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인하대병원 이비인후과 임상강사 박만준입니다. 이렇게 우리 학회 내 많은 선생님들께서 관심을 가지고 구독하시는 대한이비인후과학회 웹진에 짧게나마 글을 기고할 수 있게 되어서 영광스럽게 생각하며, 기고할 기회를 주신 인하대병원 이비인후과 최정석 교수님께 감사의 말씀을 이 자리를 통하여 다시 한번 올립니다.
제가 오늘 소개해드릴 내용은, Covid-19 pandemic 이후 거리두기 및 여러 사회활동이 축소, 제한되면서 점차 가족 단위 및 각 가정 내에서 할 수 있는 여가 생활의 하나로 떠오르고 있는 홈 베이킹에 대한 내용입니다. 많은 선생님들께서도 요즈음 홈 베이킹 및 홈 쿠킹이 유행으로 자리잡은 만큼, 자녀분들 및 가족들과 함께 여가 시간을 활용하여 도전해 보신다면 정말 좋은 여가 활동일 것 같아서 비록 부족하지만 짧은 제 경험을 공유드려보고자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제가 이비인후과 전문의를 취득하고 군의관으로서 복무를 시작할 때, 군의관 복무 3년 중 꼭 목표하고자 한 버킷리스트 중 하나가 바로 제과제빵을 취미를 넘어서 보다 전문적인 수준까지 해 보고싶다는 목표가 있었습니다. 제가 제과제빵에 관심을 가지게 된 동기를 먼저 말씀드리자면, 저는 초등학교 시절 잠시나마 해외에 거주하며 international school에 4년 재학한 경험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 주말에 play-date 라고 하여 학교에서 사귀게 된 친구들의 집에 번갈아서 놀러가는 것으로, 각기 다른 문화를 가진 친구들의 집에 방문하여 그 친구가 가진 문화, 음식, 놀이 등을 경험한 기억은 매우 인상깊게 남아 있습니다. 이중 미국인 친구의 집에 방문 할 때 마다 그 친구의 가족들과 함께 쿠키를 함께 만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당시 쿠키 하면 한국에서 먹던 "버터링" 이나 "상투과자"같은 쿠키가 전부였던 저에게, (그런 딱딱한 쿠키는 지금도 저는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아주 달콤한 향기를 진동시키면서 갓 오븐에서 꺼낸, 한입 베어물면 겉은 바삭! 하면서 속은 쫀득! 한 미국식 초콜렛 칩 쿠키는 지금도 처음 맛볼 때 그 황홀함이 생생할 정도로 그야말로 신세계였습니다. 쿠키 외에도 모든 미국 가정주부라면 기본으로 할 수 있는 (우리 나라 가정에 비유하자면 가정집에서 흔히들 요리해 먹는, 집집마다 고유의 레시피가 있는 파전이나 계란말이 같은 느낌이지 않을까 합니다) 팬케이크, 컵케이크, 브라우니, 생일 케이크 (그 두껍고 이가 시릴 정도로 달콤한 프로스팅 크림은 왜 우리나라에는 없을까! 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등 여러 미국 대표 간식거리를 만들면서, 단순히 맛있어서 그렇다기 보다는 내가 직접 무언가를 만들고 그것이 이렇게 아름다운 맛으로 느껴진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나도 즐겁고 행복한 기억 중 하나로 남아 있습니다. 이후 한국으로 귀국 후 중고등학교 학업을 하면서, 왜 우리나라에서는 그러한 쿠키가 없을까 계속 고민을 하면서, 나중에 어른이 된다면 꼭 내가 그때 그 쿠키를 내 손으로 만들어 먹어야지! 라는 행복한 먼 발치의 목표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림 1: 아메리칸 스타일 초콜릿 칩 쿠키 / 피넛버터 쿠키 / 화이트초코칩 마카다미아 쿠키
비록 그 이후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전문의 취득 후 군 복무를 하며 홀로 인터넷에 떠도는 각종 레시피를 보면서, 저렴한 오븐 및 기구들을 사용하며 정말 너무나도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습니다. 왜 나는 그 때 그 맛이 나지 않지, 왜 이렇게 하면 타기만 하고 속에는 하나도 안 익을까, 왜 망쳤지 하는 실패를 무한히 반복하면서, 베이킹이라는 분야에 대하여 더욱 도전하고 싶다는 목표와 동시에 베이킹에 대한 이론 및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을 쌓고 싶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베이킹은 상당히 과학 실험과 비슷합니다. 모든 실험이 그렇듯 체계적인 실험 설계와 정량적인 계측, 실패를 통한 발전이 베이킹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기본적인 지식 없는 발전은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듯, 국가 공인 기능사 중 하나인 제과기능사 및 제빵기능사에 도전하기로 목표를 세웠습니다. 저는 군목부 중 일과후 여가 시간을 활용하여 베이킹 학원을 등록하였고, 전공의 1년차로 다시 돌아간 기분으로 기본부터 시작하였습니다. 제과 및 제빵기능사는 각각 필기 및 실기 시험으로 구성되어있으며, 필기 통과 후 실기를 통과하면 합격하게 됩니다. 대략 70가지의 제과제빵 가지의 품목이 있으며, 학원에서는 이 품목들을 한번씩 연습하게 됩니다. 보통 실기시험은 3수를 한다는 것이 제과 수험생들의 정설? 입니다. 저는 다행이 운이 좋게도, 어렵지 않은 품목이 (제과 : 버터쿠키, 제빵 : 폴만브레드) 가 나와서 한번에 합격하였습니다만, 만약 마카롱이 나왔다면 그냥 포기하고 집으로 가서 다음 시험을 노렸을 듯 합니다 ^^;.
