썽을 부리고, 텐트는 태풍에 날아가고, 천식 발작도 경험하지만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여러 에피소드를 겪으면서 라틴아메리카를 질주하던 그들은 점차 자신들의 현실에 눈뜨게 된다. 불의와 거짓을 용납하지 않았던 젊고 순수한 체 게바라의 모습을 만나는 즐거움도 있지만, 흥겹고 다채로운 배경음악과 함께 펼쳐지는 칠레의 광산, 페루의 이퀴토스와 잉카문명 최후의 도시 마추픽추,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 아이레스와 아따까마 사막, 발파라이소 등의 감격스러운 풍광은 마치 남미 자연 풍경의 종합선물세트 같다. 이 길을 보라. 그들처럼 달려가고 싶지 않은가.
순백의 설원. 내리는 눈보다 더 흰 피부를 가진 여자가 검정색 코트를 입고 누워있다. 첫 장면이 이렇게 시작하는 이 영화는 안 본 사람은 있어도 “오겡끼데스까(お元気ですか)?”라는 대사를 안들어 본 사람은 없을 정도로 엄청난 인기와 유명세를 탔던 러브레터이다. 우리나라에서는 1999년에 개봉되었으며 그 후로도 꾸준히 재개봉되고 있는 영화로, 2년 전 산악 등반 중 조난사고로 죽은 남자친구 ‘후지이 이츠키’를 잊지 못하는 여주인공 ‘와타나베 히로코(나카야마 미호)’는 남자친구에게 편지를 쓰다가 같은 이름을 가진 여자 ‘후지이 이츠키(나카야마 미호)’를 알게 되고, 그녀와 편지를 주고받게 된다. 그렇게 두 사람이 첫사랑의 비밀을 더듬어가는 따뜻하고 뭉클한 내용의 이 영화는 전반적으로 일본 훗카이도의 항구도시인 오타루에서 촬영이 이루어졌다. 일본 사람들 사이에서도 로망으로 손꼽히는 훗카이도는 눈이 많이 내려 겨울 여행지로도 사랑받지만, 여름 또한 선선하고 쾌적한 날씨가 이어져 여름 휴양지로도 인기가 있다. 오타루는 본래 훗카이도의 현관 역할을 해오던 곳으로, 과거에는 수없이 드나들던 나룻배들로 북적였으며 이후 산업이 쇠퇴하자 운하 양옆에 즐비한 창고와 공장을 레스토랑, 공예점, 카페 등으로 개조하면서 점차 관광도시로 변모했다. 한적한 동네 분위기와 낭만적인 풍경, 익숙한 듯 이국적이고 고즈넉한 풍경이 있는 오타루로 영화와 함께 떠나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