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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NTian March 2022 W-ENTian March 2022

코로나 투병기 성남시의료원 마취통증의학과 유찬선

최근 코비드 19의 감염이 우리나라에서 정점을 이루고 있습니다. 현재는 오미크론변이가 우세종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젊은군에서는 이전 델타변이에 비하여 경미하게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오미크론 변이의 확산 이전에 델타변이에 감염되어 합병증을 경험한 선생님을 모시고 이에 대한 경험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유찬선 선생님은 성균관의대를 졸업 후 삼성서울병원에서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를 취득 후 현재 성남시 의료원 마취통증의학과에서 재직중입니다. 직접 질병을 경험 한 입장에서, 이비인후과 의사의 시각과는 또 다른 관점으로 질환에 대하여 바라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하여 원고를 부탁 하였습니다.

성남시의료원 마취통증의학과 / 유찬선

코로나19가 불현듯 우리의 생활 가운데 닥쳐온지 어느덧 2년이라는 시간이 되어가고 있다. 그동안 공공병원에서 근무하면서 코로나 대응을 위한 부서 계획부터, 생활치료센터 개설 및 센터장으로 파견 근무, 코로나 병동 주치의 등 긴 시간을 나름 코로나 최전선에서 근무하고 있었지만, 철저한 개인 위생과 나름의 강화된 방역수칙으로 코로나는 막상 나에게는 항상 먼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어느 날 그 놈이 찾아오기 전까지는.

한창 코로나 확진자가 폭증하고 병상 부족 및 중증 환자에 대한 기사가 매일같이 1면을 장식하던 12월 중순, 코로나는 불현듯 찾아왔다. 그날은 밤이 유난히도 추웠고, 그날따라 첫째가 함께 자겠다고 하여 이불을 몇 번 뺏긴 나머지 새벽에 좀 추워서 몇 번 깼던 정도, 그다지 특별할 것도 없던 날이었다. 어린이집이나 학교 다니는 자녀가 있는 집이 겨울이면 으레 그렇듯, 우리 가족도 감기가 한바퀴 돌아 거의 끝나가는 시점이었고, 일주일 전 했던 코로나 검사도 모두 음성으로 나와서 안심하고 있었는데, 저녁부터 열과 오한과 피로감이 엄습하기 시작했다. 처음 했던 생각은 그저 ‘아이고 어제 춥게 자서 감기가 도졌구만...’ 정도였다. 2주간 자가차량을 이용한 출퇴근 외에는 하다못해 마트 한번을 간 적 없었던 데다가, 4일 전부터는 집에서 휴가 중이었기에 코로나 감염은 상상할 수도 없었던 일이었다.

주말 이틀간 밤이면 찾아오는 고열과 오한에 시달리다가 코로나 검사를 결심하게 된 것은, 사실 월요일에 휴가를 내고 잡아둔 외래 진료 예약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열이 나서 진료를 못 보면 안되니까 음성 결과를 확보해 둘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고, 일요일 아침에 응급실 과장님과 통화 후에 응급실로 검체 접수하고 집으로 돌아와 눈이나 잠시 쓸고 있었는데 진단검사의학과에서 전화가 왔다. 혹시나 싶어서 신속 PCR 검사를 돌려봤는데 양성이란다.

확진 소식을 듣고, 사실 별로 놀라지는 않았다. 언젠가는 걸리고 말겠지 라는 생각을 항상 마음 한 켠에는 두고 있었기 때문인지, 그냥 그러려니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얼른 집에서 스스로 격리하고, 절차가 진행되기를 기다렸다. 밤에 심한 오한과 고열이 오는 것을 제외하면, 점차적으로 컨디션은 조금씩 호전되는 양상이었기 때문에 큰 걱정은 하지 않고, 다만 탈수 증세가 상당히 심하게 느껴졌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수분 섭취를 하였고, 심한 콧물 및 코막힘 증상에 반나절 정도 미각 소실 증상이 있었다.

