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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NTian September 2022 W-ENTian September 2022

조선시대 임금님 100배 즐기기 노원 을지대병원 안용휘

세종대왕께서 말씀하시길 “그대의 자질은 아름답다. 그런 자질을 가지고 아무 것도 하지 않겠다고 해도 내 뭐라 할 수 없지만, 그대가 만약 온 마음과 힘을 다해 노력한다면 무슨 일인들 해내지 못하겠는가? (上曰 知汝質美 不爲則已 若用心力 何事不能也)” – 세종실록 90권, 세종 22년 (1440년)

나는 어려서부터 역사를 매우 좋아했다. 한국사, 중국사, 세계사 가리지 않고 두루 즐겨 관련 서적을 읽어왔고, 특히 우리나라 삼국시대 역사, 중국 삼국지, 로마사, 서양의학 관련 역사는 지금도 관심이 매우 높다. 유튜브에서 많은 역사 관련 채널들로 다양한 관점에서의 재해석에 감탄하면서도 내 머리로 생각하는 역사에 대해 회식 자리에서 종종 이야기 꽃을 피우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시대 역사에 대해 불편하지 않게 생각했던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임진왜란이나 병자호란 때 조선이라는 나라가 망했어야 그 이후의 붕당정치, 세도정치, 구한말 폐습, 일제시대로 이어지는 역사가 좀더 나아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중고등학생 때부터 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던 와중에 자신의 형제들과 정도전을 죽이고 왕이 되어 독재의 이미지가 강한 태종 이방원에 대한 책을 읽다가 전면적으로 태종을 옹호하는 작가의 논조에 동감하면서 조선시대의 왕들을 평면적인 인물이 아닌 입체적인 여러 모습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책 “태종, 조선의 길을 열다”에서는 조선왕조 실록을 근거로 태종의 말과 행동을 서술하고 있고, 이를 바탕으로 정도전의 신권 정치가 아닌 이방원의 왕권 정치를 지지하고 있다. 내가 이비인후과 논문을 읽을 때도 3번 정독하면서 첫번째는 논문 저자의 주장을 100% 신뢰하면서 읽고, 두번째는 논문의 내용에 대한 반대 세력으로서 허점을 염두 해두고 읽으며, 세번째는 중용(中庸)의 입장으로 논문의 결과와 결론에 대해 어느 정도 찬성 또는 반대할지 결정하면서 읽는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기 때문에 당연히 승자의 입장에서 잘한 것은 최고로 올리고, 잘못한 것은 최대한 감춘다. 이에 대해 조선왕조 실록을 기록한 사관들은 나름대로의 원칙에 입각하여 저술하였고, 그 무서운 태종의 실수와 세종의 아버지에 대한 애정을 태종 및 세종 실록에 올린 것을 보며 조선에 대한 내 관점을 넓힐 수 있었다. 사진으로 제시하는 책 3권은 뒷광고를 받은 것이 아니라 “내돈 내산”(내 돈 내고 내가 산 것) 조선시대 임금님 관련 서적들 중 개인적으로 추천하는 것들이다. 특히, 아들만 셋을 키우는 나에게 “王의 아들”이라는 책은 삼강오륜 중에서 부위자강(父爲子綱), 부자유친(父子有親)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게 해주었다.

태종 이방원은 고려시대 과거 급제자로서 문과에도 소질이 있었고, 군사적으로도 식견이 있으면서 동시에 활 사냥을 즐겼다. 그런데 태종 4년 사냥하던 이방원이 말에서 떨어졌고, 이를 민망하게 여긴 태종은 주변을 돌아보며 “이 일을 사관(史官)이 알지 못하게 하라”고 명을 내린다. 하지만 태종 실록에는 왕의 낙마(落馬)에 대한 내용 뿐만 아니라 태종이 이를 감추라고 지시한 내용까지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다. 기록하지 하지 말라고 말한 왕의 말까지 기록하는 사관의 입장을 생각해보면 원칙을 중시하는 사관의 고지식함에 저절로 웃음이 난다. 왕의 신하인 사관이 어떻게 왕의 명령까지 거부하고 기록을 남길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은 태종의 아들 세종 때 실록을 보면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세종 20년에 세종은 아버지인 태종이 사람들을 많이 죽였기 때문에 폭군으로 묘사되었을까 염려되어 태종 실록을 열람하고 싶다는 뜻을 신하들에게 밝혔다. 그러나 당시 영의정이었던 황희 정승은 “불가하다”고 엄하게 반대했다. 왕이 실록을 보면 “후세 사람들이 그른 일을 옳게 꾸미고, 단점을 장점으로 바꾸며, 사관은 기록에 두려움을 느껴 결국 후손이 기록을 믿을 수 없다”는 논리였다. 세종은 결국 실록 열람을 포기했다는 내용이 세종 실록에 기록되어 있다. 나는 속으로 “왕은 왕이요, 사관은 사관이요, 정승은 정승이었군” 하면서 재미있게 읽었다.