그림 2: 카카오닙스 마카롱 (이탈리안머랭)
그림 3: 카눌레
시험에 합격하고 어엿한 국가공인 한국산업인력공단에서 인정한 제과/제빵기능사가 된 이후, 새롭게 얻은 지식 및 기초적 기술을 가지고 어릴 적 그 추억의 레시피를 찾아서 나만의 레시피로 만들기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약 1년간의 무수한 실패와 재료비 탕진, 오븐 업그레이드 및 전문적 반죽기 등 전폭적인 투자를 반복한 끝에, 저는 마침내 제가 어릴 적 기억하던 그 맛에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실험실에서 lab note 를 작성하듯, 저 또한 baking note 를 작성하였으며, 오늘 배합은 어떠하였고 건조 및 오븐 온도 설정, 실험 결과 및 고찰 (?) 또한 기록하며 점점 발전해나가는 재미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또한 저는 여기서 더 나아가, 우리가 학회에서 공부하고 관련 분야의 선생님들과 교류하듯, 제과제빵 업계 또한 카페쇼 및 제과쇼 등 그러한 페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각종 행사를 참석하며 보다 더 견문을 넓혔습니다. 제가 또 한가지 목표로 했던 부분이 가족, 어르신 및 친구분들께 제가 준비한 깔끔한 재료로 (수익 목적이 아니다보니 재료비를 아끼지 않아도 되어서 좋은) 정성이 들어간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특별한 생일 또는 occasion 에 맞는 케이크를 만들고자 하였습니다. 이에 케이크디자인마스터 및 쇼콜라티에 (초콜릿 만드는 사람) 사설 자격증 또한 도전하였고, 3년의 training 결과 이제는 제 정성이 담긴 단 하나의 케이크를 선물해드릴 수 있다는 자긍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림 4: 다양한 마카롱 (프렌치머랭)
그림 5: 다양한 생크림 케이크 / no-bake 치즈케이크 / black forest cake
비록 3년의 군 복무 이후 현재는 이비인후과 전문의로서 3차 의료기관에서 임상진료와 연구에 제일 관심을 기울이고 있지만, 그 때의 그 과정은 지나가보면 의사로서의 제 인생에도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첫째로, 손으로 하는 작업이고 특히 데코레이션 및 반죽 성형의 경우 meticulous 한 handwork 가 필요하게 되는데, 손을 쉬지 않게 된 점이 도움이 된 것 같았습니다. 둘째로, 베이킹 및 케이크 데코는 수술과 상당히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수술도 사전에 검사 및 계획을 세우고, plan A 가 생각대로 되지 않을 경우 plan B, C 를 사전에 계획하고 변경을 즉흥적으로 판단할 수 있어야 하듯, 베이킹 또한 예상 외로 진행되지 않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당황하지 않고, 이전에 실패 및 많은 경험을 토대로 그러한 어려움을 극복하는 점은, 수술과도 상당히 연관성이 있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만, 차이점이 있다면 베이킹은 망치거나 실패 시 버리거나 제가 몰래 먹어버리면(?) 되지만 수술은 저를 믿고 몸을 맏겨주시는 환자분에게 최선을 다해야 하기에 실패하면 안된다는 부담감이 많은 것은 차이점이라고 하겠습니다. 셋째, 모든 일에서 기본기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한번 익힐 수 있는 경험이 되었습니다. 베이킹도 남의 레시피를 보면서 따라할 수 있지만, 본인이 해당 분야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바탕이 되어야 이를 응용하고 언젠가는 본인만의 know-how 나 레시피를 개발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수술 또한 여러 교수님들의 수술법을 참관 및 공부하며, 해부학 및 술기를 부단히 연구한다면 본인만의 방식을 갖춰 나가는 것 처럼, 이러한 일련의 과정에서 제 스스로에 대한 끈기와 인내심을 수련할 수 있던 기회가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수술 또한 수술 후 환자가 좋아지는 것을 보는 것 만큼 더 큰 보람이 없는 것 처럼, 베이킹 또한 제가 진심을 담아서 만든 결과물을 제 주변 분들이 맛잇게 즐겨 주시고 좋아하실 때 만큼의 보람은 없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림 6: 수제 빼뺴로
그림 7: 브라우니
그림 8: 휘닝시에 (금괴 구움과자)
Covid-19 pandemic으로 우리 모두의 일터, 삶, 여가활동 및 사회활동에서 많은 변화가 생겼음을 많이 체감합니다. 아직 pandemic이 종료되지 않은 시점에서, 가족들과 함께 안전하게 주말이나 여가 시간을 활용하여 할 수 있는 제 나름대로의 소소한 activity를 이렇게 두서 없이 말씀드리며, 글을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관심을 가지고 읽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