월요일 점심쯤 PCR 양성 정식 통보가 오고, 역학조사와 병상 배정을 위해 보건소에서 연락이 왔다. 재택이 기본이 되고 있던 상황이라 재택 치료 대상으로 들어갈 줄 알았는데, 집에 가족이 5명이나 더 있던 상황인지라 코로나 전파를 막기 위해 시설 입소를 권유하여, 현재 컨디션으로 보아서는 생활치료센터 입소도 문제없을 것 같다고 의견을 피력하였고, 저녁에는 이천 SK 생활치료센터로 배정이 확정되었다.

생활치료센터는 비교적 많은 기본 물품들이 지급되는 편이지만, 입소 후에는 물건을 받기 어려운 부분도 있고, 입소 복장을 폐기해야 하는 등의 규정이 있기 때문에 인터넷에서 입소 준비물을 열심히 찾아서 쇼핑백에 준비하고, 버려도 좋은 옷들을 챙긴 후에 잠자리에 들었다.

생활치료센터

생활치료센터 입소의 경우는 센터에 따른 차이가 있을 수 있으나, 보통 배정 익일 오후에 이루어지게 된다. 점심 무렵 보건소에서 배차해준 차량을 타고 곳곳을 돌며 사람들을 태워 여러 생활치료센터를 거쳐 저녁 무렵에 이천 SK 생활치료센터에 도착하였다.

현재 운용중인 재택치료 시스템이 생활치료센터 시스템에서 기반한 것으로, 환자의 자가모니터링 및 비대면 진료를 기반으로 대증 치료를 하며, 경과가 악화하는 환자를 조기 발견하여 병원으로 이송시키고, 응급상황에 의료진이 빠른 대응을 시행하는 것이 일반 생활치료센터의 운영 목표라고 할 수 있다. 재택치료에 비하여 빠른 대응과 지정된 파트너병원을 통해 빠른 병상 확보가 되는 점, 식사를 스스로 해결하지 않아도 되는 점이 환자로서는 좋은 점이라고 볼 수 있겠다.

입소 후에 생활치료센터 앱 설치와 초기 모니터링 및 흉부 엑스선 촬영, 비대면진료 초진을 진행하고, 이후에는 휴식을 취할 수 있는데, 내 경우는 방 청소를 하였다. 독자분들께 만일 생활치료센터에 입소할 일이 있으실 경우에 대비하여 하나의 팁을 드린다면, 생활치료센터의 운영상 시간적으로 일반 숙박업소 수준의 청소는 불가능하다. 하여 빗자루로 쓸고 소독약으로 뿌리고 닦은 수준의 기본적인 청소는 되어 있으나 벌써 코로나 사태가 2년 이상 길어지며 구석의 먼지나 머리카락, 바닥의 묵은 때 등은 그대로 누적될 수 밖에 없는 환경으로, 1회용 청소포와 스틱 밀대 정도를 챙겨가신다면 보다 위생적인 환경에서 지내실 수 있을 것이다.

입소 후 첫날은 발병 이후 처음으로 발열도 없이 매우 편안한 잠을 잤다. 지급된 침구류가 그렇게 편안할 수가 없었다. 편안한 잠을 자고 아침에는 너무나 컨디션이 좋아서 ‘아, 이제 끝나고 낫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오후부터 갑자기 오른쪽 눈에 각결막염이 발생하더니, 밤부터는 해열제도 듣지 않는 40도 가량의 고열이 나기 시작한다. 가끔 다른 선생님들과 “코로나는 정말 지독한 놈인 것 같다. 여기를 막으면 저기가 뚫리고, 저기를 막으면 거기가 뚫리고” 라는 이야기를 하곤 했었는데, 새삼 그 이야기가 생각이 나는 밤이었다. 다 나은 것만 같더니 이런 고열이라니… 더구나 일부 환자에서 발병 7일 전후로 하여 inflammatory phase로 진행하면서 폐렴과 경과 악화를 보이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에, 내심 걱정이 많이 되었다.