조선시대 임금님의 이야기들은 영화나 TV 드라마에서도 곧잘 볼 수 있다. 그 중에서도 내게 흥미로웠던 영화는 임진왜란 때의 세자이면서 인조 반정으로 물러나서 결국 병자호란으로 이어지는 역사의 사이에 존재하는 광해군을 배우 이병헌이 코믹하면서도 진지하게 연기한 “광해, 왕이 된 남자”였다. 왕의 첫째 아들인 장자(長字)였지만 왕비의 적자(嫡子)이 아닌 후궁의 소생인 이유로, 세자가 되는 과정부터 퇴위할 때까지 명군(明君)이나 암군(暗君)이냐 논란이 있는 광해군을 가상의 픽션으로 잘 풀어낸 영화라고 생각한다. 역사적으로 광해군은 대동법(특산물을 쌀로 통일하여 바치게 한 납세 제도)을 실시하여 백성들의 어려움을 줄여주었고, 명나라와 청나라 사이에서 중립 외교를 시행하여 뛰어난 외교 안목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왕위에 오르는 과정에서 갈등을 빚었던 배다른 동생이자 선조의 적자(嫡子)인 만 8세의 영창대군을 결국 처형하고, 그의 어머니인 인목대비를 유폐하여 폐모살제(廢母殺第)의 명분으로 인조 반정이 일어난다. 당파 싸움에서 정치의 권력을 잡고자 했던 서인 세력의 야욕이 임진왜란 때 조선을 살려준 명나라에 대한 신하들의 사대 정신과 맞물려 안타깝게도 광해군은 축출되었다. 참고로 한의사 허준이 동의보감을 최종 출판한 시기가 광해군 2년(1610년)이다. 또한 개인적으로는 세조의 계유정난을 관상과 결부하여 스토리를 전개해 나간 영화 “관상”(송강호, 이정재 주연)과 한글 창제 및 반포의 과정을 유추하여 제작한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한석규, 신세경 주연)을 감명 깊게 보았다. 세종대왕인 한석규가 대신들 앞에서 괴벽서에 대한 답변으로 욕설로 “지랄하고 자빠졌네”라고 맛깔나게 말하는 장면은 지금 다시 봐도 참 웃길 따름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QUSiq3NBrx0&t=41s

유튜브에 조선의 왕들에 대한 다양하고 재미있는 동영상들이 엄청나게 업로드 되고 있다. 우연히 알게 된 “황현필 한국사”는 역사 교육학을 전공한 강사의 강연 스타일이 시원시원해서 자주 보게 되는 채널이다. 뚜렷한 정치 색깔을 적당히 봐주면서 들어보면 역사에 대한 강사의 열정과 분석력만큼은 완전히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다. 비판적인 어조로 구한말 고종과 민비의 악랄함(?)을 적나라하게 알려주었고, 이순신 장군에 대한 애정으로 임진왜란 영상을 수십 개 올리다가 최근에 잘 정리하여 “이순신의 바다”라는 책으로 출간하였다. 역사서를 바탕으로 한 강사의 고증은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고개를 끄덕거리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민족주의 성향이 강해서 근현대사 영상은 솔직히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지만, 우리 역사 상 최악의 인물 5인으로 역사의 흐름에 악영향의 기준에서 연남생(연개소문의 아들), 원균, 민비, 이승만, 김일성으로 제시하면서 고구려 멸망, 임진왜란 대패, 구한말의 부정 부패, 6.25 전쟁과 남북 분단을 그 근거로 밝혀 대중적인 정보와는 사뭇 다른 새로운 시각을 보여주었다. 솔직히 나는 민비보다는 고종이, 원균보다는 선조가 훨씬 더 원망스럽다. 또다른 채널 “청화수”는 역사 문헌의 내용이 부족하여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을 자신의 추론을 더하여 하나의 가설을 제시하는 방식의 동영상들이 주를 이룬다. 조선시대보다는 삼국시대에 대한 합리적 상상이 더 다채롭고 흥미 진진하다.

조선의 역사는 그 시대의 정신인 성리학을 바탕으로 왕들의 이야기가 중점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대화라고 한다면 우리는 각자의 시대를 살아가는 주인공으로서 또 한 명의 왕이라고도 볼 수 있다. 조선의 임금님들 이야기를 즐겨 보고 들으면서 나는 내 자신을 내 가정의 왕으로서 자아도취에 빠지곤 한다. “몸과 마음을 닦아 수양하고 집안을 가지런하게 하며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평한다”는 의미의 수신 제가(修身 齊家), 치국 평천하(治國 平天下)를 내가 왕이 되었다고 가정하여, 나 자신과 가정의 평화를 잘 지키고 병원과 의국의 일상이 잘 돌아가게 유지하며, 나아가 나에겐 천하와 마찬가지인 대한이비인후과학회에서 즐겁게 지내는 것을 추구하고 있다. 물론 나만 왕인 것은 아니고, 모든 학회 회원분들이 왕에 해당되며, 조선시대 임금님의 발자취들을 돌아보면서 나의 현실에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길을 모색해본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회 이사장님을 이비인후과 대제국의 (임기가 2년인) 황제 폐하로 모셔야 될 지도 모르겠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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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imming
너무 재밌게 읽었습니다. 멋져요~~
(2022-09-16 17:04) 수정 삭제 답글
강안젤라
대단해요.항상 안용휘교수님을 응원합니다. 화이팅!~하세요.
(2022-09-16 19:11) 수정 삭제 답글
오인순
안용휘교수님 조선왕조를 꿰고 계시네요대단하십니다 나중에 황현필 한국사도 들어봐야겠네요 언제나 화이팅
(2022-09-17 20:24) 수정 삭제 답글
현양선데레사
너무나 멋지시네요
(2022-09-17 20:38) 수정 삭제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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