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2020년 2월, ARO 학회에 참석하기 위해 샌프란시스코행 비행기를 탔습니다. 발표도 있었지만, 더 중요한 이유는 스탠포드 대학 이비인후과 안면신경센터의 Pepper 교수님을 만나는 것이었습니다. 교수님은 안면신경 수술의 리더 중 한 명일 뿐만 아니라, 안면신경 재생분야에서도 잘 알려져 있는 기초의학자입니다. 스탠포드 안면신경 센터장으로서 이비인후과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긴 하지만, 이전에 방문교수를 받은 적이 없기에 어떻게 연락을 해야 할 지 막막했습니다. 조금은 무례하지만, 방문교수로서 제가 하고 싶은 것과 도와드릴 수 있는 것을 정리해서 메일을 드렸습니다. 다행히 금방 답장을 주셨고, 흔쾌히 인터뷰를 제안해 주셔서 ARO 학회 기간 중 연구실로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스탠포드병원에서 만난 교수님은 이름과 달리 아주 순한 맛으로 친절하게 대해 주셨고, 잠깐 동안의 인터뷰 후 1년 동안의 방문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연수를 허락받은 즐거운 마음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중국 우한에서 시작한 신종독감이 빠르게 유행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당시는 꿈에도 몰랐지요. 코로나라는 큰 벽이 저를 가로막게 될 줄은. 이후 코로나 사태가 빠르게 악화되어 미국과 한국 모두 해외연수를 진행하기 어렵게 되자, 기약없이 1년을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2021년 5월, 코로나 상황이 잠깐 진정되자 병원장님께서 해외연수를 다시 준비해 보겠냐고 연락을 주셨습니다. 아마 “다음에 가겠습니다” 하실 줄 아셨겠지만, 대뜸 “잘 다녀오겠습니다” 를 외치고 급하게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앗! 그런데 이게 왠일인가요? 스탠포드 대학이 코로나사태로 연수프로그램을 아직 재개하지 않았다는 비통한 소식이 날아들었습니다. 전공의 때부터 이어진 불운 (당직 시 응급기관절개술 다수, 병동 환자 경동맥 파열 다수 등등) 이 나를 또 괴롭히는 것만 같았습니다. 하지만 이미 환송회를 여기저기서 해버린 터라, 포기할 수는 없었습니다. 마치 전공의 1년차 때, 다음날 수술이 잡혀있는 두경부암 환자의 수술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은 것을 밤에 깨달은 그런 마음이라고 할까요? 배수진을 치고, 한 달 동안 생면부지의 스탠포드 비서와 Pepper 교수님을 재촉해서 9월에 연수를 시작하는 것으로 대학으로부터 허가를 받았습니다.
스탠포드는 따뜻한 햇살과 여유로운 분위기로 가득한 아름다운 대학입니다. 하지만, 그 속의 치열한 분위기는 노벨상 수상자를 다수 보유한 명문대의 저력을 느끼게 합니다. 출근 첫날부터 어떤 일을 시킬지 걱정하는 의욕 넘치는 교수님을 진정시키며, 1년동안의 연수 계획에 대해 상의했습니다. 그리하여, 처음 6개월은 기초연구, 후반 6개월은 외래와 수술에 초점을 두고 진행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교수님과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깜짝 놀란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저는 7년동안 내림프수종 관련 국책 연구를 하였는데, 그 분야에서 최고였던 워싱턴대학의 한 교수님께 많은 영감을 받았습니다. 특히, 그 교수님 랩의 이충헌 박사님, Hartsock 연구원과 서로의 실험기법을 공유하기도 했는데, 그 교수님의 이름은 바로 “Salt” 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Pepper” 교수님의 랩에서 일하게 되다니! 정말 운명 같은 “Salt & Pepper” 조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진1)
제가 경험한 Pepper 교수님은 주변 모두에게 친절한 분입니다. 세 아이의 아버지이며 스탠포드 교수이자, 학회지 편집장으로 항상 바쁘지만, 환자, 간호사, 병원직원 모두에게 다정하고, 아무리 바빠도 귀 기울여 얘기를 들어주었습니다. 돌아오기 직전 단둘이 술잔을 기울이면서, 그런 모습이 제게는 매우 놀라웠으며, 제가 더 좋은 의사이자 나은 사람이 될 수 있게 영감을 주셨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러자, 사실은 자기도 답답할 때가 많은데, 속으로 많이 참고 친절하려 노력하고 있다고 웃으셨습니다. 저를 떠올리면서 한 이야기가 아니었기를 바래봅니다.