다음날에도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아침에도 39도 가량의 고열이 지속되었고, 급격한 컨디션 저하가 동반되었다. 이 두 가지 증상은 생활치료센터를 운영하였을 때 항상 주의하며 병원으로 이송하던 증상으로, 의료진과 상의하여 오후에는 파트너 병원인 성남시 의료원으로 전원 하게 되었다.

성남시의료원에서의 입원치료

각 생활치료센터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겠으나, SK 생활치료센터는 성남시 의료원을 파트너병원으로 두고 있고, 계약 구급차가 상주하고 있어 비교적 빠른 병상 배정과 이송이 가능한 편이다. 다만 상당한 거리와 상습정체구간인 3번국도를 지나야 하는 점이 힘든 부분이다. 흔들리며 내달리는 구급차를 타고 병원에 도착하여 안도의 한숨을 쉬며 전용 음압통로를 통해 음압병동으로 이동하여 입원 절차를 마무리하였다.

입원 후 수액과 케토로락, 파라세타몰 등을 투여했지만 열은 39도에서 도통 내릴 생각을 하지 않았고, 경도의 CRP 상승과 LDCT상에서 양측에 세 군데 Ground glass opacity 가 발생하고 있었다. 곧 약간의 산소포화도 저하가 이어졌고 이에 확진 6일차인 둘째날부터는 덱사메타손과 램데시비르 투여를 시작하였다. 돌이켜보면 여러모로 다행이었던 점은, 경과 악화 초기 시점에 병원 이송이 되어 검사를 받음으로써 거의 즉각적인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는 점이었다. 경과 악화가 시작되며 급격하게 CRP상승과 폐렴의 악화가 진행하는 것이 당시까지 코로나의 특징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안도할 수 있었다.


입원중에 한참 웃게 했던 아들의 그림.
배 주사가 가장 아프냐고 매일 물어봤었다.

조기 치료 덕분에 이후 경과는 양호했다. 잡히지 않던 발열과 빈맥도 곧 호전되고, 식사량도 회복되었다. 증상 전날 밤, 그날따라 아빠랑 자겠다고 이불에 들어왔던 첫째 아들이 확진되어 함께 입원하고, 아들도 며칠간 고열이 계속되어 고생하고, 병상에서 새해를 맞이하고... 아들까지 증상이 호전된 이후에는, 좁은 방 안에서 자유의 소중함이 얼마나 큰지 너무나 크게 느껴졌었다. 퇴원하는 날, 얼마나 기쁘고 감사한 기분이었는지 이루 말 할 수가 없었다.

코로나 이후에 후유증이 있다는 사람들이 종종 있는데, 나의 경우는 2주 정도 피로감과 체력저하, 그리고 한달 정도 부정맥이 있어 치료를 받았었다. 그렇게 갑자기 시작된 코로나 투병은 마무리되었다.

오미크론과 위드 코로나 시대

델타 변이가 우세종이던 당시와, 지금 이 글을 마무리하는 사이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오미크론을 지나 소위 스텔스 오미크론이 퍼지기 시작하고 있고, 불과 2주전에는 어린이집을 다니는 셋째부터 시작해서 기존에 걸리지 않았던 가족들과 아이들을 돌봐 주러 오셨던 부모님들까지 모두들 코로나를 기어코 한번 앓고야 말았다. 가족 내 전파가 거의 없었던 당시와 달리, 순식간에 모두 전파되고 말았고, 경증 및 무증상이 많다는 와중에도 다들 고열로 며칠씩 앓았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가장 아파서 입원까지 한 가족도 폐렴까지 진행되진 않았다는 점인데, 아마도 팍스로비드 투약이 큰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미 30만을 넘나드는 일 확진자 수와, 방역 체계의 대전환이 거론되고 있는 시점에서, 한편으로는 길었던 코로나가 올해는 끝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과 동시에 코로나의 희생자가 증가하는 것에 대한 큰 우려가 교차되는 시국이다. 어서 코로나가 종식되기를, 그리고 일상으로 회복하기를, 마지막으로 모든 분들의 건강과 안녕을 기원하며 글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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