저희 랩에는 두 명의 박사 후 연구원과 6명의 학생이 안면신경재생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코로나사태로 박사 후 연구원인 Chrisa 와 Lily 만이 남아있어서, 매우 거친 손인 제가 직접 세포배양, qPCR, 동물수술 등을 해야 했습니다. 아마 랩 역사상 가장 큰 위기 였으리라 생각합니다. 다행히 오프라인 수업이 시작되면서, 학부생들이 많은 업무를 대신해 주었습니다.
매주 랩미팅에서 결과에 대해 토의하고, 새로운 연구에 대해 격없이 소통하는 성숙한 문화는 본받을 만합니다. 감사하게도 스탠포드 학생들을 대상으로 “Facial palsy basics” 강의 기회를 주셔서, 시골 출신의 저에게 평생 자랑할만한 안주 거리가 생겼습니다. 그 때 어눌한 발음의 한국 방문교수의 강의를 듣느라 힘들었을 학생들에게, 이 자리를 빌려 심심한 사과를 전합니다.
후반기에는 외래와 수술실을 주로 참관했습니다. 감사하게도 오래된 안면마비 환자를 위한 여러가지 수술들을 참관할 수 있었습니다. 스탠포드 수술실은 매우 일찍부터 북적입니다. 첫 수술이 7시반부터 시작하는데, 입원비가 매우 비싼 탓에 많은 환자들이 당일 새벽에 입원하여 수술을 준비하기 때문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우리나라와 달리 수술방 인원 모두가 시끄럽게 일합니다. 의사, 간호사 모두가 반갑게 격이 없이 인사하고 대화하며, 시끄러운 힙합 음악을 틀어 놓기도 합니다. 다소 정신없지만, 모두가 전문가로서 자기 일을 책임지고, 서로에게 거리낌없이 소통하는 것이 그들의 문화인 듯합니다. 외래에서는 매달 첫 주 금요일에 안면신경 클리닉이 열렸는데, 수술 전후 다양한 환자들을 모아서 볼 수 있었습니다. 환자들에게 참관에 대해 동의를 구해야 했지만, 모두가 흔쾌히 허락해 주셔서 진단, 보톡스 치료 및 향후 수술계획까지 진료하면서 바로 논의할 수 있었습니다. 제게는 종합선물세트와 같은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너무 놀다 온 것이 티 날까 봐 병원 생활을 구구절절 이야기 드렸지만, 사실 해외연수는 제게 재충전의 시간이자, 가족들과 함께 하는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Palo Alto 지역의 관악밴드인 Peninsula Symphony Orchestra에서 알토색소폰으로 두번의 연주회를 같이 하였습니다. 음악감독인 Mr. Henderson의 재즈필 충만한 지휘도 좋았지만, 같은 파트였던 Tom 과 Christina 와 매주 수다를 떨었던 것이 영어공부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사진2)
그리고 바쁜 와중에 잠깐 시간을 내어(?) 가족들과 골프도 쳤는데, 운 좋게도 2022 스탠포드 골프대회에 참가할 수 있었습니다. 이는 매년 스탠포드 골프클럽 회원 및 대학 교직원을 대상으로 하는 친선대회인데, 7위라는 준수한 성적을 거두어 가문의 영광이었습니다. (사진3)
또한, 가족과 함께 여러 국립공원을 방문하였는데, 그 중 그랜드캐년을 포함한 그랜드써클 여행이 가장 감동적이어서, 앞으로도 두고두고 생각이 날 것 같습니다. (사진 4) 또한, 10살에 미국생활을 경험한 조기유학생 아들을 보유하게 된 것도 큰 소득입니다. 다만, 귀국해서 본 첫 영어학원 시험에서, 한국 친구들보다 점수가 낮은 이유는 아직도 미스터리입니다.
귀국한지 석 달째, 밀려드는 환자분들과 학회모임으로 벌써 체력적으로는 힘에 부치지만, 토종 한국인 답게 모든 것이 익숙하고 안전한 이 곳이 마음 편하기도 합니다. 꿈 같은 지난 1년의 즐거웠던 기억과 조금 늘었던 영어실력은 벌써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있지만, 스탠포드 교정의 활기찬 에너지와 저를 따뜻하게 대해준 사람들의 친절한 매너는 오랫동안 제 영혼에 흔적을 남길 것 같습니다.
특히, 제 인생의 풍미를 고급 스테이크처럼 높여준 “소금과 후추” 선생님들 덕분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